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기 문화’, 이제는 바꿔야 한다
  • 소종섭 편집장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11.04.1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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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이 심재철 정책위의장을 대신해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한 뒤 느낀 소감을 트위터에 올린 글이 화제이다. 재밌다.

“다들 최고위원 회의를 ‘봉숭아 학당’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서바이벌 게임장’이다. 최후의 한 사람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가 서로의 적이다. 유·불리에 따라 수시로 편이 바뀐다. 공식 회의 시작 전부터 서로 툭툭 던지는 말에 날이 섰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티타임 시간에 한 여성 최고위원에게는 ‘옷이 왜 그래? 다음 총선에 자신 없으니까 외모로 때우려고?’라고 비아냥대는 소리가 있었다. 또 한 지역 할당 최고위원에게는 ‘오늘은 동네 민원 좀 그만하지?’ ‘그러게. 최고위원이 무슨 도의원도 아닌데 말이야’라는 힐난이 퍼부어졌다. 현장 분위기가 살벌했다. 속으로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한테 상처를 줘가며 권력을 차지하는 일은 안 할랍니다’라고 생각했다.”

차의원은 노동운동을 한 학생운동가 출신으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국회의원을 할 때 보좌관을 지냈다. 흔히 하는 말로 ‘대가 강한 사람’이다. 도대체 집권당 최고위원 회의가 어떠했기에 이런 차의원이 보기에도 분위기가 살벌했다는 말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봉숭아 학당’을 넘어 ‘동물의 왕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각종 정책과 이슈들을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지난주에 만난 한 여권 인사는 “점잖고 합리적인 이들은 정치를 멀리하며 투신하려고 하지 않는다. 반면, 목소리 높고 권모술수에 능한 이들이 바글바글하니 정치가 날로 삭막해진다”라며 개탄했다.

정치의 본질이 권력 투쟁이고 당은 권력을 잡는 것이 목표라지만 그 과정이 칼이 날아다니는, 다른 이들을 짓밟고 가는 것이라면 생각해볼 일이다. 그것이 과연 우리가 지향하는 정치인가. 그런 문화를 가진 당이 과연 국민을 위한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인가. 다른 당도 아니고 같은 당 최고위원들의 회의 아닌가. 상대를 생각하지 않고 내뱉는 말은 칼보다 더 위험하다. 칼은 육체에 상처를 주지만 말은 마음에 구멍을 낸다.

최근 사회적으로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이 문제화되었다. 그들이라고 왜 꿈이 없었겠나. 그들이라고 왜 아름다운 인생을 꿈꾸지 않았겠나. 말이건, 시스템이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 있다. 경쟁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더 큰 발전을 위한, 함께 나아가기 위한 경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상대를 죽여 내가 사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폭력이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의 문화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만큼 소송이 많은 나라도 드물다고 한다. 선거가 끝나면 상대 진영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서로 대화를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걸핏하면 법에 호소한다. 조사를 받느라 경찰서나 검찰청을 드나들다 보면 서로 감정이 쌓인다. 한이 쌓인다. 상황이 바뀌어도 마찬가지 일이 반복된다.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우리 사회의 이러한 ‘죽이기’ 문화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다. 이제는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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