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들은 왜 헤지펀드로 옮겨 탈까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1.03.2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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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가입 금액 1억원에 수익률 낮아도 몰려…국내에서는 해외 상품에 투자하는 형식

ⓒ시사저널 전영기

지난해 하반기 이후 랩어카운트 상품의 수익률이 주춤해지면서 올해 큰손들의 관심사가 헤지펀드로 옮아가는 흐름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한국투자사모글로벌STAR1’과 ‘한국투자사모글로벌STAR2’를 출시해 각각 100억원과 40억원의 자금을 모았다. 삼성증권은 지난 1월부터 북극성알파1~4호(총 3백50억원)를 설정했고, 3월에는 ‘북극성알파사모5호’ 설정에 들어갔다. 북극성알파는 영국의 맨인베스트먼트와 제휴한 재간접 헤지펀드 상품으로 운용은 한국투신운용에서 맡았다. 동양종금증권 또한 3월에 CTA 전략의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동양멀티CTA사모증권1호’를 설정했다. 그 밖에도 대우증권이나 우리투자증권 등에서 3월을 전후로 앞다투어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 헤지펀드를 출시하고 있다.

왜 지금 헤지펀드일까. 최소 가입 금액은 1억원이고 수익률은 예금 금리의 2~3배로 2007년 국내 펀드 붐 때 올렸던 것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익률인데 왜 큰손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장세와 상관없는 안정적인 수익률 노려

강신우 한국투신운용 부사장은 “금융 위기 이후 헤지펀드가 각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분산 투자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절대 수익률을 보장하고 과거에 비해 환매 절차나 운용 과정에서의 투명성이 개선되면서 설정액도 늘어나고 투자자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식시장이 계속 오르기만 할 때는 일반 주식형 펀드가 수익률을 올리기 쉽지만 하향장이나 박스권 장세에서는 일반 주식형 펀드가 맥을 못 추는 대신 헤지펀드는 안정적으로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이 거액 자산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헤지펀드 설립은 아직까지는 불법이다. 올여름이나 되어야 헤지펀드 설립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시행령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최근 증권사나 운용사에서 내놓은 상품은 대개는 ‘펀드오브헤지펀드’, 즉 재간접 헤지펀드 형식이다. 수익률과 안정성이 검증된 해외 헤지펀드에 국내 펀드가 투자하는 방식이다.

삼성증권이 지난해 7월 미국 월가에서 스카우트한 정진균 대안투자팀장은 국내 헤지펀드 인력 중 월가의 본바닥에서 경험을 제대로 쌓은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골드만자산운용 등에서 재간접 헤지펀드 전문가로 명성을 쌓았고, 국내에 들어온 뒤 삼성증권의 북극성 시리즈를 차례로 내놓고 있다. 그는 “헤지펀드가 엘도라도라는 식의 기대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팀장은 “투자자의 자산을 보호할 수 있는 기능이 크다는 것이 헤지펀드의 가장 큰 장점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상승장에서는 주식을 사놓으면 수익을 얻기가 쉽지만, 시장이 박스권에 갇히거나 하락장일 때는 수익률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헤지펀드는 하락장에서도 주식 공매도 등을 통해 일정 수익률을 보장하고 있다. 이 점이 지난해  국내 투자자들에게 먹혀들어가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외 현지법인인 싱가포르 법인을 통해 헤지펀드를 설정하고 있는 트러스톤자산운용의 나상용 운용지원본부장은 “채권보다는 위험이 더 크지만 수익률은 높고 주식보다는 조금 덜 위험한 상품이 바로 헤지펀드이다”라고 설명했다. 나본부장은 “국내 자본시장 통합법이 발효되면서 헤지펀드를 도입할 수 있는 근거는 마련되었지만 시행령이 갖춰지지 않아 국내에서 헤지펀드를 설립하는 것이 현재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조만간 헤지펀드 설립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여 여러 회사에서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수익률의 20%는 매니저 역량에 달려

