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빼고는 머리 ‘지끈지끈’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03.2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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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재·보선과 대권 함수 관계 / ‘정운찬 띄우기’ 노리던 여권 주류는 맥 빠져…야권도 상황 절박

 

▲ 지난해 7월29일 정운찬 당시 국무총리가 정부중앙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사의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끝낸 후 돌아가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정운찬 전 총리를 띄워주기 위한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지금 정 전 총리의 말이나 행동을 보면 전혀 평소의 그답지 않다. 무언가 시나리오에 의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다.”

지난 3월21일 기자와 만난 친박계의 한 핵 심 인사는 정운찬 전 총리의 행보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당시 정 전 총리는 이익 공유제 논란을 야기하며 현 정부와 한껏 각을 세우고 있던 중이었다. 정 전 총리는 언론에 대고 “현 정부에 동반 성장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진심으로 동반 성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구호만 내세우려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라고 강도 높게 MB(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동반성장위원장직 사의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마치 지난 1990년대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에게 대들었던 이회창 총리를 연상케 했다.

그러자 청와대가 정 전 총리에게 밀리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정 전 총리가 동반성장위원회를 계속 맡아줘야 한다는 것이 우리 뜻이다”라며 감싸기에 급급했다. 때마침 이재오 특임장관도 트위터에 이익 공유제를 지지하는 글을 남기며 정 전 총리 띄우기에 나섰다. 앞서 언급한 친박계 핵심 인사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주목했다. 그는 “정 전 총리는 요 며칠 사이 총리 시절보다 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단번에 대통령과 맞서는 위치로 올라섰다”라고 평가했다. “몸값이 한껏 더 올라가면 아마도 못 이기는 척하고 친이계의 4·27 재·보선 성남 분당 을 출마 요구를 받아들일 것 같다”라고 전망했다.

손학규-유시민, 양강 구도 유지 노릴 듯

▲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왼쪽)와 민주당 손학규 대표. ⓒ연합뉴스

친박계 쪽에서 정 전 총리의 행보에 유난히 민감해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여전히 친이계에서 만지작거리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 카드이기 때문이다. 친이계 일각의 부정적 견해에도, 정 전 총리의 분당 을 출마 가능성의 불씨가 계속 살아 있었던 것도 이재오 장관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부채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정운찬 대권 주자 띄우기’에 이장관 등과 함께 ‘창성동 청와대 별관팀’이 배후로 거론되기도 했다. 평소 정 전 총리와의 접촉설이 나돌았던 박형준 사회특보를 주목하는 시선이었다. 

4·27 재·보선이 향후 여야의 대권 구도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여권은 정운찬 전 총리와 김태호 전 총리 내정자 등 ‘잠룡’으로 분류되는 거물급 정치인을 직접 내세우고자 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독주하는 판을 흔들어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하지만 돌발 변수가 터졌다. 3월22일 출간된 신정아씨의 에세이집 <4001>에 따른 파장으로 정 전 총리 출마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해졌다. 김태호 전 내정자의 경남 김해 을 출마는 기정사실화되고 있지만, 그 파장이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쪽에 점점 더 무게 중심이 쏠리고 있다. 수도권의 한 친이계 의원은 “현재의 지역 분위기로 볼 때 김해 을은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다. 만약 김해 을과 전남 순천을 지더라도, 분당 을과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해서 2승 2패가 되면 재·보선 성적으로는 성공적인 것 아닌가”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설령 김 전 내정자가 당선된다 하더라도 유력한 대권 주자로 치고 올라갈 동력은 약해 보인다”라는 견해를 덧붙였다.

그래서일까. 친박계의 입장은 한결 느긋해 보인다. 영남권의 한 친박계 의원은 “어차피 재·보선은 재·보선일 뿐이다. 재·보선이 대권 구도에 무슨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라며 친이계를 힐난했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강원도지사 선거 지원에 나설 것이다”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자 또 “만약 한나라당이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패하면 박 전 대표도 내상을 입는 것이 아닌가”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를 의식했음인지 앞서 언급한 친박계 의원은 “선거는 당 지도부 중심으로 치르는 것이 맞다는 박 전 대표의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라는 말로 선거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으려는 친박계 전략의 일단을 드러냈다. 

여권에서는 오히려 분당 을 출마를 노리는 강재섭 전 대표의 여의도 재입성이 이루어질 경우, 그에 따른 당내 역학 구도의 변화 가능성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더 많다. 친박계의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인사는 “강 전 대표는 이재오 장관하고 맞설 수 있는 거물급이다. 현재 친박계에 확실한 좌장이 없는 상황에서 ‘강재섭 카드’는 우리로서도 그리 나쁘지 않다. 강 전 대표는 지난 2007년 경선 당시 우리를 버리고 친이계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부채 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여권에 비해 야권은 재·보선을 바라보는 시선이 훨씬 더 절박하다. 현재 야권의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불가피하게 정면충돌하는 양상이 빚어지면서 그 결과에 따라서 두 사람 중 누구 한 명 또는 둘 모두 큰 내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양측은 ‘어떻게 하든 큰 상처를 입지 않고 재·보선을 무사히 넘기고 싶은’ 동변상련의 심정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더 지금의 양강 구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특히 손대표의 처지가 더 곤혹스러워 보인다.

일찌감치 전남 순천 무공천을 천명한 손대표는 김해 을과 강원도 선거 지원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당내 비주류측은 “손대표가 분당 을에 출마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손대표의 한 측근은 “대선을 바라보고 있는 정치인에게 자꾸 재·보선에 출마하라고 하는 (비주류의) 그 저의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또 당 대표로서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다는 데에 고민의 일단이 있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어차피 (대선이라는) 큰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입장에서 당내 일정한 비판은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라는 말로 원래의 대선 궤도를 이탈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유시민 대표의 입장에서도 김해라는 상징성이 있는 지역에서  원내 진입 교두보를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실제 당 주변에서는 “이번에 한 석이라도 얻어야 내년 총선에서 고정 기호를 얻을 수 있다”라며 유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천호선 국민참여당 최고위원은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내년 4월 총선에 맞춰져 있다. 한 석의 의미가 소중한 것은 맞지만, 당장 이번의 결과로 당의 운명이나 유대표의 대권 가도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야권 연대라는 결실을 잘 지켜나가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의미 있는 패배’도 중요하다는 ‘포석’을 깔아두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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