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외국에선 웃을 일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04.1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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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기회 유용’ 엄격히 금지…“한국의 독특한 기업 지배 구조에서 비롯된 행위”

미국은 지난 100년간에 걸쳐 ‘회사 기회 편취’를 금지하는 법 이론을 발전시켰다. 회사에게 돌아갈 이익이나 사업상 기회를 임원이 가로채는 행위를 회사 기회 편취 내지 유용이라 일컫는다. 미국 회사법(State Corporate Law)은 회사 기회 유용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 미국 회사법에서는 임원이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으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fiduciary duty)’와 ‘충성의 의무(duty of loyalty)’를 강조한다. 회사 기회 유용은 이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한다. 임원이 회사 기회 유용 행위를 저지르면 회사나 주주는 사전에 금지 명령을 청구할 수 있다. 이 행위로 임원이 얻게 된 재산은 회사에 반환하거나 처분해 이익을 회사에 넘기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업 임원들은 업무 처리에서 이해 충돌(conflict of interests)과 함께 회사 기회 유용이 아닌지를 심각히 검토한다. 미국에서는 회사법이 연방법이 아니라 주법에 속한다. 그렇다 보니 주마다 적용 범위나 양태는 차이가 있지만, 회사 기회 유용 행위를 엄격히 처벌하는 것은 같다.

한국도 최근 상법 개정으로 근거 법규 마련

▲ 미국 통신업체 AT&T 경영진이 지난 3월21일 기자 회견을 열고 T모바일 인수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EPA

미국 회사법에서 임원이 저지른 행위가 회사 기회 유용인지를 판단하는 근거는 세 가지이다. 기대·사업 연장성·공정성에 대한 시험(Test)을 거쳐 하나라도 해당되면 회사 기회 유용으로 간주되고 해당 임원은 징계에 처해진다. 기대 시험에 따르면, 임원이 회사를 대리해 계약 협상을 진행하다가 개인 자격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회사 기회 유용 행위이다. 회사가 실질적으로 이해관계가 있거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사업의 기회를 앗아간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사업 연장성 테스트에서는 새 사업이 회사가 지금 영위하는 사업과 연관성이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새 사업이 기존 회사 사업과 기능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판단되면, 임원은 해당 신규 사업을 영위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임원이 저지른 회사 기회 유용 행위가 공정한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국내 재벌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관계 회사 일감 몰아주기는 세 가지 시험에 모두 걸린다. 국내에서는 모기업이 한다면 추가 수익 창출이나 비용 절감을 기대할 수 있는 사업을, 지배 주주의 특수관계인이 주주로 있는 외부 사업체에게 불공정한 방식으로 일감을 몰아주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지수 한누리법무법인 변호사(미국 변호사)는 “재벌은 성장 과정에서 지배 주주에게 유망 사업체 지분을 주고 모기업과 사업을 통해 인위적으로 매출을 부풀린다. 또 그렇게 성장한 업체의 지분을 모기업이나 시장에 되파는 방식으로 지배 주주가 이익을 얻는 경우가 다반사이다”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3월 상법이 개정되면서 회사 기회 유용이라는 근거 법규가 마련되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 5년 동안 회사 기회 유용이라는 개념을 제기하고 줄기차게 입법을 추진했다. 이제 그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회사 기회 유용과 달리 지원성 거래 행위를 규제하는 법규는 외국에서 찾기 힘들었다. 재벌 산하 대기업이 관계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태는 외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탓이다. 김원태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총괄과 사무관은 “재벌 체제는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독특한 기업 지배 구조이다. 때문에 지원성 거래를 규제하는 법규는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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