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그늘’ 외면하는 지역 사회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1.04.18 19: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역 정·관계 인사들, 등 떠밀려 대책 내놓거나 무관심…이상득 의원실은 “아직 파악 못했다”

시작은 지난해 7월이었다. 7월7일부터 나흘 동안 포항시 유흥주점 여종업원 세 명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고리 사채로 생긴 비관 자살에 방점을 찍고 수사에 착수했고 수사를 종결했지만, 여성 단체들은 “성산업 착취 구조에 문제가 있다”라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포항여성회 윤경희 대표는 성명서를 낸 뒤 여러 통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는 포항시 과장급 공무원도 있었고 지역 신문사 기자도 있었다. 그들은 “사채가 문제인데 업소의 영업 형태를 문제 삼거나 착취라고 하는 것은 왜곡된 사실 아니냐”라고 말했다.

여성들의 죽음에 남성들은 무관심했다. 한 지역 신문 기자는 “유흥업소 여종업원은 집창촌의 경우와 다르다는 인식이 있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것이 돈 버는 수단으로 인식되지 않는가. 그러면서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분위기라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건과 유사하게 취급되었다”라고 말했다.

자살 사건이 일어난 남구 대잠동, 상도동 일대는 100여 곳에 달하는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다. 항의하는 이들 중에는 지역 경제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윤대표는 “‘이곳들이 유흥업소이지 성매매업소가 아닌데 왜 그러느냐. 너희들이 그렇게 떠들면 포항 남구 일대 경기가 위축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라고 전했다.

▲ 포항 유흥업소 성산업의 착취 구조를 해체하라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 ⓒ포항 유흥업소 성산업 착취 구조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 제공

“지역 경제 죽는다” 항의하는 이들도

자살은 계속되었다. 지난 3월24일, 일곱 번째 여성이 향불이 되어 사라졌다. 이 죽음의 책임을 묻겠다는 지역 사회의 대응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대책위 활동을 돕겠다는 뜻을 밝힌 한 포항시의원은 “여전히 시의회에서 관심이 없다. 나도 함께하겠다는 말은 했지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여성단체는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리고 포항시장과의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몇 차례 고성이 오고 갔다. 면담을 받아주러 나온 남성과 면담을 하러 온 여성 사이에는 성매매 산업을 바라보는 간극이 있었다. 결국 여성 단체들이 폐쇄된 대전 유천동 성매매 집결지처럼 강력한 행정적 처분을 요구했고, 박승호 포항시장은 실무진에게 “일단 그런 사례들을 조사해 오라”라고 지시했다.

포항남부서는 ‘유흥업소 여종사원 자살 방지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이름 그대로 구조적 문제보다는 ‘자살 방지’와 ‘단속’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포항남부서 고재등 수사과장은 “자살은 사회적 측면에서 고려해야 하는 현상이지 않나. 경찰인 우리는 그런 일이 없도록 단속을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이곳 지역구 국회의원인 이상득 의원(한나라당)이 이번 문제에 조치를 취해주기를 원했고 면담을 신청했다. 이의원의 지역 사무실에서는 “포항에 내려올 때가 있으니 그때 만나자”라고 말했다. 그 요청은 잘 전달되었을까. 이상득 의원실의 관계자는 “지역 일은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직 이 여성들이 지운 책임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은 포항에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