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충격이 북한을 붕괴시킬 수 없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03.2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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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 리츠메이칸 대학 교수 인터뷰 / “북한, 정상회담 바라고 있어”'

 

ⓒ시사저널 전영기

지난 3월26일 서울 중구 예장동에 있는 서울유스호스텔 대강당에서는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 서승 교수(66)의 정년 퇴임식이 열렸다. 시민운동가, 정치인, 학자까지, 국내에서 이례적으로 열린 재일교포의 정년 퇴임식에 참석하느라 분주했다. 퇴임식이 열리는 대강당 연단 한가운데 앉은 주인공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니, 웃고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만들어낸 정황의 오류였을까. 자세히 보니 얼굴에 담긴 것은 웃음이라기보다 일그러짐이었다. 치유하지 못한 상흔이 표정마저 왜곡시킨 탓일까. 화상에 문드러진 상처가 웃음마저 뒤틀어놓았다. 지난 40년 전 독재 정권이 자행한 고문에 견디다 못해 시도한 분신 자살은 그에게서 ‘얼굴’을 앗아갔다.

독재 정권은 고국에 유학 온 그에게서 청춘마저 강탈했다. 육군보안사령부는 지난 1971년 서울대 석사 과정을 마친 재일교포 유학생을 ‘간첩’이라며 온갖 고문을 자행한 뒤 감옥에 가두었다. 서교수는 ‘재일교포 학생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으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년 동안 비전향 정치범으로서 투옥되었다. 서교수는 자기 표현대로 ‘원자탄으로 타들어간 들판처럼 타 문드러진 얼굴’로 20세 중반부터 40세 중반까지 교도소를 전전하며 보내야 했다.

서교수는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나온 지 17일 후인 1990년 2월28일 석방되었다. 그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 객원연구원을 거쳐 1998년부터 리츠메이칸 대학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 일본, 북한, 타이완, 미국을 오가면서 동아시아 인권과 평화의 전도사로 활동하는 서교수를 지난 3월23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에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났다.

당신은 누구인가? 전위적 혁명가, 민족운동가, 동아시아 인권운동가, 비전향 장기수 같은 온갖 수식어가 당신 이름 앞에 붙어다닌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여러 가지 구실이 있다. 집에서는 가장이고, 집 밖에서는 사회운동가일 것이다. 나는 혁명가는 아니다.(웃음) 교수라는 직함이 가장 편하다. 지난 13년 동안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 법학부 교수를 지냈다. 학생들이 ‘동아시아 인권 탐구’라는 주제로 행한 마지막 강의에 기대하지 않은 호응을 보냈을 때 감동했다. 리츠메이칸 대학 법학부 동창회를 만들어 제자들과 교류할 때 기뻤다. 옛 제자가 오사카 대학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교수로서 제 몫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보람을 느꼈다.  

당신에게 얼굴과 젊음을 앗아간 고국을 용서했나?

나는 행운아이다. 한국에서 고통받은 것은 사실이다. 내가 짊어진 고통은 그 시대를 산 이들이 함께 진 고통이다. 그 고통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정년을 마치게 되자 오키나와, 교토, 서울, 도쿄에서 퇴임식이 차례로 열리고 있다. 부산에서도 제의가 오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나만큼 퇴임식을 많이 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감옥에서 고통받은 만큼 관심과 지원이 많았다. 감옥에서 나오니 미국 인권운동가가 초청해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또 당시 석사나 박사 학위가 없는 내가 리츠메이칸 대학 법학부에서 교수로 임용될 수 있었다. 

