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친박계’ 향해 칼 빼들었나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4.18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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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체 ㄷ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압수수색…MB ‘황제 테니스 사건’ 때 연루된 인물

역대 정권마다 임기 말이 되면 검찰은 어김없이 정치권을 향해 사정의 칼을 빼들었다. 비단 ‘살아 있는 권력’뿐만이 아니다. 전방위적이었다. 지금 여의도 정가에서는 내년의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검찰 분위기가 ‘또’ 심상치 않아 보인다는 얘기가 많다. 대형 저축은행들에 대해 수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들의 이름이 조심스럽게 오르내리는 가운데 또 하나 주목되는 사건이 발생해 정치권 주변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송삼현)는 지난 3월 말,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위치한 건설업체 ㄷ사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압수수색 당시 ㄷ사에 제시했던 영장에는 횡령 및 배임 혐의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동시에 적시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회사 대표이사인 최 아무개씨가 회사 자금을 빼돌려 정치권에 불법 정치 자금을 건넸다는 단서를 포착했다는 것이다. 여의도 정가에서 “정치권을 향한 검찰의 사정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것이 아니냐”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서울 가락동에 있는 건설업체 ㄷ사(아래)가 최근 검찰로부터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있다. ⓒ시사저널 우태윤

 검찰은 이 회사의 회계 장부와 최씨의 개인 수첩 및 업무 일지 등을 확보해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또한, 최씨 개인과 법인 계좌의 자금 흐름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지난 4월5일과 6일 이틀간 검찰에 소환되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최씨가 횡령한 회사 돈이 적게는 수십억 원, 많게는 100억원대에 달한다”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은 최씨가 이렇게 조성한 비자금의 일부를 정치권에 건넸다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최씨가 자신의 사업과 관련해 정·관계에 로비를 한 의혹도 있지만 그보다는  마당발로 소문난 최씨가 정치권에 어떤 명분과 방식으로 금품 로비를 벌였는지에 수사의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최씨는 그동안의 검찰 조사에서 “불법 정치 자금을 조성한 적도 없고, 정·관계에 로비한 적도 없다”라고 자신의 혐의를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검찰이 겨냥하고 있는 ‘정치권’은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최씨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을 ‘친박’(친박근혜계)이라고 얘기하고 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도 최씨는 ‘친박계’와 어느 정도 연결 고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최씨가 어떤 인물인지 들여다보자. 그는 1960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다음 수도권 대학의 토목공학과를 졸업했으며, 한 건설회사의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토목 기술자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지난 2001년 대전 둔산동에서 ㄷ사를 설립했고, 지난해 11월 현재의 서울 가락동으로 이전해왔다. 흙막이 공사 등을 수주해 매년 2백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총 자본금은 12억원이다. 최씨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젊은 건설 벤처기업인’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2월에는 과학기술부장관으로부터 ‘이달의 엔지니어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한국장애예술인문화협회 총재와 건설시민연대 대표, 한국레포츠연맹 총재 등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이력을 쌓기도 했다. 특히, 2005년 12월 출범한 한국레포츠연맹의 초대 회장을 맡았는데, 현재도 이 연맹의 홈페이지에는 ‘명사 격려문’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 김정길 대한체육회장 등의 축사가 게재되어 있다. 유력 정치인들과 가까운 사이라는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기 좋아했다는 최씨의 정치적 성향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이 연맹에는 유명 언론인이 명예총재를, 여자 연예인들이 홍보 대사를 각각 맡고 있다. 최씨 주변의 한 인사는 “최회장이 회사 업무와 전혀 무관한 대외 활동을 상당히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친박 핵심 인사들 “모르는 사람이다”

▲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시사저널 박은숙

건설업자인 최씨는 직접 정치에 뛰어들고자 하는 노력도 여러 번 시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었던 2006년 불거진 ‘황제 테니스 사건’ 때, 그는 이명박 시장의 테니스장 사용료 2천만원을 대납했던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서울시 테니스협회장이었던 그는 6백만원 정도를 대납했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명박 시장과도 그만큼 가까웠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는 이명박 후보가 아닌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친이계’에서 ‘친박계’로 말을 갈아탔던 셈이다. 2008년 18대 총선 때는 경기도 남부권의 한 지역구에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한 전력도 있다. 이후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으나, 당선권 내에 들지 못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앞서 언급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검찰은 최씨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과 2008년 18대 총선을 전후한 시기에 최씨가 횡령한 회사 돈의 일부를 친박계에 건넨 사실이 있는지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가 자칫 친박계로 번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친박계 핵심 인사들은 4월14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최○○씨를 아느냐’라는 질문에 한결같이 “최○○씨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수도권 재선 의원), “친박계라고 사칭하고 다니는 사기꾼 같은 사람들이 워낙 많다. 최○○씨라는 이름도 처음 듣는다”(비례대표)라고 일축했다. 

기자는 최씨의 휴대전화로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받지 않았다. 문자메시지를 전송해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지난 4월13일 오후, 서울 가락동에 위치한 ㄷ사를 방문했으나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이 회사 직원은 “회장님은 며칠 전부터 회사에 나오시지 않고 있으며, 연락도 잘 되지 않는다”라고만 말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그를 ‘일개’ 정치 브로커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무 분야에 밝은 여권의 한 인사는 “검찰이 최씨를 ‘대어(大魚)’로 보는 것 같은데, 그 정도 인물은 아니다. 어찌 보면 정치권을 왔다 갔다 하는 정치 브로커 수준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당시 영장에 ‘횡령과 배임 혐의’만 적시했어도 된다. 그럼에도 굳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까지 적었다. 그만큼 혐의를 입증할 만한 단서를 포착했다는 방증이다. 검찰의 향후 수사가 주목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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