전통 한지 기술 보존하려는 메시지, 조금 얇아 보이는 까닭은
  • 황진미│영화평론가 ()
  • 승인 2011.03.1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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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리뷰 <달빛 길어올리기>

▲ ⓒ재단법인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달빛 길어올리기>는 임권택 감독의 1백1번째 영화이자, 첫 번째 디지털 영화이다. 한 감독이 10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든 것도 놀랍거니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는 정신은 더욱 존경스럽다.   

영화는 <조선왕조실록> 복본 사업에 관여한 공무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최고의 내구성과 보존성을 지닌 ‘한지’의 가치를 알리고, 사라져가는 전통 한지 기술을 보존하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는 극영화이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과 완성된 다큐멘터리가 영화의 중심을 차지하는 데다가,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송하진 전주시장 등의 카메오 출연으로 다큐멘터리보다 더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난다. 

영화 속 주인공(박중훈)은 의욕이 앞선 나머지 공무원의 본분을 넘어서는 행위로 징계를 받는다. 영화도 이와 다르지 않다. 메시지 전달의 사명으로 인해, 극영화로서의 본분이 망각된다. 인물의 과거사는 한두 번의 폭풍 대사를 통해 통째로 파악되고, 정서는 모두 휘발된다. 인물은 종잇장처럼 얇고, 만듦새는 조악하다. 때문에 박중훈·강수연·예지원 등 좋은 배우가 연기함에도 아무런 공감이 일어나지 않는다. 

<서편제> <축제> <춘향뎐> <취화선> 등 한국 전통문화와 미(美)에 대한 임권택 감독의 애착은 익히 알려져 있으며, 높이 평가되어왔다. 그러나 <달빛 길어올리기>에는 위 작품들에서 보았던 미학적 완성도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키루>가 보여주었던, 주인공의 신념과 현실 관료 사회가 빚는 갈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모든 갈등은 “여기 모인 사람들,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라는 묘한 나르시시즘으로 수렴되고 만다. 임권택 감독은 ‘새롭게 데뷔하는 신인 감독의 첫 번째 작품으로 봐달라’라고 말씀하셨다. 외람되게도 그 말씀이 만듦새에 관한 자평이었는지, 조심스럽게 되물어지는 유감스런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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