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신인인가, 노쇠한 루키인가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1.04.0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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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한화 유창식, 빠른 공에 경기 운영 능력도 뛰어나 신인왕 후보로 꼽혀…임찬규·윤지웅도 주목

 

▲ 지난해 ‘프로야구 2011년 신인 선수 지명회의’에서 1순위로 지명받은 선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2011 야구 시즌이 개막했다. 여덟 개 구단은 저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자신한다. 그러나 선뜻 우승 후보를 꼽기 어렵다. 각 구단의 전력이 어느 시즌보다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신인왕 후보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신인이 많아 누가 29번째 신인왕에 등극할지 예상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강력한 후보는 있다. 19세 좌완투수 유창식(한화)이다.

고교 시절만 놓고 본다면 유창식이 류현진보다 한 수 위

▲ 유창식 ⓒ시사저널 윤성호

“유창식이 낫다. 공도 빠르고, 경기 운영 능력도 뛰어나다.” 지난해 고교 야구 왕중왕전에서 만난 한 구단 스카우터는 고교 시절만 비교하면 유창식이 류현진(한화)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그 스카우터는 2005년 가을에 작성한 스카우팅 리포트를 펼쳤다. 거기에는 인천 동산고 류현진의 기록과 특징이 명기되어 있었다. ‘고교 3년간 53⅔이닝을 던져 6승1패 평균 자책 1.54 기록. 왼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했음. 시속 1백40km 중·후반대의 속구를 던지나, 변화구가 단조로움. 마운드 운영 능력도 다소 미흡.’ 그는 이어 지난해 작성한 스카우팅 리포트를 꺼냈다. ‘광주일고 유창식. 고3 때만 52이닝을 던져 6승2패 평균 자책 0.52 기록. 시속 1백40km 후반대의 강속구 던짐.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며 경기 운영 능력이 뛰어남.’

사실이었다. 고교 시절만 비교하면 유창식의 성적이 류현진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물론 류현진은 고교 시절 팔꿈치 수술을 받아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반면 유창식은 건강한 몸으로 고교 3년간 호투를 거듭했다.

고교 시절 유창식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탈삼진 능력이었다. 이닝당 삼진 수가 1개가 넘었다. 최고 구속이 시속 1백50km에 이르는 속구는 공 끝이 좋아 타자들의 눈에는 실제 구속보다 빠르게 보였다. 슬라이더와 커브 구사도 수준급이었다.

눈에 보이는 투구만 훌륭한 것이 아니었다. 성격과 야구 열정도 대단했다. 지난해 7월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 선수들은 유창식을 ‘곰’이라고 불렀다. 곰처럼 인상이 순하고, 행동이 다소 굼떠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운드에 오르면 싸움닭 같은 공격적인 투구로 시종일관 타자들을 몰아세웠다.

▲ 홍건희 ⓒ뉴스뱅크

한화 한대화 감독은 유창식의 장래가 기대되는 이유를 “스피드건에 찍히는 속구 구속보다 야구를 대하는 진중한 자세와 열정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1백85cm, 88kg의 타고난 체격과 시속 1백50km에 육박하는 빠른 공, 진중한 야구 열정을 모두 갖춘 유창식에게 한화가 계약금 7억원을 안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고교 시절 유창식의 최대 장점은 열여덟 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원숙한 마운드 운영과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노련한 투구 패턴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전국대회에서 유창식이 기록한 탈삼진 가운데 3분의 2는 결정구가 변화구였다. 속구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거나 결정구를 던지기 전 ‘보여주는 공’으로만 사용했다.

재미있는 것은 변화구에도 속도의 가감 차이를 두었다는 것이다. SK 박철영 스카우터는 “같은 슬라이더를 던져도 구속 차이가 10km 이상 났다. 구속의 강약 조절로 타자들을 유인할 줄 아는 18세 베테랑이었다”라고 유창식을 회상했다.

