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에 치이고, 청년 실업에 갇히고… 대학 캠퍼스에 끓어오르는 ‘춘투’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4.11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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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6일 대학 등록금 인상과 관련해 총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해 농성 중인 고려대 교내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대학가의 봄이 심상치 않다. 곳곳에서 ‘투쟁’의 기운이 감돈다. 일부 대학에서 그동안 없었던 학생총회가 열리고, 이를 통해 쌓였던 불만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학생들은 “이제 더 이상 기성세대와 정치권에 기대할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회의 빚이 아니라 빛이고 싶습니다.’ 지난 4월6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있는 고려대학교를 찾은 <시사저널> 취재진의 눈에 한 줄의 글귀가 꽂혔다. 본관 건물 1층에 있는 총장실 입구에 붙어 있는 글이었다. 이날은 고려대 총학생회가 등록금 인상 철회 등 학생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총장실을 점거해 농성에 들어간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요즘 캠퍼스의 봄은 을씨년스럽다. ‘춘투(春鬪)’라는 용어가 대학가를 뒤덮고 있다. ‘춘계 투쟁’의 약칭인 춘투는 해마다 봄이 되면 노사 교섭을 통해 새해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임금 인상 투쟁을 말한다. 원래 노동계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다. 실제 대학 캠퍼스 곳곳에는 낭만이 아닌 ‘투쟁’의 기운이 감돈다. 고려대 본관 앞 중앙광장에는 천막 부스가 여러 개 세워져 있다. 이 역시 고려대 총학생회에서 등록금 인상 철회 투쟁을 위한 농성을 벌이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지난 3월31일 고려대에서는 2005년 이후 6년 만에 학생총회가 열렸다. 이날 총회에 모인 총 2천3백여 명의 학생들은 ‘2.9% 등록금 인상 철회 및 근거 없는 계열별 등록금 차등 책정 폐지’ 등과 같은 학생 요구안을 성사시키기 위해 ‘거점 농성’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총회가 열린 이후 학생들은 총장실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이날 농성 현장에서 만난 총학생회 집행부원 김윤선씨(고려대 행정학과 08학번)는 “그동안 한 번도 총장님을 뵙지 못했다. 앞으로 등록금 인상 철회라는 요구안이 성사될 때까지 농성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학가에 감돌고 있는 저항의 기운은 쉬지 않고 퍼져나가고 있다. 지난 3월24일 경희대에서는 6년 만에 학생총회가 열렸고 결국 총회에서 내린 학생들의 결정에 따라 경희대는 등록금 3% 인상안을 철회했다. 경희대뿐만이 아니다. 이화여대 역시 3월31일 2천여 명이 동참한 학생총회가 열렸다. 5년 만에 열린 총회에서는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며 4월4일부터 1주일간 필수 과목인 채플 수업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 4월2일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반값 등록금 집회’에서 전국등록금네트워크와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단체와의 연대 투쟁 움직임도

3월31일에는 서강대에서도 학생총회가 성사되었다. 1989년 노태우 정권 시절 이후 22년만의 일이었다. 1천2백여 명이 모인 총회에서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을 철회시키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서강대 총학생회는 4월7일에 열린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공동 행동안을 결정하고 앞으로 등록금 투쟁에 꼭 승리할 수 있도록 활동을 이어갈 방침이다. 김준한 서강대 총학생회장은 “22년 만에 총회가 성사된 것에 대해 사실 나조차도 놀라움을 느꼈다. 그만큼 등록금 문제가 민감해졌다고 생각한다. 등록금 문제는 이제 학교가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지방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북의 우석대에서는 19년 만에 학생총회가 성사되었다.

그동안 등록금 투쟁은 각 대학 총학생회의 주도로 3월에만 반짝 진행되었다. ‘총학만의 투쟁’으로 비칠 만큼 등록금 투쟁에 무관심한 학생도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이것은 수년 혹은 수십 년 만에 학생총회가 부활하고 있는 현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현상은 등록금 투쟁을 매개체로 해서 대학과 대학, 대학과 시민사회와의 연대 움직임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2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4·2 반값 등록금 시민·대학생 대회’는 한국대학생연합과 ‘등록금넷’이 주관한 행사였다. 당시 참가 인원은 1천여 명(경찰 추산)에 이르렀다. 대학 간의 등록금 투쟁 연대 움직임도 감지된다. 박자은 숙명여대 총학생회장(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은 “각 대학들이 연대해 등록금 투쟁을 하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 우리 역시 숙명여대에서 진행하고 있는 학생 요구안을 실현시키기 위한 문화제에 고려대 총학생회의 참여를 부탁했고, 고려대 총학생회장이 문화제에 참석해 발언하는 등 도움을 주었다”라고 밝혔다.

