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너무한 ‘앉아서 돈 먹기’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04.11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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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의한 부의 대물림’ 실태 추적 / 경영권 편법 승계에도 이용

 

▲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맨 오른쪽)이 보유한 서울통신기술 지분 45%는 약 1천억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해 이건희 회장과 가전전시회(CES2010)를 참관하는 모습. ⓒ연합뉴스

당대기업 오너가 자녀 이름으로 작은 회사를 만든 뒤, 계열사들의 일감을 몰아주어 이 회사의 성장을 돕는다. 이후 매출이 늘어난 회사를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자녀가 막대한 시세 차익을 거두게 한다. 이 돈은 다른 그룹 계열사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 승계를 마련하는 발판으로 삼는다. 이런 과정은 전형적인 편법 승계 방법이다. 공정거래법 및 세법 전문가들은 이를 ‘터널링’이라고 부른다. 재산을 원하는 곳으로 옮길 수 있는 굴을 판다는 의미인데, ‘요즘 재벌은 땅굴을 판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원칙적으로는 지분을 후계자에게 물려주고 이에 대한 상속·증여세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엄청난 세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세금을 줄이기 위해 이와 같은 방법이 동원된다. 문제는 비상장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방법이다.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매출을 올리는 대신 그룹 계열사의 일감을 받아 덩치를 키운다. 그룹 계열사의 일감을 몰아주는 ‘지원성 거래’로 비상장 회사의 지배 주주로 있는 총수 자녀는 이른바 땅 짚고 헤엄치기식 경영을 하는 셈이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산 순위 30대 그룹 가운데 소유주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20개 비상장사의 내부 거래 비중은 거의 절반(46.1%)에 이른다. 이것은 전체 계열사 평균 비율인 28.2%를 훨씬 웃도는 수치로, 재벌 계열사들이 총수 자녀가 대주주인 비상장사에 거래 물량을 대거 밀어주었다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 사례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지분 45%를 보유하고 있는 서울통신기술이다. 이 회사는 2009년 하이패스 단말기 판매량 100만대를 돌파하며 4천3백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 절반에 가까운 2천억원이 삼성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발생했다. 지난 1996년 주당 5천원씩 총 15억원어치 지분을 확보한 이재용 사장의 현재 지분 가치는 1천억원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이재용 사장에게 서울통신기술 지분을 몰아주었다고 하지만 그 액수는 작다. 지분을 몰아주려면 그 회사만 그렇게 하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회사가 상장하면 이사장은 더 큰 차익을 챙길 수 있다. 실제로 이사장은 지난 1995년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억원의 현금을 증여받았다. 증여세로 16억원을 납부하고 남은 현금 중 41억원으로 비상장 계열사였던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에 투자했다. 이 두 기업은 곧 상장 수순을 밟았고, 이사장은 5백63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GS그룹 계열사인 GS아이티엠도 지원성 거래 의혹을 받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장남 허윤홍씨 등 자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이 회사는 2006년 설립된 후 지난해까지 계열사 매출 비중이 80%대에 이른다. 편의점에 삼각김밥을 납품하는 식음료업체인 롯데후레쉬델리카도 지난해 5백84억원의 매출을 일으켰는데, 이 중 97.5%가 롯데 계열사 간 거래로 생겼다. 이 회사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장·차녀가 18.6%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대해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런 회사는 기업의 핵심 정보를 가지고 있다. 외부로 누출되면 안 되기 때문에 내부에 일감을 맡기는 것인데, 이를 몰아주기로 보는 시각에는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상장 후 시세 차익으로 계열사 지분 매입

일각에서는 쉽게 매출을 일으켜 번 돈으로 사적인 이익을 챙긴다는 의혹도 있다. 현대차 그룹의 건설 공사를 주 수입원으로 하는 현대엠코는 지난 3월 최대 주주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에게 1백25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지난해 1조2천억원의 매출을 올린 이 회사는 3월 주주총회를 통해 총 5백억원의 배당금을 결의했는데, 이는 지난해 당기 순이익 6백73억원의 74%에 달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번 만큼 배당금을 풍족하게 줄 수도 있지만 현금 배당 성향이 동종 업계 수준보다 크게 웃돌면서 최근 논란이 되었다. 현대건설의 현금 배당 성향은 지난 3년 동안 15% 안팎이고, GS건설은 6.5~12.9%, 삼성물산이 16.1~24.5% 수준이다. 그런데도 현대엠코는 2008년과 2009년에도 각각 순이익의 30%와 50%를 웃도는 현금 배당을 해왔다.

몰아주기식 경영으로 규모를 키운 비상장 계열사는 향후 상장할 가능성이 있다. 상장하면서 얻는 시세 차익으로 그룹 내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그룹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부의 대물림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따라서 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은 대부분 총수 자녀가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한진그룹 계열사로 설립된 한진지티앤에스의 지분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자녀인 조원태 대한항공 전무, 조현아 전무, 조현민 팀장, 대한항공이 각각 25%씩 나눠서 가지고 있다. 세 자녀는 한진그룹 계열사인 싸이버스카이의 지분도 33.3%씩 가지고 있다.