하지만, 유창식의 농익은 마운드 운영을 비판적으로 보는 스카우터도 많았다. “또래 고교 타자들에게나 통할 마운드 운영이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한 스카우터는 “대부분 고교 투수가 힘으로 윽박지르는 투구를 하다 보니 유창식의 노련한 마운드 운영이 상대적으로 돋보인 것뿐이다. 그 정도 노련함은 아마추어에서나 통하지 프로에서 먹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단언했다. 이 스카우터는 오히려 “고교 시절 류현진이나 김광현처럼 시원시원하게 던지는 투수가 프로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주장했다. 노련미와 기교는 프로 입단 후, 경험을 쌓으며 키워도 전혀 늦지 않다는 뜻이다.

▲ 윤지웅 ⓒ뉴스뱅크

지난해 ‘유창식 쟁탈전’에 뛰어들었던 미국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도 결국에는 “이미 발전한 선수라, 더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라며 거액의 베팅을 철회한 바 있다. 수도권의 어느 스카우터는 “유창식은 ‘제2의 류현진’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잘해야 장원삼(삼성) 정도로 성장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역시 “발전 가능성이 크지 않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류현진 이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긍정적 예상과 ‘발전 가능성이 크지 않다’라는 부정적 전망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야구계는 일단 유창식의 성공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속구 구속과 제구가 일품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좌완이라는 프리미엄도 무시할 수 없다. 유창식은 일본 스프링캠프에서 변화구 구종을 추가하려 노력했다. 스플리터가 그것이다. 고교 무대를 평정한 슬라이더와 종으로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확실히 익힌다면 유창식은 더 강한 투수가 될 것이다. 류현진도 프로 입단 후, 선배 구대성으로부터 배운 체인지업을 익히고서 빠르게 발전했다.

그러나 유창식의 데뷔 시즌은 2군에서부터 시작한다. 어깨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스프링캠프에서 유창식은 어깨 통증으로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 한대화 감독은 유창식에게 “2군에서 충분히 재활하라”라고 지시했다.

신인왕 후보 경쟁에 ‘다크호스’는 많다

▲ 임찬규 ⓒ뉴시스

만약 유창식의 재활이 늦어진다면 올 시즌 신인왕 후보 구도는 복잡해진다. 물론 다크호스가 없지는 않다. 먼저 임찬규(LG)가 있다. 유창식의 청소년 대표 동기인 우완 투수 임찬규는 지난해 전국대회에서 8승1패 평균 자책 1.27을 기록했다. 특히나 탈삼진 77개를 기록하는 동안 볼넷은 17개만 내주는 등 뛰어난 제구력을 과시했다. LG 스카우트팀이 신인 지명 회의를 앞두고 임찬규를 몰래 불러내 메디컬 체크를 받게 한 것도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시범 경기에서 4경기에 등판해 승패 없이 평균 자책 9.00을 기록하며 “아직 즉시 전력감이 아니다”라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봉중근, 벤자민 주키치가 부상으로 이탈하며 운 좋게 개막전 등록선수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좌완 투수 윤지웅(넥센)도 자타가 공인하는 신인왕 후보이다. 대졸 신인으로, 개막전 1군 명단에 포함되었다. 넥센 김시진 감독은 대놓고 “팀의 10년을 이끌 투수이다”라고 그를 칭찬한다. 시범경기에서 일곱 경기에 등판해 평균 자책 9.00를 기록했지만, 경기 내용은 수준급이었다는 평이다.

공교롭게도 유창식, 임찬규, 윤지웅은 1라운드 지명자들이다. 많은 야구 전문가는 “2라운드 지명자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라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인 선수가 홍건희(KIA)이다.

지난해 신인 지명 회의에서 KIA에 2라운드로 지명된 홍건희는 시범경기에서 인상적인 투구를 펼쳤다. 3경기에 등판해 7이닝을 던져 평균 자책 2.57을 기록했다. 19세 투수치고는 몸쪽 승부를 즐기는 등 공격적인 투구로 주목을 받았다.

만약 홍건희가 신인왕의 주인공이 된다면 KIA는 1985년 이순철 이후 팀의 전신이었던 해태 시절을 합쳐 26년 만에 신인왕을 배출한다. 2001년 창단한 KIA는 8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아직 신인왕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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