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비즈니스’ 잘 통하는 충무로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1.03.21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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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관계로 뭉친 영화인들, 가족애 과시하는 경우 많아…신작 개봉 시 출연 배우만큼 화제 모으기도

 

▲ 류승범과 류승완 ⓒ뉴스뱅크이미지

이보다 화려한 캐스팅도 드물다. 김혜수와 김윤석만으로도 스크린이 꽉 차는데 이정재와 전지현까지 힘을 보탠다. 5월 크랭크인할 최동훈 감독의 신작 <도둑들>(가제)은 출연 배우 면면만으로도 눈길을 모으기 충분하다.

출연 배우만 화제를 뿌리지는 않을 듯하다. 최감독의 아내인 안수현 프로듀서(영화 프로듀서는 방송국 프로듀서와 달리 제작을 관리한다)가 영화 제작에 대한 온갖 살림을 책임지며 돕고 있기 때문이다. 안PD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 이현승 감독의 신작 <푸른 소금> 등의 제작을 담당했다. <도둑들>은 안PD가 최근 설립한 케이퍼필름이 제작한다.

최감독-안PD 부부 이외에도 충무로에는 가족의 끈으로 연결된 영화인들이 적지 않다.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에서 아이폰 영화 <파란만장>으로 대상인 황금곰상 수상을 합작해낸 박찬욱·박찬경 감독 형제는 단편적인 예에 불과하다.

영화계 패밀리 비즈니스의 대표 주자로는 감독과 배우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류승완·류승범 형제를 먼저 꼽을 수 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나란히 감독과 배우로 데뷔식을 치른 이들 형제는 지난해 <부당거래>를 함께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부당거래>의 제작사 외유내강의 대표는 류감독의 아내 강혜정씨이다.

감독·배우·제작자 등 역할 분담해 ‘끌고 밀고’

형 이창동 감독과 동생 이준동 파인하우스필름 대표는 지난해 <시>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시나리오상을 수상했다. 이준동 대표는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초록물고기> 제작에 참여하며 혈연을 넘은 영화적 인연을 맺어왔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민규동 감독은 동생 민진수 수필름 대표와 <서양골동과자점 앤티크>를 합작했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의 개봉도 앞두고 있다. 수필름은 민규동 감독의 아내 홍지영 감독의 <키친>을 제작했다. 류승완·류승범 형제 못지않은 패밀리 비즈니스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 최동훈과 안수현

제작자로는 심재명·심보경 자매가 대표적이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부터 <공동경비구역 JSA> <시라노 연애조작단> 등을 만들며 충무로의 간판 여성 영화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심대표의 남편은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을 연출한 이은 명필름 공동대표이다. 심보경 보경사 대표는 1990년대 PC통신이 만들어낸 풍속도를 담은 <접속>을 기획했고, 최근에는 <고고 70>을 제작했다. 심재명·심보경·이은 대표는 2005년 강제규 감독의 강제규필름과 명필름의 합병으로 탄생한 MK픽쳐스에서 함께 활동하며 <그때 그 사람들> <사생결단> 등의 화제작을 선보였다.

충무로를 쥐락펴락하는 굴지의 투자배급사 CJ E&M 영화사업 부문의 김정아 대표는 김정상 전 시네마서비스 대표의 동생이다. 두 남매는 <만추>와 <고래사냥>으로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씨의 자녀이기도 하다.

<친구>의 곽경택 감독과 <해피엔드>의 정지우 감독은 처남 매제 사이이다. 곽감독의 여동생이자 정감독의 아내인 곽신애 바른손 영화사업부 본부장도 충무로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곽본부장은 정감독의 <모던 보이> 프로듀서로 활동하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에게도 혼인으로 맺어진 영화인 가족이 있다. 지난해 최고 흥행작 <아저씨>의 제작사 오퍼스픽쳐스의 이태헌 대표는 박감독의 매제이다.

독립영화계에서는 김곡·김선 형제를 대표적인 가족 영화인으로 들 수 있다. <고갈>과 <방독피> 등으로 독립영화계의 별로 떠오른 이들 형제는 스릴러 <화이트>로 상업영화 데뷔를 앞두고 있다. 2007년 데뷔작 <기담>으로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정가형제’의 정범식·정식 감독은 사촌지간이다.


▲ ⓒ재단법인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봄방학을 앞두고 종업식이 한창인 중학교의 교실 안.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 교사 유코(마츠 다카코)가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어느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교사가 함께 있음에도 버젓이 교우를 괴롭히는가 하면, 큰소리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거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기 바쁘고 몇몇은 교실 안을 뛰어다니기까지 한다. 그러나 잠시 후, 자신의 어린 딸을 죽인 사람이 이 교실 안에 있다는 유코의 고백이 이어지면서 교실 안은 혼란 속에 빠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들과 학부모의 고백. 영화 <고백>은 그렇게 각자의 고백을 통해 유아 살인 사건을 둘러싼 진실에 접근해간다.

2010년 일본에서 흥행과 평단 평가 양면의 성공을 거두며 최고의 화제작이 된 영화 <고백>은 청소년 범죄와 사적 복수를 아우른 시사적 작품이다. <불량 공주 모모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으로 주목받은 나카시마 테츠야의 네 번째 영화이다. 전작과 달리 한결 어두워진 색조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갈무리하고 있지만, 촬영과 편집은 더욱 화려해졌다. 감독은 잘게 쪼개진 영상과 다각도에서 촬영된 화면, 도로와 편의점의 반사경을 통해 비치는 왜곡된 이미지들 그리고 감각적인 주제 음악을 활용해 그들 각자의 고백을 듣는 것이 아닌 보는 것으로 영상화한다.

그렇게 드러나는 고백은 사뭇 충격적이다. 단순한 인정 욕구 때문에 살인을 하는 아이들의 표정도 그러려니와 단호하게 사적 복수를 천명하는 교사의 결정도 놀랍기는 매한가지다. “여러분은 사람을 죽이고도 죄를 추궁당하지 않는군요. 하지만 이렇게 끝낼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아이와 어른은 대립한다. 각자 최선을 다해 서로를 괴롭힌다. 물론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그럴 만한’ 이유가 당연히 있다. 각자의 사정을 드러내는 고백이 거듭될 때마다 관객은 혼란에 빠지고, 감독은 그러한 혼란 속에 질문을 던진다. 부모가 아이를 학대하고, 아이가 아이를 학대하는 세상이다. 무지한 선의가 악의로 뒤바뀌고 익명성 뒤에 몸을 숨기고 폭력을 예찬하는 사회 속에서, 과연 생명은 소중한가? 그 질문의 답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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