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끝없는 포항, 한맺힌 절규 누가 끊을 것인가
  • 포항·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4.1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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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는 포항시 대잠동 일대. 해가 지기 시작하자 하나 둘씩 간판에 불이 켜지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포항 지역 유흥업소 여성들의 자살 행렬이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올 3월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이 일곱 명이나 된다. 지난해 7월에는 연이어 세 명이 자살해 <시사저널>이 커버스토리로 다룬 적이 있다. 그런데 또다시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체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업주들 모임인 ‘한마음회’의 자살 은폐 의혹이 일고 있는 포항 현지의 실상을 집중 취재했다.

포항 유흥업소에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포항 유흥업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이 일곱 명이나 된다. 한 달에 한 명꼴이다. 이들의 죽음 때문일까. 최근 포항의 유흥가가 밀집해 있는 포항시 남구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는 ‘이곳에서 조만간 또 사람들이 죽어나갈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지난해 7월7일부터 10일까지 사흘 동안 포항시 남구의 유흥가에서 룸살롱 마담으로 일하던 이 아무개씨(32)와 김 아무개씨(36) 그리고 종업원으로 일하던 문 아무개씨(23)가 연달아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은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었다. 사채 빚에 짓눌린 가녀린 여인들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당시 <시사저널>은 제1083호에서 이 사건을 커버스토리로 보도했다.

그런데 비극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문씨가 자살한 바로 다음 날인 11일에도 업소 여성 정 아무개씨(31)가 포항에서 조금 떨어진 경주시 황성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씨 역시 7일 숨진 이씨의 밑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정씨의 자살 사건을 담당한 경주경찰서에는 정씨가 처지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종결지었다. 지난해 10월20일에는 포항시 남구의 룸살롱에서 일하던 여종업원 김 아무개씨(가명·34)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해 1월12일에는 역시 룸살롱에서 일하던 이 아무개씨(23)가 자신이 살던 원룸 안에서 목을 매 숨졌다. 올해 3월24일에도 포항시 남구 대잠동 ㅅ업소에서 일하던 여종업원 최 아무개씨(27)가 자살했다.

왜 유독 포항에서만 유흥업소 여성들이 이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풀리지 않는 의혹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지난 4월12일 <시사저널> 취재진은 다시 포항을 찾았다. 약 8개월 만에 다시 찾은 포항시 남구 대잠동 일대 유흥가. 다소 낯선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7월 두 명의 여성이 숨진 ㄱ업소가 같은 자리에서 ㅈ업소로 간판만 바꾸고 영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ㅈ업소 인근의 한 룸살롱 업주는 “맨 처음 사고가 났을 때에도 이 업소는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사이에 또 한 명이 죽으니까 잠시 수리를 한다며 문을 닫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간판 이름을 바꾸더니 다시 영업을 했다. 사장은 같은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취재진이 지난 4월12일에 자살한 최씨가 일했던 ㅅ업소를 찾아가 보니, ㅅ업소의 간판은 이미 내려진 상태였고 업소의 입구에는 ‘내부 수리 중’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업소 주변에서 ㅅ업소 사장의 행방을 찾아나섰지만 결국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인근 룸살롱에서 일하는 한 종업원은 “지난해부터 업소 아가씨가 죽으면 업주들이 찾아 와서 뒷수습을 하곤 했다.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는 ㅅ업소 사장이 장례식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자기가 고용한 아가씨가 죽었는데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이다. 듣기로는 이미 ㅅ업소에서 일하던 종업원들을 다른 가게로 보내 잠시 일을 하도록 조치를 취해놓았다고 한다. 아마 조만간 가게 간판만 바꾸고 다시 일을 시작하지 않겠나”라고 귀띔했다. 

업소의 종업원들이 연달아 목숨을 끊고 있는데도 업주들이 이처럼 태연히 영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 중에 만난 포항 지역 일부 업주나 종업원들은 ‘이 모든 것이 한마음회 때문’이라고 무겁게 입을 뗐다. ‘한마음회’는 포항 지역 룸살롱 업주들의 모임으로, 현재 포항시 남구 대잠동 일대 40여 개의 룸살롱은 모두 한마음회에 소속되어 있다. 익명을 요청한 포항의 한 유흥업소 업주(남)는 “한마음회가 생긴 지 이제 3년 정도 되었다. 요즘 이곳에서 자살하는 아가씨들이 많아진 것도 결국은 한마음회의 횡포 때문이라는 것을 이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마음회가 제멋대로 여성들에게 세금을 거두어가는 것에서부터 타 지역이나 다른 업종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까지. 이곳 아가씨들은 거의 족쇄를 달고 산다”라고 말했다.

