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범이냐 정상 기업가냐 판정대 오른 ‘선박왕’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11.04.1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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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이 권혁 시도상선 회장과 그의 회사에 총 4천1백1억원의 추징 세액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를 계기로 1백75척의 선박을 거느리고 세계 해운업계를 움직이는 큰손으로 꼽히는 권회장이 어떤 인물인지, 또 그가 실제로 거액을 탈세한 것인지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시사저널>이 권회장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 권혁 회장은 누구?1950년 경북 대구 수성구 출생경북중·고, 연세대 경영대 졸업 고려해운·현대차 근무 1993년 시도상선 설립(일본)2006년 본사를 홍콩으로 이전현 시도상선 회장 ⓒ시사저널 임준선  

 ‘한국판 오나시스’인가, 희대의 탈세범인가. 국세청은 지난 4월11일 시도상선 권혁 회장과 권회장이 운영하는 회사에 대해 4천1백1억원의 추징 세액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권회장에게는 2천8백억원의 종합소득세, 시도상선에는 1천3백억원의 법인세가 추징되었다. 국세청이 개인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한 뒤 부과한 금액으로는 역대 최고액이다. 비거주자, 외국 법인으로 위장해 조세 피난처에 소득을 은닉해 세금을 탈루했다는 이유에서다(18~19쪽 딸린 기사 참조). 이를 계기로 권회장이 어떤 인물인지, 그가 실제로 거액을 탈세한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권회장은 현재 국세청의 조치가 사실과 다르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주로 홍콩에 머무르면서 사업을 하는 권회장은 지난해 10월13일 한국으로 온 직후 출국 금지되었다. 이틀 뒤인 10월15일에는 국세청 조사국 직원 20여 명이 권회장의 한국에이전트사인 유도쉬핑과 시도상선에 들이닥쳐 각종 문서들을 압수해 갔다. 권회장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직원들도 깜짝 놀라 혼비백산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이후 올 4월15일까지 다섯 차례 출국 금지 조치를 당하며 세무조사를 받은 권회장은 법무법인 김&장을 대리인으로 선정해 국세청 조사에 대응해 왔다.

국세청이 권회장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권회장의 회사에서 요직을 맡았던 인사가 각종 자료를 국세청에 제보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인사는 권회장의 처제와 함께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실형을 산 것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회장의 한 측근은 “지난 2009년에도 같은 인물이 경남 통영지청에 권회장을 고발했으나 지난해 3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자 다시 국세청에 제보를 했다는 얘기였다. 국세청은 권회장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 어느 나라에도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고도의 지능적 역외 탈세 행위를 기도했다’라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죄질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회장은 당당했다. 그는 <시사저널>과 만나 “국세청이 의욕이 앞섰다. 무리를 해도 보통 무리한 것이 아니다”라며 향후 법정 투쟁을 통해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거주 여부, 탈세 여부 등에 대해 국세청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실적을 올리기 위해 섣부르게 ‘한건주의’식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권회장은 국내에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1백75척의 배를 갖고 있어 ‘선박왕’으로 불리며 세계 해운업계를 움직이는 큰손 가운데 한 명이다. 그가 직접 움직이는 것은 65척이고 나머지는 아웃소싱을 준다. 사업을 시작한 지 20년도 안 되어 이룬 성과이다. 그는 어떻게 이처럼 엄청난 부를 일군 것일까. 1950년 경북 대구 수성구에서 의사였던 부모의 2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권회장은 경북중·고를 졸업했다. 의대에 들어가려고 원서를 썼다가 어머니가 의사를 하면 행복하지 않다며 찢어버려 진로를 틀었다. 연세대 경영대를 졸업한 그는 1974년 고려해운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해 현대종합상사-현대차로 옮겼다. 현대차에서 그는 해운회사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자동차 수송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운명을 바꾸어놓는 계기가 되었다. 12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주로 일본차들을 수송했는데 일본어를 잘하는 그가 업무를 많이 처리했다. 그러다 회사가 일을 접게 되어 1990년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에 가 일을 찾았다.

이때 평소 알고 지내던 일본인이 권회장에게 마루베니 종합상사를 소개해준 것이 그가 ‘해운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돈을 빌려줄 테니 중고 자동차 전용선을 사서 빌려주는 사업을 시작해보라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마루베니의 후원을 바탕으로 현대상선을 첫 고객으로 시작한 ‘배 빌려주기 사업’은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번창했다. 운임을 달러로 받아 약세인 엔화를 사서 부채와 이자를 상환했다.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를 거치며 권회장은 사세를 더 키웠다. 발주한 선박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다. 권회장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겠다”라고 했지만 관련 회사의 총 매출액은 2조원 이상, 자산은 5조원대로 알려져 있다.

