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흔과 김상현이‘서쪽’으로 간 까닭은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1.03.2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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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변경으로 새로운 승부 거는 프로야구 선수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사람도 자기가 할 일을 해야지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면 크게 실패할 수 있다는 뜻이다. 프로야구는 자기 포지션이 확실한 곳이다. 나이가 들어 기량이 떨어지거나 경쟁 선수에게 밀리는 않는 이상, 자기 포지션에서 은퇴할 때까지 뛴다. 남의 포지션에서 뛰었다가는 크게 실패할 수 있기에 선수들은 어떻게든 솔잎을 먹으려 한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다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솔잎을 마다하고, 뽕잎을 먹는 이들이 나타났다. 포지션 변경으로 야구 인생에서 새로운 승부를 거는 이들이다.

잇따른 중심 내야수들의 외야 전향

“2011시즌부터 홍성흔을 외야로 쓸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제리 로이스터의 후임으로 롯데 사령탑에 오른 양승호 감독은 여러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그 가운데에는 홍성흔의 외야 전향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디어 대부분은 단순 공상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지명타자 홍성흔의 외야 전향도 번뜩이지만,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양감독은 미국령 사이판과 일본 가고시마 스프링캠프에서 홍성흔에게 외야 훈련을 받도록 지시했다. 자신이 직접 외야 펑고를 치며 훈련 강도를 높이기도 했다. 그제야 야구 관계자와 팬들은 양감독의 발언이 빈 소리가 아님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홍성흔의 외야 전향 가능성을 작게 본 이유는 간명했다. 그가 4년 전부터 붙박이 지명타자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홍성흔은 2006년 두산에서 1백19경기를 포수로 뛰고서 2007년부터 지명타자로 전향했다. 나이가 들면서 송구 능력이 떨어져 도루 허용이 많아진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평생을 포수로 살아온 홍성흔에게 다른 포지션은 언감생심이었다. 1루수 전향이 점쳐지기도 했지만, 두산은 그에게 지명타자를 맡기며 타격에 집중하도록 했다. 2009년 롯데 유니폼으로 갈아입고도 그는 지명타자를 전담했다. 그래서일까. 홍성흔은 수비와는 거리가 멀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그가 수비수로 나간 것은 도합 10경기에 불과했다. 특히나 이 가운데 두 번은 포수, 네 번은 1루수였다. 좌익수로 출전한 것은 2경기에서 3이닝밖에 되지 않았다.  

▲ 김상현(좌)홍성흔(우) ⓒ연합뉴스

그렇다면 어째서 양감독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지명타자인 홍성흔을 외야수로 전향시키려 한 것일까. 일부의 지적처럼 오랜 대학 감독 생활로 프로야구를 우습게 본 것일까. 아니면 홍성흔과 불화가 있었던 것일까. 양감독은 “팀 전력 극대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라며 항간의 억측을 일축했다. 양감독은 “1루수 이대호와 포수 강민호가 부상이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두 선수 가운데 한 명이 지명타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입을 열었다. 지난해 타격 7관왕인 이대호는 발목이 좋지 않다. 강민호는 오른팔꿈치 부상을 안고 산다. 하지만, 두 선수가 수비 부담을 덜고 타격에만 집중하기에는 마땅한 포지션이 없다. 지명타자가 유일하다. 그러니까 양감독은 주전 1루수와 포수가 지명타자로 들어올 때 홍성흔을 외야수로 기용하겠다는 복안이다.

양감독은 “타선에 이대호, 강민호, 홍성흔이 모두 배치된다면 공격력은 그만큼 강화될 수밖에 없다”라며 지난해 외야수로 뛰었던 전준우를 3루로 전향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전준우는 지난해 중견수로 출전해 타율 3할9리, 19홈런, 57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준우가 올 시즌에도 계속 중견수를 보면 지난해 65도루를 기록한 김주찬은 갈 곳이 없다. 1루에 이대호가 버티기 때문이다. 양감독은 전준우를 3루로 돌리고 외야 빈자리에 김주찬을 배치하겠다는 계획이다.

