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일본 지진에서 배우는 것들
  • 모종혁│충칭 통신원 ()
  • 승인 2011.03.2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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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 대지진 당시 구호품 쟁탈전·빈집 약탈 등 벌어져…원전의 안전성 문제도 재고하는 계기 돼

“소금(鹽) 사셨나요?”

지난 3월16일 중국인들 사이에 생뚱맞은 첫 인사말이 등장했다. 일상적인 인사 대신 ‘소금 샀냐’ ‘소금 먹었냐’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같은 날 중국 주요 도시의 대형 할인 매장과 재래시장에서는 소금 판매량이 급증했다. 소금이 소리 소문 없이 불티나게 팔리는가 하면 일부 도시에서는 사재기 현상까지 나타났다. 사태는 일본 동북부 대지진에서 비롯되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폭발 사고로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중국 내에서 각종 유언비어가 나돌았기 때문이다.

유언비어의 근거는 그럴싸했다. 요오드 성분이 든 소금을 먹으면 방사능 피폭을 막을 수 있다거나, 방사성 물질이 바닷물에 들어가 앞으로 생산될 소금에는 오염 성분이 함유되리라는 것이었다. 소금 사재기는 3월15일 산둥(山東)·저장(浙江)·푸젠(福建) 등 바닷가와 인접한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순식간에 바다에서 수천 ㎞ 떨어진 쓰촨(四川)·윈난(雲南)·칭하이(靑海) 등 내륙까지 퍼져나갔다. ‘일본은 핵 대국이고 중국은 염황(鹽荒) 자손이니 다 함께 소금을 먹어 핵을 막아내자’(日本是大核民族 中國是鹽荒子孫 握手吃鹽防核)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등장했다. 어떻게 중국에서 이처럼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났을까.

중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지진 재난국이다. 지난 수십 년간 크고 작은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그중 1976년 7월28일 발생한 탕산(唐山) 대지진은 엄청난 희생자를 낸 대참사였다. 23초만에 27만명이라는 전무후무한 사망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탕산 대지진은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끝나지 않은 시대에 일어났다. 당시 언론 보도는 모두 통제되었고 지진 지역은 탕산 시와 허베이(河北) 성 일대로 한정되었다. 지난해 개봉된 중국 영화 <탕산 대지진>에서 당시의 피해와 참상을 생생하게 그려내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진실을 알지 못했다.

올해도 규모 5.0 이상의 지진 끊이지 않아

2008년 5월12일 일어났던 쓰촨 대지진은 전혀 달랐다. 리히터 규모 8.0의 지진은 쓰촨 성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그 진파를 체감할 수 있었다. 진앙지에서 수천 ㎞ 떨어진 베이징·상하이 등지에서도 건물이 10여 초간 심하게 흔들려, 14억 중국인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TV과 인터넷을 통해 시시각각 전해지는 피해 지역의 참상은 지옥 그 자체였다. 사망자 6만9천명, 실종자 1만8천명, 부상자 37만4천명 등 사상자 수도 기록적이었지만, 지진의 공포를 간접 체험했던 악몽은 아직도 중국인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올해 들어 잇따라 발생하는 지진은 중국인을 더욱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1월 윈난·장쑤(江蘇)·산시(山西)·헤이룽장(黑龍江) 등 중국 전역에서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꼬리를 물고 발생했다. 특히 윈난 성 잉장(盈江) 현에서는 1월 초부터 3월10일까지 3백여 차례의 지진이 일어나, 25명이 죽고 34만4천6백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3월 들어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각지에서는 규모 4~6의 지진이 여섯 차례 일어나 수십 명이 다치고 수백 채의 가옥이 파괴되었다. 중국지진네트워크센터 쑨스훙 수석예보관은 “중국 내 지진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하다. 조만간 지난해 4월에 일어났던 칭하이 성 위수(玉樹) 현 지진에 맞먹는 규모 7.0의 대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경고했다.