경제 성장뿐만 아니라 민주화나 인권 신장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은 놀랍게 발전했다. 서교수가 수감 생활을 할 때와 많이 달라졌다. 21세기 한국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경제 성장뿐만 아니라 인권, 평화, 분쟁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둔 나라이다. 수백만 명이 죽는 전쟁을 벌인 두 나라가 6·15 공동선언을 발표하며 화해와 통일을 모색한 것은 세계사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여유가 있는 한국이 양보와 타협을 통해 분쟁 해결을 주도한 것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3년 민족 화해, 평화,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남한은 후퇴했다. 재일교포마저 북조선 국적을 갖고 있으면 성묘나 학술 교류마저 금지하고 있다. 재일교포 여성 한 분이 제주도에 있는 아버지 무덤에 다녀오겠다는 성묘길마저 지금 한국 정부는 불허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은 입국이 되고, 일본 조선족은 입국을 금지하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한국이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한국은 북조선보다 우위에 있는 나라이다. 독재와 획일성에 찌든 북조선과 달리 한국은 다양성을 포용하는 나라였지 않았나. 사람은 만나고 대화해야 한다. 북조선 사람들도 두세 번 만나면 마음을 털어놓고 말하더라. 지금처럼 차단하고 배제해서는 무력과 전쟁밖에 기대할 수 없지 않은가.

남북 관계가 경색된 데는 북한 정권의 책임도 있지 않은가?

물론 북조선 사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군사적 긴장으로 위축되어 있다. 상당히 통제된 사회 구조를 유지하다 보니 소통이라는 것이 없다. 한국은 북조선 정권이 나쁘다고 말한다. 중국이나 베트남이 달라지는 것을 보라. 마오쩌뚱 시절 중국이 지금처럼 변하리라고 상상한 이는 없었다. 북조선도 바뀔 수 있다. 북조선은 지금 6자회담에서 평화 체제만 보장하면 핵을 포기하겠다고 공언한다. 그것을 왜 믿지 못하나? 북조선 사람들은 그것이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북조선이 현존하는 위협이라고 지목하는 한국, 미국, 일본이 북조선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하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한국이 그 정도 여유는 있지 않은가.   

북한은 지금 3대 세습까지 자행하고 있다. 도대체 북한 정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시사저널 전영기

나도 세습과 독재를 반대한다. 역설적으로 북조선 독재 체제가 유지되는 데 기여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강경책이다. 한국 정부는 지금 내부 통제를 강화해야 존립할 수 있는 체제로 북조선을 몰아가고 있다. 한국은 남북 왕래를 장려하고 북조선 개방을 유도해야 한다. 외부 충격으로 북조선 체제를 붕괴시킬 수 없다. 북조선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고 허물게 해야 한다. 북조선은 지금 지도 체제를 바꾸면 붕괴되는 것이 아니냐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남북 고위급 인사가 중국에서 비밀리에 접촉했다는 정보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북한은 어떠한 입장인가?

북조선 체제는 이른바 민주주의 체제와 다르다. 의사 결정 체계가 다르다. 중앙집권적 체제이다 보니 위에서 결정해야 한다. 그것 때문에 북조선이 병들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북조선의 현실이다. 따라서 북조선과 협상하려면 최고위급 회담이 현실적으로 가장 유효하다. 북조선 사람들의 사고 회로가 상명하복에 길들여져 있으니 어쩌겠는가. 북조선은 남북 정상회담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북조선은 자기가 한 번 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번복하지 않는다.

일본은 대지진으로 고통받고 있다. 일본이 이 위기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겠는가?

일본의 미래는 암담하다. 1990년 거품이 꺼진 다음에 일본은 내리막길이다. 일본 사회가 정신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일본은 아시아 이웃 나라들과 협력해야 한다. 일본 학자들 사이에 ‘일본 고립’이라는 용어가 유행한다. 일본은 미국만 믿고 잡고 있으면 자기들이 산다고 착각한다. 자기 주장도 없고 아시아 이익을 위해 발언한 적도 없으니 국제 사회가 일본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 젊은이에게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 숫기도 없고 패기도 없다. 리츠메이칸 대학 1학년생에게 자기 미래를 물어보면 거의 대답하지 못한다. 자기 미래를 색깔에 비유하라고 하면 검정색이나 회색이라고 답한다. 

후쿠오카 원자력발전소에 마지막까지 남은 결사대 50인을 보면 희망이 남아 있지 않은가?

그 당시 현장에 있던 도쿄전력 직원 5백명 가운데 50명이 남았을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도망갔다. 사장까지도 행방이 묘연하다. 일본 역사를 돌아보면, 일본 민중은 한데 모여 자기 의지를 관철한 적이 없다. 자기 운명을 바꾸겠다는 의식이 약하다. 일본이 이번 위기에서 다시 일어날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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