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표준’ 놓고 외나무 다리 대결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1.04.04 20: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영수 LG디스플레이 대표·조수인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대표, 미래 시장 잡기 치열한 경쟁

 

▲ 조수인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대표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3월을 뜨겁게 달구었던 3D TV 기술 전쟁의 배경에는 세계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있다. 그중에서도 두 기업의 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이하 LGD)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이하 SMD)는 최근 감정싸움까지 서슴지 않는 경쟁 업체로 떠올랐다. 두 회사는 3D TV를 비롯해 모바일 및 IT용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스스로 빛을 내는 현상을 이용한 디스플레이로 LCD 이상의 화질과 단순한 제조 공정으로 가격 경쟁에서 유리하다) 같은 미래 핵심 디스플레이 산업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시장을 얼마나 많이 점유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기술 우위를 통해 잠재된 미래의 고객층을 확보하는 것이 이들의 과제이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표준 기술 자리를 놓고 펼쳐지는 치열한 대결은 삼성과 LG 모두 피해갈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그만큼 두 회사 대표들의 어깨가 무거울 것이고, 사소한 신경전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LGD, FPR 3D 패널로 3D TV 시장 치고나가

지난 3월10일 3D TV 시연회를 열어 삼성전자에 반격을 가한 인물은 다름 아닌 LGD 권영수 사장(54)이었다. 그는 직접 시연회를 진행하며 “경쟁 업체(삼성전자)가 빠른 시간 내에 전문가 비교 시연을 제안해 오면 즉각 응하겠다”라고 받아치며 불편한 심경을 그대로 드러냈다. 권영수 사장은 LGD를 명실공히 세계 시장의 선두 주자로 만들어낸 일등 공신이다. 그는 LGD의 현 상황에 꼭 맞는 체질 개선과 경영 구조 혁신을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사장의 리더십은 그가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달성한 영업이익으로도 알 수 있다. 그가 LGD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기 1년 전인 지난 2006년까지만 해도 LGD는 8천7백90억원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07년 그가 사장으로 취임한 뒤 LGD는 3년 내내 영업이익 1조원 이상을 기록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LCD 회사로 거듭났다. 지난 2010년에는 1조3천1백5억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무려 30%나 증대된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공격적인 투자와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실적 호조라는 결실을 맛본 것이다.

이에 탄력을 받은 LGD는 2011년 3D TV에 사용되는 패널인 ‘FPR(필름패턴 편광안경 방식) 3D’ 패널을 통해 세계 3D 시장에서 확실하게 주도권을 차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권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FPR 3D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적극 프로모션해 시장을 확대해나가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비단 계획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FPR 3D 신제품 판매를 시작한 중국에서 불과 두 달 만에 누적 판매량 10만대를 돌파했다. 공급이 주문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권영수 사장은 “대다수 소비자가 원하는 가전제품은 합리적인 가격을 갖고 있으면서, 쉽고 편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FPR 3D TV는 그런 점에서 절대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기술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SMD측은 의외로 조용했다. 삼성전자가 나서서 맹공을 퍼붓기는 했지만 LGD 권영수 사장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데 반해 경쟁 디스플레이업계 수장인 SMD 조수인 사장(55)은 조용히 사태를 주시했다. 이유는 최근 두 회사가 맞붙고 있는 기술을 보면 알 수 있다.

SMD, 앞선 소형 패널 기술로 대형도 넘봐

▲ 권영수 LG디스플레이 대표 ⓒ시사저널 윤성호

바로 TV용 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패널 시장이다. 보통 AMOLED 패널은 스마트폰과 같이 크기가 작으면서도 고화질 화면이 필요한 제품에 주로 쓰인다. 이는 SMD의 주력 기술이기도 하다. 그런데 패널이 대형화하면서 경쟁 업체가 진입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역시나 LGD가 SMD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11년은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대형 AMOLED 산업을 놓고 경쟁을 본격화하는 해가 될 것이다. LG디스플레이는 AMOLED 산업의 선두 업체인 SMD와는 다른 기술의 전략을 택함으로써 대형 AMOLED 패널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는 SMD가 소형에서 확보한 기술과 시장 주도권을 대형 AMOLED에서도 유지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SMD와 LGD 모두 오는 2013년 상반기에 8세대(대형) AMOLED 라인을 가동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 기술 우위 경쟁이 더 뜨거워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치열한 경쟁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조수인 사장은 지난 2010년 12월3일 실시한 삼성 사장단 인사에서 SMD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AMOLED 시장을 비롯한 신성장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전진 배치된 것이다. 그는 1979년에 삼성전자에 입사해 ‘D램의 달인’으로 불리며 삼성 반도체 신화를 일군 주역 가운데 한 명이다. 순수 국내파이면서도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기술 부문에서 세 차례나 수상했을 정도로 실력파로 인정받고 있다. 전자공학과 출신답게 기술 개발 측면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인 것이다. 그는 소탈한 성격이지만 업무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추진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수인 사장과 권영수 사장이 공식 석상에서 만난 것은 지난 3월3일에 열린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정기총회에서였다. 세계 시장을 향해 가는 두 대표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흘렀다. 이 자리에서 조수인 사장은 “5.5세대 OLED 라인 가동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상반기 중 본격 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하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주력 기술인 AMOLED 대형화에 관련해서는 “대면적 AMOLED 라인 건설에 대해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관련 장비나 제반 환경을 봐가면서 추진할 문제여서 아직 구체적인 사항을 결정한 것은 없다”라고 말하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SMD 사장 취임 후 첫 국내 외부 행사였기 때문에 조수인 사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관련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권영수 사장도 만만치 않았다. 권사장은 자사 3D TV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40인치 이상 대형 LCD 패널을 소니에 공급하기 위해 협의하고 있다”라고 밝히며 공격 경영의 포부를 드러냈다. 소니는 동종 업계 선두권에 있는 브랜드이다. 따라서 소니와 협력 관계를 맺는다면 업계 전반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얻게 된다. 선두 다툼이 치열한 삼성과 LG에게 민감한 문제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두 회사, 패러다임 변화 공감…처방은 제각각

지난해 12월, 삼성과 LG의 오너들은 각 기업의 주력 사업인 전자 업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직감했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새로운 10년이 시작되었으며, 이것은 이전 10년과는 다르다. 21세기의 10년은 굉장히 빠르다”라는 말로, LG 구본무 회장은 “어려워진 사업에 있어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리더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라는 말로 ‘위기’를 표현했다.

진단은 비슷했다. 그러나 처방은 달랐다. 이는 조직 개편 및 인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삼성은 대수술을, LG는 대동소이한 행보를 보였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메모리반도체 담당 사장이었던 조수인 사장이 SMD 대표이사 사장으로 전격 이동한 데 반해 권영수 LGD 사장은 유임되었다.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해 삼성과 LG가 내린 서로 다른 처방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두 기업의 끝나지 않은 기술 전쟁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