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지진, 역사는 알고 있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1.03.2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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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은 한반도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졌다. ‘한반도는 지진의 안전지대’라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한반도도 이제 지진으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라고 진단하고 있다. 예측 불가능의 영역에 있는 ‘한반도의 지진’에 대해 국내 지질학계의  최고 권위자 5인에게 들어보았다.

「경상도 관찰사 이시발(李時發)이 장계(狀啓)하였다. “함창 현감(咸昌縣監) 홍사고(洪思古)의 첩정에 ‘이달 4일 자시(子時)에 지진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했는데 집이 흔들리다가 한참 뒤에 그쳤다. 축시(丑時)에도 그러했고 인시(寅時)에도 잠시 흔들리다가 그쳤다. 하룻밤 사이에 세 번이나 발생했으니, 이변이 비상하다’라고 하였으므로 치보(馳報)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기록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1604년(선조 37년) 7월31일 경상도 함창(지금의 경북 상주시 함창읍)에서 하룻밤 새 세 번이나 지진이 났음을 보여준다. 실록뿐만이 아니다. <삼국사기>를 시작으로 우리 역사서에는 한반도 지진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1392년(태조 원년)부터 1863년(철종 15년)까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지진 건수만 무려 1천9백67건에 달한다. 우리가 못 느꼈을 뿐 한반도는 의외로 지진에서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최근 한반도 주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칠레, 파키스탄, 타이완 등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땅속 움직임이 한반도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게다가 지난 3월11일 일본 동북부를 휩쓴 규모 9.0의 강진은 바다 건너 한반도에 충격으로 전해졌고, 지진에 대한 불안은 현실로 다가왔다.

2000년대 기록된 국내 평균 지진 횟수는 1990년대에 비해 두 배 이상 많다. 한반도 지각 운동에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한반도 지진이 최근 들어 특별히 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라고 했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기록된 지진이 많아지는 것은 계측이 정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늘어난 작은 지진은 의미가 없다. 진도 3.0 이상의 지진만 놓고 보면 매년 일정한 수준이다. 진도 3.0은 1년에 10회 정도, 진도 5.0은 10년 내지 15년에 한 번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라고 안심할 수 있을까. 지진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이다. 조봉곤 전북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지진은 판 구조 운동에 의해서 발생한다. 우리와 유사한 판인 중국 대륙 내에서 엄청나게 큰 지진들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판의 활동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정황으로 볼 때 지진에 안전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이 지진 안전지대를 평가하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우선 과학적 관측 방법이다. 국내에서 가장 미진한 부분이다. 국내에서 계기 지진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때는 1978년부터로 불과 30년밖에 되지 않았다. 기나긴 대지의 역사와 비교하면 미미한 시간이다.

다음으로 역사 기록을 살핀다. 다행히 우리 조상들은 훌륭한 기록을 남겼다. 황상일 경북대 지리학과 교수는 <조선왕조실록>과 계기로 측정한 현대의 지진 기록을 교차해 공간 분포와 시기별 분포를 검토했다. 요즘 계기 지진 기록에서는 평안도와 남부 지방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록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실록의 지진 분포를 보면 평안도, 황해도, 전라도, 경상도 등이 높게 나타난다.

황교수는 지역적 분포의 공통점 외에 ‘경향성’도 발견했다. 그는 “대체로 한반도도 100~1백5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활성기와 잠복기를 반복한다. 지금은 대략 1905년부터 시작된 ‘활성기’의 후반부쯤이 아닌가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 (자료: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실 / 민주당 김희철 의원실 / 소방방재청)


“과거 한반도에 6.0 이상 지진 발생했었다”

