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클럽의 ‘넘치는 사랑’에 골머리 앓는 박근혜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1.03.2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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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22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국내 정치인 가운데 가장 많은 팬클럽을 거느리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이름 아래 모인 팬클럽 수만 최대 5백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4월 초에는 ‘박사모’와 ‘호박가족’이 같은 날 대규모 행사를 열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측은 이런 팬클럽들의 과열 경쟁이 반갑지만은 않은 기색이다. 오히려 걱정하고 있다. 왜 그럴까.

“도움을 주는 것보다 해를 안 끼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유력 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가까운 한 인사는 현재 난립해 있는 박 전 대표의 팬클럽을 두고 이렇게 걱정했다. 일부 팬클럽에 대해서는 권력화되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팬클럽이 권력을 갖게 되면 과거 정치 브로커와 별반 다를 바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너무 설쳐대면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팬클럽을 거느린 정치인이다. 박 전 대표의 이름 아래 모인 팬클럽 수만 해도 최대 5백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이다. 물론 이 중에는 회원이 수십 명에 불과하거나,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무늬만 팬클럽’인 곳도 있다. 이들을 제외하더라도 박 전 대표는 팬클럽 숫자에서 다른 정치인들을 단연 압도한다.

국민의 지지를 먹고 사는 정치인에게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지만, 박 전 대표 주변에는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는 팬클럽의 활동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모임이다 보니 이래라 저래라 드러내놓고 간섭할 수는 없지만, 일정 부분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특히 내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팬클럽 간 과열 경쟁이 불붙을 경우에 득보다 실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참가자들에게 배지·회원증 나눠줄 예정

현 정부 들어 지난 3년간 ‘잠행’을 거듭하던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은 올해 들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해 팬클럽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연히 눈에 띄는 몇몇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박사모)’이다. 박사모는 오는 4월2일 대전에서 7주년 대잔치 행사를 갖는다. 이를 위해 박사모는 6천석 규모의 실내 체육관을 통째로 빌렸다. 정광용 박사모 회장은 “버스 100대를 빌려서 전국의 회원이 함께 모일 수 있도록 했다. 이제 힘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 이날 박사모는 환골탈태할 것이다. 중대 발표도 있다. ‘친이(친이명박)계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밝힐 예정이다. 그 밖에도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하는 두 가지 선언이 더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1월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근혜천사 바자회’ 행사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사모는 이번 행사에서 참가자 전원에게 박사모 배지와 스카프 그리고 회원증을 지급할 계획이다. 황동에 순금을 도금한 배지에는 ‘대한민국 박사모’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파란색 바탕에 여러 개의 태극기 문양이 들어간 스카프에는 ‘2012년 그날의 승리를 위하여’라고 적혀 있다. 회원증은 주민등록증이나 기업체의 신분증과 유사한 양식이다.

박사모가 이처럼 대대적인 행사를 펼치는 데 대해 다른 팬클럽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 팬클럽 회장은 “개인 카페로 시작한 박사모가 무슨 창립일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느냐”라고 힐난했다. 특히 회원증 발급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박사모에서는 회원들의 소속감과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회원증을 명분으로 충성심 경쟁을 부추길 수 있고, 자칫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전체 회원이 아닌 행사 참석자에게만 회원증을 지급하는 것도 문제로 거론된다. 누구나 가입해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팬클럽의 본래 취지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권력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회원증을 발급받으려는 회원은 닉네임은 물론 실명, 성별, 생년월일, 주소,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박사모는 회원증이 지금까지 사용하던 명찰을 대신하는 용도이며, 어떤 경우에도 대외 과시용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당부 자체가 스스로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사모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정치권과 각을 세워왔다. 여당 내 친이계는 물론,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들 중에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친박계의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인사는 “박사모는 이미 너무 커져버렸다. 사실상 통제가 안 된다. 마치 브랜드를 쥐고 있는 자가 제조업체를 좌지우지하는 형국이다. 우리와 박사모는 전혀 별개이지만, 문제는 국민들이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고, 거기에 고민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팬클럽은 정치인에게 양날의 검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신의 손이 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사모가 7주년 대잔치 행사를 여는 그날, 공교롭게도 또 다른 팬클럽인 ‘호박가족’은 경남 창원에서 1박2일 일정으로 워크숍에 들어간다. 두 단체는 현재 박 전 대표 팬클럽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그래서 치열하게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조직이다. 이 워크숍은 당초 지역 행사로 계획했는데 준비 과정에서 전국 행사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박 전 대표가 패배한 이후 팬클럽에 대한 교통정리 시도가 있었다. 그 구심점 역할을 맡은 곳이 호박가족이다. 박 전 대표와 친박계 진영에서 힘을 실어주면서 공식 팬클럽 자리를 차지했다.

