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멘토’ 탄생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04.04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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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탄생>이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이유

 

▲ 김태원 ⓒMBC 제공

<위대한 탄생>은 처음에 비웃음을 들으며 시작했다. 지상파 방송사가 케이블TV의 <슈퍼스타K>를 따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슈퍼스타K>의 내용이 도전자들에게 상당히 냉혹하고 독했기 때문에 더욱 지상파 방송사가 할 일은 아니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이 본격적으로 도전자를 선택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의 평가가 완전히 변했다. <슈퍼스타K>에서 심사위원들은 그냥 ‘제 점수는요~’라고 평가만 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느 심사위원이 더 냉정하게 독설을 쏟아내는가 하는 경쟁이 펼쳐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마디로 차가웠던 것이다.

반면에 <위대한 탄생>은 멘토 제도를 도입했다. 이것은 심사위원이 단지 팔짱 끼고 물러나 앉아서 점수만 매기는 것이 아니라, 도전자를 제자로 삼아 끌어올려준다는 뜻이다. 이 시스템이 <위대한 탄생>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따뜻했기 때문이다.

이런 <위대한 탄생>의 성격을 대표하는 인물이 김태원이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찬사가 쏟아진 것은 멘토가 본격적으로 제자를 뽑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는데, 그때 부각된 인물이 바로 김태원이다. 당시 다른 멘토는 누가 보더라도 외모부터 실력까지 두드러지는 사람들을 뽑았는데, 김태원만 뭔가 부족한 면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선택했었다. 그는 자신이 뽑은 제자들을 일컬어 ‘외인구단’이라며 스스로 캐릭터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이 ‘김태원과 외인구단’의 구도에 열광했다. 그것은 어떤 스승이 아픔이 있고, 부족한 사람을 이끌어주는 모습이었다. 그가 작정하고 일부러 이런 구도를 만든 것은 아닌 것 같다. 제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는 상당히 주저했고, 다른 멘토가 먼저 선택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선택하기 않았기 때문에 결국 김태원이 ‘외인구단’의 손을 차례차례 잡아주게 되었다. 뽑힌 제자는 ‘폭풍 눈물’을 쏟았다.

이 과정에서 김태원의 인간적인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에, 시청자는 그에게 열광한 것이다. 사람이 떨려나가고 절망하는 것을 차마 지켜보지 못하는 마음, 어떻게 해서든 그의 손을 붙잡고 이끌어주려는 마음 말이다.

‘김태원과 외인구단’ 신드롬은 네 명 중에 두 명을 떨어뜨리는 단계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이때 김태원은 붙은 사람이 아니라 떨어진 두 명을 부활 콘서트의 공식 무대에 올려 세웠다. 그들에게 마지막까지 기회를 준 것이다. 그 두 명은 무대에서 뜨겁게 울었고, 그 광경을 보는 시청자도 함께 울었다.

<위대한 탄생>은 최근 신승훈과 제자들의 모습이 방영되며 또다시 호평받고 있다. 신승훈도 김태원처럼 따뜻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보면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따뜻한 손’을 갈망하는지 알 수 있다.

눈물 쏙 빠지게 다그쳤던 박칼린도 사실은 ‘따뜻한 손’이었다

ⓒMBC 제공

무조건 따뜻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지난해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박칼린의 경우는 대단히 엄격했다. 합창단 멤버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다그치기도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엄격함이 단지 상대를 무참하게 만드는 독설로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합창단원의 성장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요즘 ‘코칭’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관계 코칭’ ‘감성 코칭’ 등 온갖 코칭 강좌가 등장하고 있다. 심리학이 사람의 내면을 분석하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면, 코칭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끌어 올려준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이 다르다. 말하자면 <슈퍼스타K>의 ‘제 점수는요~’는 심리학이었고, <위대한 탄생>의 멘토제는 코칭이었던 것이다.

신승훈이 특별히 호평받은 이유도, 무조건 따뜻한 표정으로 제자를 대한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성장을 이끌어냈기 때문이었다. 김태원이 떨어진 사람들을 부활의 콘서트 무대로 올려 특별한 감동을 준 것도, 그런 경험이 도전자들을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든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도전자들이 평생 노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었다.

박칼린은 일반 회사원이라든가, 이종격투기 선수 등 온갖 사람들로 합창단을 구성했다. 거기에 노래와는 거리가 먼 <남자의 자격> 멤버가 가세했다. 특별한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합창단은 기적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되도록 합창단을 이끌었다는 점에 시청자가 감동한 것이다.

눈물이 쏙 빠지도록 다그치고는 ‘너 아웃!’ 하고 잘랐으면 설사 남은 멤버로 합창대회 우승을 했어도 박칼린 신드롬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다그쳤지만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엄격함 안에 따뜻함이 깔려 있었던 셈이다. 이렇게 따뜻하면서도 때로는 나를 매섭게 다그치며 성장을 이끌어줄 만한 책임 있는 멘토를 사람들은 갈망하고 있다. 스펙 경쟁 등 온갖 경쟁에 직면했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 속의 따뜻하고 엄격한 멘토, 강마에

▲ 방시혁 ⓒMBC 제공

시청자의 열광적인 호응이 있었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도 그렇다. 그는 처음에 고집스럽고 타인을 무시하는 캐릭터로 등장했다. 연주를 못하는 단원에게 ‘똥덩어리’라는 악담을 서슴지 않았다. 거기서 끝났으면 불쾌한 독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위대한 탄생>에서 김태원이 찬사를 듣는 동안 비난이 쏟아진 사람이 방시혁이었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독설을 상징했다. 그가 집중적인 비난을 받은 것으로도 사람들이 도전자를 무참하게 만드는 구도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자극적이므로 욕하면서도 계속 보기는 하지만 불쾌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방시혁이 도전자들을 ‘내 새끼들’이라고 했을 때 그를 향한 비난은 누그러졌다. 그의 어법이 도전자를 더 끌어올려주기 위한 채찍질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이해한 것이다.

‘강마에 신드롬’은 바로 이 지점에서 터졌다. 처음에는 냉혹한 독설꾼 정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단원들 하나하나를 ‘내 새끼’처럼 여기며 그들의 성장을 위해 헌신하는 캐릭터였다. 그는 자신의 봉급을 포기하면서까지 단원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려 애썼다. 그러자 시청자들이 열광하며 신드롬이 형성되었다.

우리 사회는 외환위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장화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자 양극화와 미래 불안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자신을 받쳐주고 이끌어줄 ‘따뜻한 손’을 갈망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TV를 매개로 표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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