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사기 ‘판도라 상자’ 열릴까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04.11 00: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도피’ 정생균 전 제이유네트워크 사장, 자진 귀국 후 구속…정·관계 로비 등 드러날지 주목

중국으로 도피했던 정생균 전 제이유네트워크 사장(48)이 돌아왔다. 정 전 사장은 지난 4년여 동안 중국에 머무르다가 최근 돌연 귀국했다. 그는 2006년에 터진 2조원대 ‘제이유그룹 다단계 사기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제이유의 정·관계 로비, 주수도 전 제이유그룹 회장의 재산 은닉 등의 열쇠를 쥐고 있다.

제이유 피해자들은 주수도 전 제이유그룹 회장, 정생균 전 제이유네트워크 사장 그리고 상위 사업자인 김금순씨를 제이유 사건의 3대 주범으로 꼽고 있다. 정 전 사장은 주수도 전 제이유그룹 회장의 오른팔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정 전 사장은 갑자기 왜 들어온 것일까. 이에 대해 여환섭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은 “중국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한 상태였다. 여권 기한이 만료되자 변호사를 통해 귀국 의사를 밝혀왔다”라고 전했다. 정 전 사장은 국내에 입국한 후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다가 3월22일 전격 구속되었다.

 

▲ 지난 2006년 11월 검찰 수사가 한창일 때 제이유그룹 본사에 중국 진출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제이유 사건’에서 핵심 역할했던 인물

그의 귀국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우선 주수도 전 회장과 정생균 전 사장의 관계를 보자. 제이유네트워크의 전신은 1999년 12월에 설립된 인터넷 전자상거래업체 UTN이다. 약 2년 후에 주코네트워크로 상호를 변경했으나 방문판매법 위반으로 영업정지를 당하자 2002년 2월에 상호를 제이유네트워크로 바꾸었다.

이때 정생균 전 사장이 등장한다. 주회장은 하이리빙 영업팀장 출신인 그를 영입해 대표이사 사장으로 앉혔다. 이때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업계 일각에서는 30대의 정사장을 발탁한 배경을 놓고, 업무 처리와 충성도를 보고 기용했다는 관측과 후일을 생각해 그를 ‘얼굴마담’이나 ‘총알받이’로 내세웠다는 관측이 엇갈렸다.

정 전 사장은 제이유네트워크 다단계 사업의 전면에 나섰다. 주회장과의 관계도 각별했다. 업계에서는 정 전 사장을 주회장의 ‘분신’ 또는 ‘수양아들’로 부를 정도였다. 당시 제이유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정사장은 생긴 것만큼 믿음직한 사람이다. 말 한마디를 해도 신중하게 했고, 회장의 의중을 묵묵히 따랐다. 그렇기 때문에 주회장이 전적으로 신뢰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 전 사장이 해외로 나간 것은 지난 2005년 4월이다. 당시 제이유는 회사 재정 상태가 최악의 상황이었다. 2004년도에 총 1조4천9백5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당시 감사 보고서를 보면 부채 비율은 마이너스였다. 자산을 다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할 정도였다. 자본 잠식도 심각했다. 매출액 중 6천2백50억원이 선수금 매출이다. 선수금은 돈은 받았으나 물건이 지급되지 않은 매출로, 부채나 다름없다. 재무제표만 보더라도 제이유가 정상적인 회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이유의 매출은 ‘모래성’이나 다름없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제이유는 계열사를 늘리는 등 문어발 확장에 나섰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급기야 직원들의 월급이 밀리고, 회원들의 후원 수당이 제때 지급되지 않자 제이유 내부에서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회사가 위험하다”라는 말이 퍼져나갔으나 제이유 경영진은 ‘유언비어’라며 일축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제이유가 ‘해외 시장 개척’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제이유글로벌을 설립하고, 정생균씨를 대표이사로 앉혔다. 약 2개월 뒤에는 중국 현지 사업을 총괄하는 제이유지앤의 대표로 다시 자리를 옮겨갔다.