사실 등록금 인상 폭만을 놓고 보았을 때 올해가 그렇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의 대학교 등록금 인상 추이를 살펴보면, 올해 인상률은 거의 동결 수준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4년제 국·공립대 등록금은 평균 1.1%, 사립대는 평균 2.3% 올랐다. 지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국·공립대 및 사립대의 등록금 인상률이 6%에서 10% 사이였다는 사실과 견주어볼 때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등록금 인상에 대한 대학생들의 반발이 올해 들어 이처럼 확산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전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우리 대학 정책과 청년 실업에 대한 사실상의 방조 풍토에 대해 “이제 더 이상 기성세대와 정치권에 기대할 것이 없다”라는 대학생들의 분노가 인내심의 한계점을 넘어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세 대란으로 인한 주거 문제, 취업을 위한 과도한 경쟁 구도 등이 더해지면서 대학생들의 현실은 이미 척박해질 대로 척박해졌고, 학자금 대출로 빚에 내몰린 일부 대학생들의 눈물까지 최근 언론을 통해 집중 조명되면서 이 땅의 대학생 전체로 하여금 공분을 느끼게 하고 있다. 실제로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의 분노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들의 분노는 비단 등록금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대졸 실업자 문제, 전세 대란으로 인한 주거 문제 및 대학 교육의 상품화 등을 꼬집는 등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신입생 임대섭씨는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대학생들의 고충이 상당하다. 나만 해도 6백만원이 넘는 입학금을 내고 학교에 들어왔다. 지방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방 보증금이며 생활비 등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또 주변의 05학번, 06학번 선배들을 보면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로 돈벌이에 나선  이들이 많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변화에 대해 자각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현 정권에 대한 반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화여대 약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정혜연씨는 “사실 대학생 문제와 관련해 정부 차원의 대책이라는 것이 부재한 상태나 마찬가지다. 요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청년 실업 아닌가. 그에 대한 정권의 대책이라는 것이 청년인턴제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눈높이를 낮춰라’라는 식이다. 게다가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 개선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이 좋아질 수 있겠나. 대졸자 실업 문제 역시 마치 개인이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몰고 가는 시선이 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에 실망을 느낀다. 등록금에 대해서는 사실 ‘반값 등록금’이 아닌 무상 교육의 영역으로까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 학생들의 분노의 수치가 높아지는 것에 대해 조우리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자신의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는 학생이 많다. 그동안 경쟁에 시달렸기 때문에 현실을 돌아볼 틈이 없었는데 최근 대학 내에서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동안 치열하게 경쟁만 하는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그렇게 해도 살아남기 어려운 현실을 보면서 경쟁보다는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대학생들이 자각하기 시작했다. 대학가에 부는 투쟁의 바람은 경쟁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내놓는 현 정권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의식은 분명 다음 정권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대학가에 새로이 일고 있는 이런 움직임은 향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도 적극적으로 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 등록금 동결을 추진하며 학생총회가 열렸던 서강대의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들. ⓒ시사저널 박은숙

 서울 시내 각 대학 캠퍼스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의 강도는 확실히 예년과는 달랐다. 인터뷰에 나서는 학생들의 표정에서도 극히 예의적인 웃음기조차도 사라지고,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각 대학의 총학생회가 주도하는 집회도 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참가 인원이 대폭 늘었다. 하지만 대학 캠퍼스의 투쟁 방식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과거 총학만이 주도했던 분위기는 아니었다. 새로운 방식의 캠퍼스 춘투 움직임도 일고 있다.

지난 3월30일 열린 서강대 학생총회에는 1천2백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였다. 하지만 이번에 학생총회를 주최한 총학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총회만 열었을 뿐이지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비등했기 때문이다. 서강대 캠퍼스 게시판에 걸린 대자보의 요지도 이와 유사하다. 서강대 총학생회는 이번에 열린 학생총회에서 등록금 인상안을 철회하기 위한 동맹 휴업에 나서기로 했지만 결국 학생들에 의해 부결되고 말았다.

총회가 열리기까지 잡음도 상당했다. 등록금 동결을 위한 학내 조직인 ‘등록금 동결자’와 총학생회 간 투쟁 방식의 차이로 인한 것이었다. 결국 총회가 열리면서 지난 2월 말에 조직되어 삭발식, 단식 농성 등의 등록금 동결 투쟁을 앞장서서 벌여왔던 ‘등록금 동결자’는 해산되고 말았다. 총학이 “향후 총학이 모든 것을 주도하겠다”라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김준한 서강대 총학생회장은 “그동안 총학이 총회만 성사시켰을 뿐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동의한다. 앞으로는 (총학이) 등록금 투쟁에서 꼭 승리할 수 있도록 활동을 이어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비단 서강대뿐만이 아니다. 이화여대의 채플 거부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이화여대의 채플 거부 운동은 지난 3월31일 성사된 총회에서 결정된 사안으로 등록금 인상 철회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4월4일부터 1주일 동안 진행되는 채플 거부 운동에는 첫날 약 3백50명의 학생이 모이는 등 열기가 상당했다. 하지만 셋째날인 4월6일에는 불과 100여 명 정도로 참여 인원이 크게 줄었다. 이에 대해 류이슬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총학의 집회 현장에 학생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다고 해서 학생들이 채플 거부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채플 거부를 하는 학생들이 총학 집회까지 참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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