‘대박’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박 전 대표는 2008년 1월11일 올린 글에서 “그동안 여러 곳에 흩어져서 활동하던 팬카페의 운영자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하나가 되고자 하는 마음과 뜻을 모으고, 회원들의 뜻을 반영해서 호박가족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라며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호박가족은 더 이상 힘을 얻지 못했다. 기존 팬클럽의 참여가 기대한 만큼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분리해서 독립하는 팬클럽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힘을 실어주었음에도, 오히려 그것이 ‘낙하산 단체’라는 악재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산 호박가족 대표는 “헤쳐 모여를 하는 것이 원래 목표였는데, 간판을 내리는 데 대한 거부감이 컸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팬클럽 간의 이해관계와 경쟁 의식이 이처럼 첨예하게 엇갈리다 보니 애초부터 하나로 묶으려 했던 것이 무리수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박사모 정광용 회장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다. 지난해 9월부터 주요 팬클럽 회장단이 매달 한 번씩 모임을 갖기로 했다는 전언이다. 호박가족과 박사모를 비롯해 2002년에 문을 연 박 전 대표의 첫 팬클럽 ‘근혜사랑’, 2009년에 창립한 ‘근혜동산’과 ‘뉴박사모’ 등 5개 대형 팬클럽이 대상이다. 이들 팬클럽은 김장 담그기 행사 등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임에 정광용 회장은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회장이 대신 자리를 함께해왔는데,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박사모는 아예 모임에서 제외될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모뿐 아니라 회장단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다른 팬클럽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초 호박가족이 2기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내분이 일어난 것도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또 다른 팬클럽 관계자는 “조직이 갈라지다 보니 실질적으로 투표에 참여한 회원은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대권 길에 짐이 될 가능성 크다”

박 전 대표의 팬클럽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내부 갈등으로 인해 갈라서기를 반복하는 이유에 대해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초창기부터 팬클럽 활동을 해 온 한 인사는 “호박가족을 형성해 온 주된 구성원 대부분이 박사모 출신이다. 외부에서 보았을 때 어떤 이유에서든 한 번 집을 박차고 나간 사람들이다. 서로 간에 갈등이 생기면 아예 모르는 사이보다 더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근혜동산과 뉴박사모 역시 박사모에서 분리되어 나간 팬클럽이다. 회원들끼리 첨예한 이해관계와 갈등 대립이 빚어진 셈이다.

박 전 대표의 주요 팬클럽 회원만 모아도 20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물론 팬클럽에 따라 성향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정치 참여에 나서는 곳도 있고, 봉사 활동에 매진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목표로는 이구동성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꼽는다.

그러면서 다들 개인적인 욕심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변은 몰론 내부에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고 있다. 한 친박계 인사는 “팬클럽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팬으로 남아야 하는데, 속된 말로 감투 쓰려고 활동하거나 나중에 뭔가를 바라는 사람이 없지 않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논공행상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팬클럽이 박 전 대표의 대권 가도에 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지난 3월18일 열린 재외 참정권 관련 심포지엄. ⓒ연합뉴스

해외 거주 동포들이 국내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유력 정치인의 팬클럽들이 교포 회원 모집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전세계적으로 새롭게 투표권을 갖게 되는 유권자 수는 약 2백8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투표율이 어느 정도 될지 아직은 가늠하기 힘들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들의 선택이 선거의 당락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팬클럽들도 해외 지부를 두고 회원 확보에 나선 상태이다. 특히 교민 사회가 활발한 북미 지역을 공략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 지역은 예상 유권자 수가 1백22만명으로 가장 많다. ‘박사모’는 올해 1월 말 기존의 해외본부에서 미주본부를 분리해 독립시켰다. 워싱턴·시카고·보스톤 지부장에 지역 교민을 추인하는 등 점차 세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글로벌 다문화 본부를 두고 있는 ‘근혜동산’도 해외 기구 확대를 준비 중이다. 김주복 근혜동산 회장은 “해외 교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매주 지부가 한두 개씩 탄생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올해 초 해외동포본부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의 인원을 점검하는 등 교포 회원 챙기기에 나선 ‘근혜사랑’도 재외 선거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호박가족’도 해외 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교포사회에서는 때아닌 감투싸움과 조직 경쟁이 빚어지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거주하는 언론인 출신의 한 교포는 “내년 한국에서 벌어지는 선거 때문인지 이곳에서는 민주평통 위원 감투를 놓고 벌써부터 자리싸움이 치열하고, 특정 정치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명함에 박고 다니며 교민들을 모으는 자들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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