이와 관련해 헤지펀드를 운영하는 인력을 확보하는 문제도 증권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증권에서는 일곱 명으로 대체투자팀을 출범시켰다. 한국투신운용에서도 일곱 명으로 이미 헤지펀드팀을 꾸리는 등 선제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여러 회사에서 관련 팀을 준비 중이다. 트러스톤의 나본부장은 인력의 중요성에 대해 “기존 정통 주식형 펀드에서는 수익률이 대부분 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함께 간다. 하지만 헤지펀드에서는 수익률의 80%는 시장 움직임에, 나머지 20%는 매니저의 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에 운용 인력이 대단히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삼성증권에서 대안투자팀을 책임지고 있는 정진균 팀장도 “어떤 사람이 운용하고 해당 펀드의 매니저나 리서치 인력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외부의 수탁사와는 어떤 관계인지가 중요하다. 운용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성공한 헤지펀드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투자자는 이런 정보에 어둡다. 이에 대해 정팀장은 “일반 투자자가 헤지펀드를 선별할 지식이 부족하다면 헤지펀드 운용사나 판매사(증권사)의 신뢰도를 보고 고르는 것도 한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증권사가 헤지펀드 상품을 판매하려면 적어도 시장에서 신뢰를 얻어야 하고, 그러려면 내부적으로 이런 기준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액 자산가의 성공담은 곧 일반 투자자들의 행동 준칙으로 보급되는 것이 국내 주식 시장의 관행이다. 펀드가 그랬고, 랩이 그랬다. 올 하반기나 내년부터 본격 열릴 것으로 보이는 헤지펀드 시장이 국내에서 어떤 바람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시사저널 전영기

손원준 트러스톤자산운용 매니저는 국내 자산운용회사 직원 중 거의 유일한 헤지펀드 매니저이다. 이 회사의 싱가포르 법인이 현지에서 헤지펀드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업무 협의차 잠시 귀국한 그를 만났다. 

 트러스톤에서 중공업과 물류 쪽 애널리스트로 활동해 오던 손매니저는 한국 주식에 투자하던 홍콩의 헤지펀드에 자문을 해주다가 헤지펀드에 입문한 경우이다. 지난 2008년 회사를 휴직하고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에서 투자 관리를 공부했다. 현지에서 헤지펀드에 대해 공부하고 현지의 헤지펀드 매니저와 네트워킹을 쌓은 그는 2009년 8월 말 회사로 복귀한 뒤 2008년 회사가 설정한 싱가포르 현지법인의 헤지펀드 매니저를 맡아 싱가포르로 떠났다. 설정액은 7천만 달러 정도, 수익률은 달러 기준으로 24% 정도이다. 아시아 주식에 투자하는 롱숏 펀드의 평균 수익률에 비해 수익률을 10% 정도 더 올리고 있다. 

그는 “헤지펀드를 고를 때 담당 운용자가 어느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트러스톤은 한국 주식의 리서치 역량이 강하고, 지난 수년간의 투자 운용 기록이 이를 입증해주기 때문에 싱가포르 현지 투자자들에게도 신뢰를 얻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헤지펀드는 돈 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투자가 가능하다. 또 롱숏이라는 것이 시장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시장과 무관하게 투자자에게 절대 수익률을 안겨주어야 하기에 자기가 잘하는 분야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롱숏 펀드는 롱숏 전략으로 운영되는 펀드를 말한다. 롱숏 전략은 매수를 의미하는 롱 전략과 매도를 의미하는 숏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는 것으로 상승을 예상하고 투자하는 매수와 하락을 대비해 공매도를 실시하는 방식이며, 어떤 시장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차익 거래 방법이다.

그는 “시장이 엄청나게 달구어지는 상승장에서는 일반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이 롱숏 전략을 구사하는 헤지펀드보다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개인 자산가의 자산이 커질수록 수익률의 극대화보다는 위험 관리를 통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관리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헤지펀드의 가장 큰 미덕은 상승장이냐 하락장이냐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수익률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는 주요 투자 종목에 대해 “우리 회사 리서치센터에서 코스피 종목 중 3백개 정도를 투자 대상으로 정해놓고 리서치하고 있고, 그 가운데 50개 정도의 종목에 투자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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