제이유네트워크는 같은 해 6월 중국 최대의 제약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티엔쓰리(天士力) 그룹과 51 대 49의 합작으로 현지 다단계업체인 ‘진쓰리지아요우(JU)유한공사’를 출범시켰다. 경영을 총괄할 총경리에 정생균 제이유지앤 대표를 파견했다. 이때부터 정 전 사장은 중국에 머물렀다.

제이유측 “도피 아니라 중국 법인 운영”

▲ 지난 2007년 2월20일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주수도 전 회장이 호송차에 실려 서울동부지법을 빠져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제이유네트워크가 주력 기업인 것을 감안할 때 정 전 사장의 계열사 사장 임명은 좌천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다단계업계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정 전 사장과 주회장과의 관계를 볼 때 ‘도피설’ 또는 ‘피신설’에 무게가 실렸다.

정 전 사장이 중국으로 나간 후 제이유는 급격하게 몰락하기 시작했다. 그해 12월6일 특수판매공제조합은 제이유네트워크의 공제 거래를 해지했다. 현행 방문판매법상 공제 거래 해지는 영업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제이유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그 뒤 ‘국정원 로비 리스트’가 공개되고, 검찰 수사가 이어지면서 제이유그룹은 사실상 파산 상태에 들어갔다.

검찰은 2006년 6월18일 수백억 원의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주수도 회장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아울러 해외에 도피 중인 정생균 사장과 제이유 상위 사업자인 김금순씨 등도 수배했다. 주회장은 곧바로 도피에 들어갔으나 38일 만에 은신처에서 검거되었다.

검찰은 제이유 사건의 핵심 인물인 정 전 사장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신청했다. 범죄인 인도 청구는 해당 국가에서 신병을 인도해주지 않으면 속수무책이었다. 정 전 사장은 중국 유명 기업의 합작회사 대표였다. 그는 수배 상태에서도 중국에서 공개적인 기업 활동을 했고, 중국 당국은 그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007년 중국 톈진에서 개최된 직접판매협회 세미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정생균 총경리가 심포지엄에 온 사람들을 회사로 초대했다. 그때 ‘제이유네트워크에서 할 일을 했지만 안타깝다’라며 소회를 밝혔다”라고 말했다. 이때 정 전 사장은 제이유 사태에 대한 자기 책임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고 한다. 

2009년 6월28일 톈진을 방문한 한 시사 월간지 기자는 텐진의 유명 호텔 사장을 만나는 자리에 정생균 전 사장과 동행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정 전 사장이 수배 중인 상황에서 만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물었으나 답변을 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으나 해당 국가에서 나서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정씨가 중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주수도 회장의 법정대리인인 김종한 변호사는 “정생균 대표가 해외로 도피한 것은 아니다. 중국 법인을 전담하기 위해 나갔다가 (제이유 사태가) 터졌다. 중국의 업무가 중요했기 때문에 귀국하지 못한 것이다. 2007년 9월에 중국측 요구로 총경리를 그만두고 이사로 있었다”라고 해명했다.

정 전 사장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검찰 수사는 답보 상태였다. 정·관계 로비 자금 72억원이 뿌려졌고, 1백50여 명의 명단이 담긴 ‘국정원 리스트’가 살생부로 돌았으나 의혹의 실체를 제대로 밝혀내지는 못했다. 주회장의 은닉 재산을 찾아내는 데도 성과가 없었다. 제이유 피해자들은 한 푼이라도 투자금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피해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가정 파탄과 자살이 이어졌다.