 

 

“국세청이 무리수 던졌다”

가족과 일 외에는 모두 끊었다고 말하는 권회장은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다. 동문회 같은 모임에 나간 적도 없다. 자가용 없이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여행도 잘 안 가고 부인과 영화 보고 밥 먹는 것으로 주말을 보낸다. 한마디로 ‘짠돌이’이자 검소하게 생활한다. 직원들에게도 회사 돈으로 술 먹지 말고 차라리 영화를 보라며 극장표를 돌린다. 올해 31세인 아들과 28세인 딸을 두었는데 모두 영국에서 생활한다. 아들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다 일본에 가 재일한국인학교를 나온 뒤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철도청에서 공익근무를 하면서 병역 의무를 마쳤다. 중학교 2학년 때 영국으로 유학 간 딸은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권회장은 대구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이른바 ‘정통 TK’지만 ‘대구·경북 정서’에는 비판적이다. 권력 지향적이고 협조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시사저널>은 4월14일 밤 2시간 동안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유도쉬핑 사무실에서 권회장을 만났다. 그는 “3~4년 이어질 긴 싸움이 되겠지만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국세청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유령 회사’? ‘유령 인간’?, 이것이 국세청에서 할 이야기인가”라며 비판했다.

권회장은 한국에 세금을 내지 않았나?

국세청이 무리를 했다. 왜 갑자기 홍콩에 있는 회사가 페이퍼컴퍼니가 되고 한국에 있는 회사가 본사가 되는가. 실제는 거꾸로이다. 홍콩에 내 집무실이 있고 그곳에서 의사 결정을 한다. 물론 내가 한국 사무실에 와서 지시를 내린 적도 있다. 내가 직접 다 뛰어다닌다. 국세청은 일본에서 사업했던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고 홍콩으로 본사를 옮긴 2006년 이후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문제 삼으려면 일본에서 사업을 할 때부터 문제 삼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해마다 시도상선은 5억~6억원, 유도쉬핑은 3억~4억원 이상의 법인세를 꼬박꼬박 한국에 냈다. 국세청이 말하는 것은 개인소득세이다. 외국에도 세금을 안 냈다고 하는데 2007년에 일본 국세청에 20억 엔을 냈다. 홍콩에도 내고 있다. 홍콩 회사는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PWC의 감사를 받고 있다. 말도 안 된다.

국세청은 스위스 은행, 홍콩 등 해외 계좌에 권회장이 수천억 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스위스 계좌?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나중에 분명 문제가 될 것이다. 문제 있는 회사라면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4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빌릴 수 있을까. 투명하게 회사를 경영했기 때문에 빌려준 것이다. 내가 빌린 돈은 아마 한진이나 현대상선이 빌린 돈보다 더 많을 것이다.

권회장의 개인 재산은 얼마나 되는가?

재산이라고 하면 부동산이나 금융 자산을 말하는데, 전혀 없다. 전부 회사 재산이다. 2007년 한국에 있는 재산을 전부 홍콩 법인에 팔았다. 대구에 형이 이사장으로 있는 병원 건물의 지분 20%가 내 것이었는데 올해 초 형에게 넘겼다. 전부터 약속했던 것이다. 국내에 내 재산이 없다는 것은 내가 비거주자라는 말 아닌가?

 

▲ 과 인터뷰하고 있는 권혁 시도상선 회장. ⓒ시사저널 임준선

 재산이 없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어떻게 재산이 없을 수 있나?

없다. 맹세코 그런 돈이 있으면 배를 사서 사업을 더 늘릴 것이다. 국세청은 호텔, 채권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데 터무니가 없다.

회사의 전 관계자가 제보해 세무조사가 시작되었다면 무언가 문제 되는 부분이 있는 것 아닌가?

알고 보니 전과자였다. 이후 직원을 뽑을 때는 신원을 철저히 확인한다. 검찰에서 이미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회사 간판도 없는 것 등이 의혹을 키웠다.

방송 카메라가 들이닥쳐서 일부러 떼놓았다. 다시 달 것이다.

이현동 국세청장이 경북고 7년 후배이다.

전혀 모르는 사이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움도 안 된다. 특별회비 같은 것은 내지만, 동문 모임에는 나가지 않는다.

세무조사 와중에 ‘협상’이 있었다고 하던데.

비거주자라는 것을 인정해주면 적당한 세금을 내겠다고 했다. 국세청은 반대로, 거주자라는 것을 인정하면 세금을 분납하게 해주고 줄여주겠다고 했다.

권회장은 한국인이다. ‘애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최대한 한국을 위해 일해왔다. 가능한 한 일을 한국에 가져오려고 하고 배도 한국 회사들에게 발주하려고 한다. 이러한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국적을 바꾸면 이러저런 논란 없이 다 끝나는 일이지만 나는 안 바꾼다. 사업을 도와준 것은 한국이 아닌 일본이지만, 나는 그 힘을 이용해 한국을 돕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할 생각은 없나?

상선회사를 운영하거나 인수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연어가 회귀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 살려고 계획하고 있고, 일도 마찬가지다.

권혁 회장과 국세청의 싸움은 이제 1라운드를 넘겼다. 검찰 수사도 시작되기 때문에 사태가 어디로 흘러갈지 예단하기 힘들다. ‘조세 정의에 대한 도전이자 공정한 경쟁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하고 심각한 사안’이라는 국세청과 ‘국세청이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무리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권회장. 결과에 따라 ‘베일 속의 선박왕’으로 불리며 세계 해운업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권회장의 신화가 추락할지, 국세청의 무리한 징세 행정이 질타를 받게 될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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