“한마음회, 자살 은폐 매뉴얼도 갖고 있다”

▲ 자살한 최 아무개씨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업소. 최씨의 자살 이후 업소는 간판을 내린 상태이다. ⓒ시사저널 박은숙

유흥업소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마음회는 업소 여성들의 자살을 은폐하는, 일종의 매뉴얼까지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제보에 따르면 여성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한마음회는 업주에게 ‘우리가 처리할 테니 영업을 계속하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유흥업소 종사자는 “사람이 죽으면 바로 한마음회로 연락이 간다. 한마음회는 정말 치밀하게 움직인다. 현장의 증거 인멸에서부터 유족들에게 돈을 건네는 데까지 관여한다. 자살 사건이 더 커지지 않도록 재빨리 수습하기 때문에 업주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영업을 계속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여종업원들은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죽은 여종업원 문씨와 같은 업소에서 일한 김 아무개씨(29) 역시 “죽은 문씨는 원래 일기를 열심히 쓰던 아이였다. 업주에게 모욕을 당했다거나 2차를 나갔다거나 자신이 지출한 내역 같은 것을 늘 일기에 꼼꼼히 적어두었다. 그런데 그녀가 죽고 나서 유족조차 문씨가 일기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를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업소 동료였다. 업주가 동료를 통해 문씨가 일기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기 때문에 당시 일기장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정말 의아한 것은 그동안 죽어나간 아가씨들이 자신이 작성한 장부라든가 일기 등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지난해 7월에 죽은 김씨의 경우 유서를 남겼지만 그 내용이 빚을 남기고 가서 업주에게 미안하다는 식이였다. 아가씨들이 그렇게 죽어나가는 동안 지금까지 업주에게 불리한 증거물이 발견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 정말 이상하지 않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마음회의 횡포와 자살 은폐 의혹에 대한 제보는 생각보다 심각한 정도였다. 그동안 더 많은 자살 사건이 있었는데도 가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취재진이 만난 유흥업소 관계자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아가씨들이 죽어나가도 업주들은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곳 포항 업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세무조사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흥업소 사장은 “사실 이번에 조사를 받은 ㅅ룸살롱 사장은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바로 ‘한마음회’ 쪽으로 전화를 걸어 조만간 세무조사가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흘릴 정도였다. 요즘 포항의 업주들은 세무 당국 직원을 모시고 골프 접대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업주들에게는 아가씨가 죽는 것보다 이번 사건 때문에 언제 불시에 세무조사를 받을지가 더 걱정거리일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 지난 3월24일에 자살한 최씨가 남긴 유서와 성매매 내역이 적힌 장부. ⓒ시사저널 박은숙

하지만 말은 많으나 한마음회의 횡포 여부에 대해 아직 진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는 없다. 한마음회를 향한 비난에 대해 김 아무개 한마음회 회장(50)은 이렇게 해명했다. “한마음회는 업주들끼리 만든 일종의 친목회에 불과한데 이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번 자살 사건 등이 터지고 나면 업주로서는 죽은 마담이나 아가씨의 빚을 떠안고 영업에서 손해를 보는 등 피해가 상당하다. 어떻게 대책 없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게다가 요즘 일하는 아가씨들이 별로 없어서 힘든데 업주들이 아가씨들을 착취한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업소 여성들의 자살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경찰이 업주나 업주들의 모임인 한마음회를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경찰이 유흥업소 여종업원의 자살이 업주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증거를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연쇄 자살 사건을 담당한 포항 남부경찰서는 업소 여성들이 지니고 있는 사채 빚을 자살 사유로 간주해 포항 지역 사채업자 일곱 명을 검거하고 수사를 마무리 지었다.