현재 대다수 제이유 사업 피해자 단체들은 활동이 중단된 상태이다. 어렵게 전화 연락이 된 양종환 전 제이유사업피해자 전국비상대책원장은 “주수도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비대위는) 해체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대위) 홈페이지도 담당자가 문을 닫았다. 현재는 연락도 되지 않는다. 이제 다시는 ‘제이유’에 대해 말도 꺼내기 싫다”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검찰은 당초 주수도 전 회장을  11만명으로부터 4조8천억원대의 사기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나중에 공소장을 변경해 수당을 통해 돌려받은 3조원을 뺀 1조8천억원에 대해서만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

주수도 전 회장의 재심 여부도 관심

주 전 회장은 구치소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법정 투쟁을 통해 반격을 가하고 있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지난해 2월 서울고법 민사13부(여상훈 부장판사)는 제이유네트워크와 주수도 회장이 국가정보원의 ‘제이유 보고서’ 유출로 인해 손해를 보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국정원은 2004년 6월 ‘부패 척결 태스크포스’를 통해 수집한 제이유 관련 비리 정보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인터넷 신문사 기자에게 제공했다.

주 전 회장의 법정 투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올해 3월10일에는 서울동부지방법원을 통해 자신의 판결이 잘못되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당시 사건 기록을 검토하고 문제의 증언이 확정 판결에 실제로 영향을 줄 만한 것이었는지 등을 판단해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만약 주 전 회장에 대한 재심이 받아들여질 경우 지금의 형량이 대폭 줄어들 수도 있어 법원의 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종한 변호사는 “법원에서 검찰과 피고인측에 의견을 제출하라고 했다. 검찰에서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우리는 기록을 좀 더 보고 의견을 낼 것이다. 재심이 받아들여지면 우리는 무죄를 주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검찰 수사에서 제이유 사기 사건의 실체가 얼마나 밝혀질까. 이에 대해 여환섭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은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말할 수 없다”라고 했으나 정 전 사장을 대상으로 정·관계 로비와 국세청 감세 청탁 시도, 주 전 회장의 은닉 재산 등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실체가 어느 정도 밝혀질지는 미지수이다. 


주수도 전 제이유그룹 회장은 옥중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재기를 꿈꾸며 여전히 옥중 경영을 하고 있다. 현재 제이유의 적통을 잇고 있는 다단계 판매 업체는 ㈜휴먼리빙이다. 이 회사는 2005년 8월25일에 법인을 설립하고, 2007년 7월 RESD라는 상호로 변경했다가 지난해 1월 현재의 상호로 다시 바꿨다. 이 회사의 대표이사인 신인숙씨도 제이유의 사업자 출신이다. 주수도 전 회장의 법정대리인인 김종한 변호사는 “휴먼리빙에 제이유나 주수도 회장의 돈이 들어간 것은 없다. 다단계 판매에 노하우가 있는 만큼 자문을 해주는 정도로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주 전 회장은 ‘옥중 서신’을 통해 경영 지침을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 전 회장이 2009년 5월27일에 보낸 옥중 서신을 보면 휴먼리빙(당시 RESD)의 구성원들에 대해 “제이유그룹에 속했던 사업자들과 임직원들이 주축이 되고 제이유그룹의 재건을 희망하면서도 경제적 도움을 주신 분들에 의해 회사가 탄생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RESD는 2008년에 코스닥 상장 업체인 한국하이네트를 인수하려고 10억원의 계약금을 지불했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다단계 판매 업체의 한 대표는 “약 2년 전쯤 주 전 회장의 측근 한 명이 내게 찾아왔다. 당시 그는 구치소로 가 주 전 회장을 면회했는데 ‘회사 하나를 차리려면 얼마가 있으면 되나’라고 묻기에 30억원이라고 말했더니 ‘10억원이면 안 되냐’라고 하면서 포기하더라는 말을 내게 했었다”라고 전했다.

중국 현지의 제이유 합작 법인인 금사력가우도 지난해 중국 직접 판매 업체 28개사 중 15위에 오를 만큼 중견 기업으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 전 회장이 출소하면 언제든지 다단계 판매 업계에 나설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종한 변호사는 “주회장은 금사력가우를 통해 피해 보상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