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맛 보러 와요”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1.04.1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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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와 디지털을 화두로 출발…4월28일 12번째 막 올려

 

“소리 없이 강하다.” 4월28일 12번째 막을 올리는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한 영화인의 평가이다. 전주영화제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대형 스타가 많이 찾지는 않지만 착실한 성장세를 보여왔다. 2000년 출범해 최근에는 부산국제영화제 다음으로 국내에서 권위 있는 영화제로 정착했다. 독립영화와 디지털을 화두로 출발한 영화제로서는 예상 밖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평가이다.

마니아 영화제로 ‘넘버2’ 등극

전주영화제는 초기에 비주류 영화제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중이 쉬 알지 못하고 외면하게 마련인 세계의 독립영화를 적극 소개해왔다. 주류 영화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축제 의도는 종종 엘리트주의적 편향성을 지녔다는 평가도 받았다. 디지털이라는 키워드도 출범 초기 거리감을 주었다.

12년이 지난 지금 전주영화제의 성장세는 뚜렷하다. 지난해 전주영화제 좌석 점유율은 83.4%였다. 2006년(70%)보다 13.4%포인트나 늘어났다. 전주를 찾는 전체 관객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총 관객은 6만6천9백13명으로 2006년(5만9천명)보다 7천명가량이 많았다. 부산영화제(2010년 기준)의 관객 수(8만2천46명)와 좌석 점유율(78%)에 버금가는 성과이다. 지난해 전주영화제 예산(31억원)을 감안하면 아주 짭짤한 장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부산영화제의 지난해 예산은 100억원이었다.

불리한 요건을 딛고 전주영화제가 국내 영화제 중 ‘넘버2’로 자리 잡게 된 힘은 일관성이다. 다양성을 지닌 작은 영화들을 꾸준히 상영하면서 영화 마니아들에게 ‘전주영화제에 가면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수작을 만날 수 있다’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1백90편이 상영되는 올해는 개막작부터 심상치 않다.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이란 영화 <씨민과 나데르, 별거>는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 대상인 황금곰상을 받았으며, 출연 남녀 배우 모두가 남녀 최우수배우상을 공동 수상한 화제작이다.

유명 감독의 단편을 모아 만든 옴니버스영화 프로젝트인 ‘디지털 삼인삼색’은 전주영화제의 독특한 색깔과 위상을 대변한다. 2007년 스위스의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의 좋은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하는 감독의 면면도 만만치 않다. 혁신적인 영화 연출로 이름을 높인 프랑스 감독 장 마리 스트라우브와 클레어 드니, 스페인 감독 호세 루이스 게린의 단편이 하나로 묶인다.

‘맛의 고장’ 이미지로 시너지 효과

맛의 고장이라는 전주의 이미지도 영화제 성장에 한몫했다. ‘보고 싶은 영화를 못 봐도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라는 인식이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가맥’(가게 맥주)이라는 전주만의 특이한 음주 방법도 매력으로 작용했다. 슈퍼마켓 한쪽에 차려진 허름한 공간에서 오징어와 북어 등 값싼 안주로 술잔을 기울이며 영화 마니아들은 낭만을 느끼게 된다. 서민적인 공간에서 유명 감독과 배우를 만날 수 있는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부산영화제가 해운대 풍광과 회로써 관객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면 전주영화제는 오랜 건축물과 콩나물국밥 등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걸어서 10분이면 오갈 수 있는 고사동 ‘영화의 거리’도 전주영화제의 장점으로 꼽힌다. 주요 상영관과 맛집이 밀집해 있어 영화를 몰아보는 마니아들에게는 최적의 관람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도 따른다. 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라는 지적도 있다.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 대형 스타들을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이 걸림돌도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운틴픽쳐스 제공

중세의 ‘마녀사냥’은 왜 일어났던 것일까? 그녀들이 마녀여서?

아니다. 남성(교회)은 공동체의 비탄·고통·절망이 발생했을 때, 자신의 죄의식을 그녀들에게 투사해 처형했다. 여성은 남성에게 성욕을 일으키는 존재이기 때문에 악하다는 논리였다. 주체는 빠지고, 나(남성)를 죄짓게 한 여성이 나쁘다는 논리가 창세기부터 마녀사냥까지 기독교의 근간을 이룬다. 유교나 이슬람의 여성 억압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영화가 시작되면 <울게 하소서>를 배경음으로 노골적인 정사 장면이 펼쳐진다. 이때 어린 아들이 부모의 정사를 보고 추락사한다. 비탄에 빠진 아내를 심리치료사인 남편이 치료하기 위해,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곳인 ‘에덴’ 숲에 들어간다. 아내는 마녀사냥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던 중, 인간의 악마성에 주목했고, 그러한 본성이 여성에게도 내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제 영화는 인간의 악마성과 죄의식이 광기로 돌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녀는 아이가 자신에게서 벗어나려 한다며, 아이의 발을 장애로 만든다. 이것을 남편이 알게 되자, 그녀는 이번에는 남편이 자신을 떠나려 한다며 남편의 성기를 내려치고, 다리에 맷돌을 박는다. 그녀는 쾌락을 나누었던 남편과 자신의 음핵에 죄의식을 투사해 처형한다. 비탄을 상징하는 새끼를 사산한 사슴, 고통을 상징하는 자기 내장을 파먹는 여우, 절망을 상징하는 땅속에 숨은 까마귀의 환영을 본 남편은 아내를 죽여 불태우고 숲을 내려온다. 이때 온 숲에 누워 있던 ‘마녀’가 여성으로 되살아나 우르르 걸어온다.

<도그빌>을 통해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파헤치며 신약의 구원론을 구약의 심판론으로 받아쳤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안티크라이스트>를 통해 죄의식과 희생제의의 원리를 보여주며 인간의 죄를 대속한다는 그리스도의 의미를 반문한다. 과연 문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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