‘착취 구조 해체 위한 대책위’도 꾸려져

▲ 지난 3월24일에 자살한 최씨가 남긴 유서와 성매매 내역이 적힌 장부. ⓒ시사저널 박은숙

하지만 3월 이후, 경찰의 수사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3월24일 죽은 최씨를 가장 먼저 발견한 이가 바로 최씨의 언니(34)였다. 최씨는 죽은 동생이 남긴 유서와 일하면서 기록한 장부의 복사본 그리고 휴대전화 기록 등을 모두 확보했다. 이번 사건은 유족이 자살을 목격한 최초 발견자였고, 경찰도 ‘업주를 조사해달라’라는 유족의 주장에 따라 업주를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씨의 언니(34)는 “동생은 원래 다른 쪽에서 일을 하다가 자신이 알고 지내는 마담이 업주로 있는 ㅅ업소로 옮겨와 지난해 12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죽은 것은 3월24일에 발견했지만 사실 동생이 죽은 것은 발견하기 이틀 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새벽 업주와 13분가량 통화를 했고 바로 유서를 쓴 듯하다. 유서 내용을 보면 업주가 주는 모욕감을 견딜 수 없다는 식의 감정적인 묘사가 많다. 사실 동생은 일을 그만두려고 이미 3월 초에 업주에게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였다. 동생에게는 속칭 ‘마이킹(선불금)’ 명목으로 업주에게 1천4백만원가량의 빚이 있었는데, 일을 그만두겠다고 한 이후로 업주의 빚 독촉이 시작되었다”라고 말했다.

최씨의 언니는 “지난 3월18일 금요일에 업주가 한 남성과 함께 사다리를 타고 동생이 사는 원룸의 베란다로 찾아와 크게 싸움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동생의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결국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동생이 죽은 이유에 대해서 철저하게 파헤칠 것이다”라며 눈물을 훔쳤다. 죽은 최씨의 동료 정 아무개씨 역시 “최씨가 스무 살 무렵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그 사이에 빚이 거의 5천만원 가까울 때도 있었다. 그런 때에도 열심히 일해서 갚아나갔던 아이였는데 죽기 전에 남은 빚은 겨우 1천4백만원 정도였다. 업주가 얼마나 독하게 괴롭혔는지 말로 해서 무엇하겠나. 죽고 나서도 유족에게 단 한마디 사과도 없었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최씨의 언니는 현재 지난 3월30일에 꾸려진 포항 유흥업소 성산업 착취 구조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포항 대책위’)에 동생의 죽음과 관련된 문제를 파헤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해놓은 상태이다. 포항 대책위의 윤경희 대표는 “이번에 자살한 최씨의 유서를 통해 그동안 얼마나 심적인 고통을 당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대책위에서는 이번 사건을 더욱 철저하게 파헤칠 수 있도록 경찰뿐만 아니라 시·도 관계자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할 것이다. 앞으로 절대 여성들이 절망에 빠져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씨가 남기고 간 장부, 포항판 ‘장자연 리스트’ 될까 

현재 포항 남부경찰서는 지난 3월24일에 죽은 최씨와 관련된 수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취재진은 최씨의 유족을 만나 최씨가 남긴 유서와 성매매 내역을 기록한 장부를 확보했다. 유서에는 업주에게 빚을 갚지 못해 당한 모욕감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최씨가 남긴 장부에는 지난해 12월23일부터 올해 3월12일까지의 성매매 기록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세 달 가까운 기간 동안 거의 매주 성매매를 의미하는 속칭 ‘2차’라는 표시가 적혀 있었다.

이번 수사를 담당하는 포항 남부경찰서 고재등 수사과장은 “유서 내용 때문에 업주에 대한 조사를 일차적으로 진행했고 업주가 일부 시인한 바 있다. 또 장부에는 특정인 한 명의 실명과 전화번호 하나가 남겨져 있을 뿐이다. 때문에 수사는 최씨의 통화내역 조회를 통해 명단을 작성해 과연 이들이 성매수 혐의가 있는지 역으로 추적하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일부 밝혀진 바가 있지만 아직까지 명단 안에 이 지역의 유명 인사는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혹은 남아 있다. 사고가 난 ㅅ룸살롱 인근 업소 관계자들은 ㅅ룸살롱에는 지역 정가 인사들과 검사, 변호사, 의사, 경찰관, 언론인 등이 드나들었다고 증언했다. 포항시 남구 일대 유흥업소에서 10년 가까이 일을 해왔다는 김 아무개씨(29)는 “ㅅ룸살롱뿐만 아니라 이곳 대부분의 업소에 드나드는 손님이 그런 이들이다. 힘 있는 사람들이 드나들다 보니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저절로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아니겠나. 만약 이번에 제대로 터지면 포항 일대가 난리가 날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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