기록은 ‘주기’를 남긴다. 지진 연구자들은 이번 일본 지진이 도카이 지진이 돌아온 주기라고 판단한다. 조봉곤 교수는 “이번 도호쿠에서 발생한 대지진 전에 일본이 염려했던 곳은 1854년 지진이 발생했던 도카이 지역이었다. 어쨌든 이번 지진이 주기상으로는 맞다”라고 말했다. 손문 교수는 “다음 지진은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아닐까 예측하는 이가 많다. 미국 지질학회에서도 90% 이상의 확률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진 전문가들 중에서는 과거 한반도에 현재 기준으로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었다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다. 황상일 교수는 “<삼국사기>를 보면 땅이 갈라져서 물이 솟아난다고 한 것은 규모 7.0에 가까운 것 같다. 산이 무너지면 규모 6.0 이상은 된다. 사람이 100명 이상 죽은 것도 규모 7.0 정도 되지 않겠는가. 계기로 측정하지 않은 것을 신뢰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왕조실록이 정치적인 내용이 아닌 자연 현상을 왜곡할 이유는 없을 것으로 본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떠오르는 ‘한반도 지진설’은 이런 ‘주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제기된다. 일종의 자연의 ‘동일 과정성’에 대한 신뢰이다. 황교수는 “100~1백50년이 지진의 주기인데 100년쯤 지났으니까 확률론적인 입장에서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만에 하나 지진이 일어난다면, 어느 지역이 가장 유력할까? 지진학자들이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조봉곤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특정 지역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지진대에 관한 과학적인 증거는 없다고 보면 된다. 규모 5.0 이상의 지진 분포도를 보면 흩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과거를 고려해볼 때 유추는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1976년 7월 무려 24만명이 사망한 중국의 탕산(唐山) 대지진이 발생한 뒤 2년 만에 충남 홍성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한 적이 있다. 조교수는 “서해안 쪽 어딘가에 탕산 대지진을 촉발했던 탄루단층의 연장선이 있을 수 있다. 지진이 발생할 경우 서해 쪽에 쓰나미가 발생할 수도 있다. 잘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백령도와 소백산맥에도 지진이 몰려 있는 형태가 있다. 이런 곳은 향후 큰 지진을 동반할 확률이 상승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수도권을 가장 위험하다고 보는 견해도

최근에는 영남 지역의 양산·울산·부산·경주 일대가 지진 가능 지역으로 주목받는다. 원자력발전소가 밀집해 있는 이 지역 아래로 양산단층, 밀양단층, 울산단층, 동래단층 등 대표적인 ‘활성단층’(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단층)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양산단층을 발견했던 경재복 한국교원대 지구과학과 교수는 “단층과 지진은 아주 밀접하다. 활성단층은 지질학적으로 ‘제4기 단층’이라고 해서 50만년 이내에 활동했던 단층을 말한다”라고 설명했다.

단층에는 ‘연대 측정’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단층이 언제 활동했는지를 알아야 다음 활동을 유추해볼 수 있다. 경교수는 “일본의 판 경계 지역은 재래 주기가 일정하다. 1백~1백50년 정도의 주기이다. 반면 한반도의 경우는 판의 안쪽에 있기 때문에 한 번 활동이 끝난 뒤 다시 활동하는 데 굉장히 오래 걸린다. 몇백 년, 몇천 년이 될 수도 있지만 그 활동이 내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일부 학자는 ‘수도권’을 위험 지역으로 꼽는다. 김소구 한국지진연구소장은 “중부 수도권 지역이 가장 위험하다. 이곳은 과거 지진 발생 이후 2백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김소장은 과거 한반도 지진 기록을 검토해 ‘서울?수도권’ 라인에서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을 57%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도 했다.

일각에는 “서울 강남 지역이 지진에 취약하다”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서울 대부분의 대지가 화강암인 데 반해 강남 지역은 물기를 머금은 충적토라 그렇다는 것이다. 황상일 교수는 “암반이 튼튼한지 여부는 중요하다. 땅을 파서 금방 물이 나오는 곳은 지진이 나서 땅이 수평으로 흔들리게 되면 대지가 죽처럼 액상화되어버린다. 그렇게 될 경우 건물들이 그대로 옆으로 넘어져버린다”라고 설명했다.