▲ 지난 3월17일 중국 간쑤 성 북서쪽에 있는 란조우 시내 한 슈퍼에서 소금을 사려는 사람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AP연합

지진의 트라우마보다 중국인들을 불안케 하는 것은 경험하지 못한 방사능의 위협이다. 현재 중국은 전체 전력 생산량의 절대 다수를 화력 발전에서 얻어낸다. 원자력 발전량은 1천80만㎾로, 전체 발전량의 1.1%를 차지한다. 이는 세계 평균 수준인 16%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다. 중국 정부는 2009년 코펜하겐 기후협약에서 오는 202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단위 기준당 탄소배출량을 지금보다 40~45%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화력발전소는 중국 정부의 저탄소 발전 전략에 큰 걸림돌이다.

대안을 찾는 중국 정부에게 원자력은 복음과도 같은 에너지 자원이었다. 지난해 7월 중국 국가에너지위원회는 “향후 10년간 8천억 위안(한화 약 1백36조원)을 투자해 원자력 발전 용량을 8천만㎾까지 끌어올리겠다”라고 발표했다. 2020년까지 원자력발전 용량을 여덟 배 가까이 늘려 전체 전력 생산량의 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재 공사 중인 원자력 발전소는 26기, 발전 용량은 3천97만㎾에 달한다. 기존에 운영 중인 원전 13기의 두 배에 달하는 숫자이다. 여기에 50기가량의 원전을 추가 건설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중국인, 이기주의·불신 풍조 버려야”

▲ 쓰촨 대지진 당시 곳곳에서 약탈 사건이 발생했다. 위는 희생자가 남기고 간 유품을 재활용하기 위해 모은 신발들. ⓒ모종혁 제공

문제는 운행 중이거나 건설 중인 원전의 안정성이다. 지난 3월16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와의 인터뷰를 인용해, “건설 중인 중국 원전의 41%가 구식 원자로를 사용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현재 중국은 원전 안전 교육을 위해 한 해 50만 달러를 쓰는 반면, 미국은 7백만 달러를 쓴다”라며 중국 원전의 안전성에 깊은 의구심을 제기했다.

국내외에서 쏟아지는 우려를 의식해, 중국 국무원은 지난 3월16일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의 승인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원자력 대국’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겠다는 것은 아니다. 핵 시설에 대한 안전 검사 실시, 새 원전 계획에 대한 심사 및 비준 잠정 중단 등 숨 고르기에 들어갔을 뿐이다. 중국 환경보호부 장리쥔(張力軍) 부부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운행 중인 원전에 대한 안전 점검을 실시했으나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라며 원전 건설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중국핵공업집단공사(CNNC), 광둥핵발전집단(CGNPC) 등 원전 개발 업체도 “지진 등 재해 요소를 고려해 원전 부지를 선정하고 엄격한 안전 검사를 거친다”라며 중국 원전의 안정성을 강조했다.

일본 대지진은 중국인들에게 각성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지진의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지키고 남을 배려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베이징에서 변호사 일을 하는 겅판 씨(32)는 “생필품이 부족한데도 가게 앞에서 차례를 지키며 줄을 서는 일본인들이 경이로웠다”라고 말했다. 상하이의 한 영국계 은행 법률팀에 근무하는 덩유에 씨(33·여)는 2008년 고향인 쓰촨 성에서 일어난 상황과 비교하며 부러워했다. 그는 “당시 쓰촨의 여러 지역에서는 구호품 쟁탈전과 빈집 약탈이 빈발했었다. 일본인의 의식 수준과 민도가 우리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라고 토로했다.

이런 분위기에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1923년 관동(關東) 대지진 때 일본인들이 재일 중국인과 조선인에게 저지른 만행을 거론하며 여론을 환기시키고 있다. 하지만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대세이다. 소금 사재기와 같은 황당한 사건이 일본 현지나 이웃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둥(廣東) 성의 한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는 라이윈 씨(39)는 “소금 사재기는 중국인의 낮은 시민 의식과 극단적인 이기주의, 만연된 불신 풍조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라고 말했다.

덩유에 씨는 “소금을 사려고 가게로 달려간 대다수가 중·노년층과 서민들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최근 폭등하는 물가에 대한 불안감이 지진 및 방사능 공포와 겹치며 일어난 현상이다”라고 진단했다. 라이윈 씨는 “원전이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자원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난 것은 큰 수확이다. 중국 정부는 더 이상 밀어붙이기식 원전 건설을 그만두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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