CJ의 계열사인 재산커뮤니케이션즈의 지분 100%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재환 CJ제일제당 상무가 확보해둔 상태이다. 게다가 CJ CGV와 사업 연관성이 높아서 ‘회사 기회 유용’으로 의심받고 있다. 회사 기회 유용이란 지배 주주가 회사 이익보다 사익을 챙기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에 대해 CJ 관계자는 “(그런 의심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LG그룹 계열사인 지흥도 회사 기회 유용으로 의혹을 받고 있다.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의 아들 구형모씨가 이 회사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LG 일가 4세의 개인 회사인 데다 디스플레이용 광학필름을 제조하는 이 회사의 특성상 LG화학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점을 들어 회사 기회 유용 의심 사례로 보고 있다. 

그룹 비상장 계열사의 최대 주주는 상장을 통해 그룹 계열사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 SK C&C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회사는 1991년 SK㈜와 SK건설이 100% 출자해 설립되었고, 1994년과 1995년 최태원 회장 일가가 지분 전량을 양도받았다. 1994년은 SK그룹이 KT로부터 SK텔레콤을 인수한 시점이다. SK텔레콤과의 거래로 SK C&C의 매출 28억원이 이듬해인 1995년 4백53억원으로 급증했다. 이 회사는 2009년 상장했고 지난해 1조4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회사 지분의 55%는 최태원 회장과 여동생인 최기원씨가 가지고 있다. SK C&C는 SK 지주회사인 SK㈜의 지분 31.8%를 보유한 대주주이다. 따라서 최태원 회장이 SK C&C를 통해 SK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SK 관계자는 “SK C&C가 SK텔레콤 물량을 받았다고 하는데, SK텔레콤은 SK C&C의 기술력을 이용해 성장했다. 한마디로 서로 상승 작용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에는 그룹 계열사가 시너지 효과를 내며 기반이 약했던 한국 경제를 도약시키는 역할을 했다. 삼성LED, 삼성전기 등 계열사의 부품 조달은 삼성전자의 전자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뒷받침했다. 여기에 삼성물산의 해외 정보 수집, 삼성SDS의 네트워크 구축 등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처럼 계열사 간의 협력은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아래)은 최근 자신이 최대 주주로 있는 현대엠코로부터 고액의 배당금을 받았다. ⓒ연합뉴스

 

정부, ‘뒤늦게 세법 개정’ 카드 꺼내들어

그러나 폐해도 적지 않다. 회사의 사업이 헐값에 지배 주주에게 양도되는 등 개인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비상장 회사와 그룹 계열사 사이의 거래에서 발생한 이익이 지배 주주에게 이전되면 상대적으로 회사 가치는 낮아지고 다른 소액 주주들은 손해를 볼 수 있다. 반대로 지배 주주가 실패한 사업을 회사에 전가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 회사는 주가 조작, 내부자 거래 등 주식 불공정 거래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가 공정거래법상 부당 지원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과세 방안을 찾고 있다. 편법 상속·증여에 대한 합리적인 과세 방안이 무엇인지, 조세 정책과 세무 행정 등 분야별로 검토에 착수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법 개정안이 8월에 완성되므로, 그때까지 구체적 방안을 내놓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가세할 전망이다. 공정위는 상법상 회사 기회 유용 등 부당 행위에 대해 과세하고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필요할 경우 공정거래법을 더욱 강화하는 등 제도 개선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을 압박하는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선거용이다. 최근 정유업계를 압박해 휘발유 가격을 내리게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라며 정치적 배경을 의심했다.


ⓒ시사저널 윤성호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 5년 동안 재벌의 부당 거래 실태를 연구했다. 연구 성과는 2년마다 보고서 형태로 발표한다. 지난해 11월 경제개혁연구소가 발표한 네 번째 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이가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이다. 채연구위원은 3개월 동안 1천85개 회사의 각종 내부 거래 행위를 분석한 끝에 ‘재벌 총수 일가의 문제성 주식 거래의 실태’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5년 동안 줄기차게 추진했던 입법 로비가 드디어 결실을 보는 듯하다.

지난 3월 기쁜 소식이 잇달아 날아왔다. 우선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회사 기회 유용을 규제하는 근거 법규가 마련되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 5년 동안 줄기차게 국회와 공정거래위원회에 회사 기회 유용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입법 필요성을 설득했다. 드디어 그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근거 법규가 마련되어도 그 적용 범위나 처벌 수위를 두고 법적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법원 판례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3월 법원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글로비스에게 불법적으로 일감을 몰아주도록 해 현대차에게 손해를 입혔으니 회사에 8백26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현대차그룹이 글로비스에게 일감을 몰아준 행위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한 것이다.

하지만 경제개혁연구소가 제기한 회사 기회 유용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은 회사 기회 유용이라는 법리는 인정하나 글로비스가 회사 기회 유용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판결했다. 이에 경제개혁연구소는 바로 항소하려 했으나 정몽구 회장이 자기가 보유한 글로비스 지분 전량을 현대차에게 넘기고 매각 대금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해 항소를 포기했다. 회사 기회 유용 행위를 처벌하는 판례를 남기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아쉽다. 재벌로부터 회사 기회 유용 행위에 대한 양보를 얻어낸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

국내 재벌 대주주 일가가 지원성 내부 거래로 얻은 이익을 조사한 ‘부의 증식 보고서’를 오는 6월 발표할 계획이다. 금감원 전자공시와 공정위 자료를 토대로 분석 작업이 한창이다. 장기적으로는 세금 없이 그룹 지분과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상속 내지 증여 행위를 그룹별로 정리해 시리즈로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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