내진 설계 적용된 건축물은 18.4%에 불과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암반의 튼튼함보다 건물의 튼튼함에 있다. 소방방재청이 박대해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내진 설계가 적용된 건축물은 전체의 18.4%에 불과했다(왼쪽 상자기사 참조.) 내진 설계가 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토양의 성질을 논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질학자들은 한반도가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내륙에서의 지진보다도 오히려 동해상에서 발생 가능성이 큰 해저 지표상의 지진에 따른 쓰나미라며 주의를 요구한다.

사람들은 일본을 보며 지진에 대해 관심을 키우고 있다. 반면 전문가들은 지금 한반도의 지진 가능성과 피해 여부를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학문적인 예측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한다. 조봉곤 교수는 “학문적인 예측보다 뒤를 이야기하려면 일본 못지않게 준비와 투자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 조금 더 지진에 근접할 수 있는 예측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진이라는 ‘불확실 덩어리’를 논하기에 우리는 아직 걸음마도 걷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 도움말 주신 분들 : 경재복 한국교원대 지구과학과 교수·손문 부산대 지질환경학과 교수·조봉곤 전북대 지구환경학과 교수·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황상일 경북대 지리학과 교수 (가나다 순)


▲ 3월15일 오후 2시 서울 미동초등학교에서 재난 상황을 가정해 실시된 민방위 훈련 중에 아이들이 지진 등의 경우에 대비해 책상 밑으로 들어가는 훈련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만일 국내에서 강도 높은 지진이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최근 소방방재청이 실시한 시뮬레이션 결과는 비참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서울 중구에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했을 경우 파손되는 건축물은 58만4천여 동, 사상자는 11만5천여 명, 이재민은 10만4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도 마찬가지였다. 동래구 온천2동에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파손되는 건축물은 23만7천여 동, 사상자 수는 3만7천3백여 명, 이재민은 3만3천여 명으로 나타났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학과 교수는 “일본은 진도 6.5가 도쿄에 터져도 끄떡없다.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내진 설계를 강화한 결과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6.5만 일어나도 아이티처럼 엄청난 피해가 올 것이다. 지진의 강도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대비되어 있느냐에 있다”라고 말했다.

만에 하나 지진으로 피해를 크게 입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 지진의 진원지는 한반도 내부보다 외부가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한반도에서 지진이 발생하기보다는 일본 근해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번 일본 도호쿠 대지진은 일본 열도 동쪽 해상에서 발생해 쓰나미가 한반도까지 닿지 못했지만 일본 서쪽 해상에서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경우 동해안은 쓰나미의 피해를 피해갈 수 없게 된다.

쓰나미는 한반도 동해안에 생각보다 빨리 닿는다. 지난 1983년 발생한 일본 혼슈 아키타 근해의 쓰나미는 울릉도에 77분, 묵호에 95분, 속초에는 1백3분 만에 도달했고, 1993년 홋카이도 오쿠시리 해역의 쓰나미는 울릉도에 90분, 속초에 1백3분, 동해에 1백12분 만에 도착했다. 지난 3월16일 소방방재청의 시뮬레이션에서도 일본의 서해인 아키타 현 연안에서 규모 8.0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동해안에는 최대 3.5m의 쓰나미가 1시간 40분 후에 도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문 교수는 “부산은, 일본의 큐슈 쪽이나 대마도가 지진이 잘 일어나지 않는 곳이고 설혹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수심이 얕고 방파제 역할을 할 섬이 많아 피해를 입을 확률이 낮다. 다만 일본 북동부의 서쪽에서는 큰 활성단층이 있어서 8.0의 지진이 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울릉도·속초 등 수심이 깊은 곳에 위치한 지역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박연수 소방방재청장 역시 비슷한 견해였다. 박청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척의 임원항과 삼척항, 강릉 경포대, 속초해수욕장, 울진의 죽변항, 울산의 진하해수욕장 등이 상당히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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