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업계 ‘고수’ 언제 다시 날개 달까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1.04.18 19: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태영 현대캐피탈·현대카드 대표이사 고객 정보 유출 사고 후 기자회견 자청해 고객에게 사과

 

▲ 서울 여의도에 있는 현대캐피탈·현대카드 본사. ⓒ시사저널 박은숙

“아직 손익누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현대캐피탈, 현대카드가 모두 호조이고 특히 현대커머셜이 약진을 하면서 창사 이래 최초로 올해 영업이익 1조원 돌파는 확정적입니다.”(2010년 11월30일 ‘직원들께 드리는 보고서’ 중) 

“이번 사태가 발생한 점에 대해 대표이사로서 고객 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질책을 피할 수는 없으나 사고 후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2011년 4월10일)

불과 넉 달 만이다. 정태영 현대캐피탈·현대카드 대표이사(51)가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말 자사 직원들에게 영업이익 1조원 돌파 소식을 전했던 그였다.

사상 최악의 현대캐피탈 해킹 사건은 순식간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고객 42만명의 주민등록번호, 이메일, 휴대전화 번호와 1만3천여 명의 대출 관련 비밀번호가 유출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노르웨이에 출장 가 있던 정사장은 지난 4월9일 곧바로 귀국했다. 그리고 하루 뒤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정대표의 사후 처리 노력에도 고객들은 불안

그가 택한 방법은 정면 돌파였다. 정사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고객에게 사과했다. 정대표의 노력에도 논란과 불안감은 증폭되는 양상이다. 유출 범위를 가늠할 수 없고, 아직까지 해커의 정체조차 뚜렷하게 파악된 것이 없다. 사후 처리에 애쓴다 해도 이미 넘어간 고객 정보는 되돌릴 수 없다. 업계 1위를 자랑하던 현대캐피탈의 위상은 이미 날개를 잃고 추락했다. 

정태영 사장은 7년여 전인 지난 2003년 10월 현대캐피탈·현대카드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현대차그룹이 금융 계열사 정상화에 본격 나서면서 당시 정태영 현대카드 부사장을 현대캐피탈·카드 사장으로 전격 발령한 것이다. 인사가 이루어질 당시 현대카드 사장 자리는 몇 개월간 공석 상태였다. 현대캐피탈은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2000년대 초 카드 대란 이후 현대카드의 위상도 바닥까지 내려간 상황이었다. 정상화가 절실했다. 따라서 현대차그룹의 인사에 세간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일각에서는 정태영 사장 인사를 두고 ‘현대가의 3세 경영 본격화’를 언급했다. 정태영 사장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둘째딸 정명이씨의 남편이다. 당시 정회장의 아들 정의선씨가 기아차·현대모비스 부사장, 셋째사위 신성재씨가 현대하이스코 부사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또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아들인 정지선씨가 백화점 부사장에 오른 상황이었다. 정태영 사장의 최고경영자 취임은 ‘3세 경영’ 전망에 힘을 보태기에 충분했다.

“신용카드업은 현금서비스, 카드론 등 부대 업무로 수익을 내서는 안 된다. 내년부터는 순수 신용카드 이용액, 할부 이용액 영업의 비중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려 진정한 신용카드 사업으로 승부를 걸겠다.” 지난 2003년 12월30일 정태영 사장은 취임 일성을 이렇게 토해냈다. 공격적이었다. 정사장 취임 직후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회사의 상징인 CI까지 대대적으로 바꾸며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당시 현대카드는 6천3백억원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사정은 현대캐피탈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캐피탈은 일반 대출의 부실이 커져 1천5백억원의 적자를 안고 있었다. 현대차가 84.2%,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8.5%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의 대표적인 금융 계열사였지만 대출 부실에서 오는 손해는 피해갈 수 없었다.

5년 후, 상황은 반전되었다. 지난 2008년 현대카드 영업이익은 2천5백억원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돌려 막기’ 최후의 카드로 쓰일 뻔했던 현대카드가 불과 5년 만에 업계 상위권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지난 2010년 정사장이 겸임하는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3사의 영업이익은 1조원을 넘어섰다.

무너진 ‘신뢰’ 회복할 묘수 찾아야

▲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이 지난 4월10일 기자회견에서 해킹 사건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호사다마인가. 샴페인 향이 가시기 전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왔다. 금융기관으로서는 사상 초유의 해킹 사고로 인해 신용에 기초한 사업을 벌이는 현대캐피탈이 ‘신뢰의 위기’에 빠진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정태영 사장의 경영과 리더십은 심판대 위에 올랐다. 일부 언론에서는 투자 비용 때문에 보안 관리에 허술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슈퍼콘서트에 월드 스타 섭외할 돈이면 보안에나 투자해라’라는 네티즌들의 항의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보안’은 금융기관의 심장이다. 더군다나 현대캐피탈은 현대카드와 연결되어 있어 2차, 3차 피해까지 우려되고 있다.

사건은 ‘얼마나?’ ‘어떻게?’에서 시작해 ‘누가?’ ‘왜?’ ‘피해 규모는?’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금 ‘내’가 피해자인가, ‘왜’ 나의 정보를 빼갔는가, ‘나’는 어떤 피해를 볼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정태영 사장은 “끝나고 나면 피해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전부 설명을 드릴 것이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라고 말할 뿐이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현재는 서버상에서 오가는 기록들을 중간에서 가로챈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혹자는 투자비 등을 이유로 보안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현재 수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태영 대표는 그동안 ‘고객 정보 유출은 용서할 수 없다’라고 강조해왔다.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까. 사장 취임 이후 승승장구하던 그였다. 지난 20년간 따라다니던 현대차그룹 사위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부회장 승진도 내다보던 그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