공격력 강화를 위한 포지션 변경은 롯데만의 결정이 아니다. KIA와 한화도 같은 순서를 밟았다. 조범현 감독은 스프링캠프 기간에 3루수였던 김상현을 외야수로 전향시켰다. 이범호의 영입으로 3루 자원이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조감독은 김상현보다 3루 수비가 탄탄한 이범호를 주전 3루수로 세우고, 김상현을 좌익수로 배치하면 공격력을 더 극대화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지난해 팀 타율 2할6푼으로 한화 다음으로 좋지 않았던 팀 공격력을 고려할 때 김상현의 외야 전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한화도 주전 2루수였던 정원석을 3루로 전환시키는 강수를 두었다. 역시 이유는 공격력 강화이다. 지난해 한화 3루수들의 타율은 2할3푼3리에 불과했다. 프로야구 사상 특정 포지션 최하 타율이었다. 한대화 감독은 지난해 팀에서 유일한 3할 타자였던 정원석을 3루로 보내고, 군에서 제대한 한상훈을 2루에 배치하면 빈약한 팀 타선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잇따른 포지션 변경을 지켜보는 야구계의 평가는 판이하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단점을 메우기보다 장점을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포지션 변경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한다. 이위원이 예상하는 긍정적 결과에는 공격력 강화뿐만 아니라 수비 강화도 포함된다. “홍성흔의 포구 능력이 의심되나, 좌익수에게는 중견수나 우익수보다는 어려운 타구가 많이 가지 않는다. 되레 포수 출신으로 어깨가 강한 홍성흔이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전준우는 대학 시절 대표팀 주전 3루수였다. 이대호보다 3루 수비가 더 좋을 수 있다. 김상현의 외야 전향과 이범호의 3루 배치로 KIA 역시 탄탄한 내야 수비진을 형성하게 되었다. 김상현의 부족한 좌익수 수비는 수비 범위가 넓은 중견수 이용규가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문제이다.”

“득점보다 실점을 적게 하는 것도 ‘공격력 강화’이다”

▲ 전준우 ⓒ연합뉴스

그러나 오히려 포지션 변경이 전체적인 팀 전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야구인도 많다. 대표적인 이가 이순철 MBC SPORTS+해설위원이다.
이위원은 현역 시절 3루수와 중견수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1988년 3루수로, 1991년에는 중견수로 골든글러브의 주인공이 되었다. 포지션 변경의 우수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이위원은 “포지션 변경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내야와 외야의 타구는 질적으로 다르다. 내야 타구는 강한 땅볼이 많지만, 외야 타구는 깊숙한 뜬공이 많다. 그래서 내야수는 동물적인 반사 신경이 뛰어나야 하고, 외야수는 순간 판단력이 뛰어나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감각을 익히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프링캠프에서 한두 달이면 익힐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여기에다 수비 스트레스가 쌓이면 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자칫하면 공격력 강화가 공격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SK 김성근 감독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전 감독 오야 아키히코는 야구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도중 김감독은 오야 전 감독에게 갑자기 “1사 2루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실점을 막는 방법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오야 전 감독은 “좋은 투수를 등판시키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김감독은 “나라면 좋은 외야수를 내보낼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아무리 좋은 투수라도 1사 2루에서 안타 허용률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3할에 가깝지만, 수준급 외야수가 배치되면 안타를 아웃으로 처리할 확률이 3할 이상 되고, 안타가 나와도 2루 주자가 홈까지 들어올 확률이 4할 이상 감소하기 때문이었다. 덧붙여 김감독은 타선의 힘으로 1점을 내기보다 수비의 힘으로 1점을 막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타격은 기복이 심하지만, 수비는 항구적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한국에는 통계가 없지만, 일본 프로야구에는 야수의 포지션 전향과 관련한 데이터가 있다. 내야에서 외야로 포지션을 이동했을 때 그 전해보다 타격 성적이 좋을 확률은 35%이다. 그러나 외야에서 내야로 전환했을 때는 14%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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