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에 일본 정치 뿌리도 ‘흔들’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1.04.1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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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결과, 개혁적 인물 내세운 지방 세력 급부상…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 뚜렷이 드러나

3월11일 발생한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와중에 일본에서는 지난 4월10일 통일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대지진 사고는 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사망자 수가 7천3백20명에 이르고 행방불명자는 1만1천3백70명이다. 이재민 수는 39만2천4백43명이다. 심각한 피해 탓에 선거 연기도 검토되었으나 법적인 문제로 인해 피해가 큰 후쿠시마 현, 미야기 현, 이와테 현을 제외하고는 선거가 치러졌다.

민주당이 패배할 것이라는 선거 결과는 일찍이 예견되었다. 다만 어느 정도 패배할 것인가 정도가 관심거리였을 뿐이다. 선거 직전에 아이치 1구 출신인 사토 유코 중의원의 탈당을 시작으로 민주당 후보로 지명되었던 후보들이 줄줄이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 지도부와 오자와 전 대표 측근들 간의 내홍도 선거 대패의 전조였다. 오자와 측근들은 “간 나오토 총리만 아니라면 야당인 자민당의 타니가키 총재라도 좋다”라며 간 총리와 극하게 대립했다. 무엇보다 대지진과 원전 사고에 대한 처리 과정의 미숙함으로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은 극에 달했다. 선거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12개 지역의 광역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전패했다.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의 출신지이자 민주당의 텃밭인 미에 현 지사조차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41개 도·부·현 지방의회 선거구 어느 한 곳에서조차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 지난 4월5일 일본 도쿄의 총리 공관에서 열린 회의에서 간 나오토 총리(오른쪽 두 번째)가 후쿠시마 원전 인근 후타바 지역 대표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EPA

강력한 개혁 깃발 내건 민나노당도 두각

집권 민주당의 완패였다. 지방에서의 고전은 말할 것도 없고, 지지 기반인 도시 지역에서조차도 지지율이 하락했다. 그렇다고 제1 야당인 자민당에 대한 지지도 아니다. 민주·자민 양대 정당 중심인 기존 정당들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식어가고 있다.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와타나베 요시미가 이끄는 민나노당(모두의 당)이 약진한 이유도 강력한 개혁 깃발을 내건 덕분이었다. 국민들은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54년간 지속된 자민당 정권에 염증을 느껴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를 해 주었다. 새로운 변화,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민들의 변화와 개혁에 부응하지 못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 간 나오토 총리로 이어오고 있는 리더십은 불안하다. 오자와 전 간사장의 정치 자금 문제로 깨끗한 당의 이미지도 추락했다. 어느 하나 기대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대지진 사태에서 드러난 위기 관리 능력은 여전히 국민들의 불신만 키우고 있다.

지난 4월10일 지방선거에서 일본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러운(?) 선택을 했다. 민주당도 아니고 자민당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공명당, 사회당과 같은 여타 정당도 아니다.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감이 뿌리 깊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용한 변화가 일었다. 지역에서 개혁 이미지로 지지도가 높은 인물 중심의 지역 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졌다. 오사카 부 하시모토 도오루 지사가 이끄는 ‘오사카 유신회’,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이 중심인 ‘감세 일본’ 그리고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 현 지사의 ‘일본 제일 아이치회’ 같은 신당의 출현이 그것이다.

이 중 가장 새로운 대안 세력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하시모토 지사가 이끄는 ‘오사카 유신회’이다. 오사카 유신회는 이번 선거에서 오사카 부를 도쿄처럼 수도 형태로 승격하겠다는 공약과 오사카 시와 사카이 시를 하나로 묶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선거 결과는 오사카 부 의석 수 총 1백9석 중 57석인 과반수를 차지했다. 또 오사카 시 의회와 사카이 시 의회에서는 제1 당이 되었다.

이들이 급부상한 배경에는 공약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기존 정당에 대한 강한 불신과 하시모토 지사의 그동안의 개혁에 대한 실망이 자리 잡고 있다. 하시모토 지사는 2008년 오사카 부 지사에 취임하자마자 기자회견에서 재정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오사카 부의 공채를 발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행정 부문에서 1천억 엔(약 1조3천억원)을 삭감하고 모든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먼저 자신의 퇴직금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공무원 사회가 술렁였고 대대적인 개혁 청사진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오사카 유신 프로그램’으로 명명된 개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반발하는 공무원들에게 “개혁을 하다가 같이 죽자”라는 비장한 결의를 보였다. 공채 발행 등의 일부 공약이 수정되기는 했으나 대체적인 개혁의 방향과 의지와 열정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힘이 지난 4월10일 지방선거에서 하시모토 인물 중심의 지역 정당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모델, 현역 대학생, 지사의 측근 등 이른바 ‘하시모토 아이들’(지지자)이 많이 당선되었다. 비록 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선거 결과이기는 했지만 전국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정당과 세습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다. 지금까지 민주당과 자민당 나아가 공명당, 사회당 등 기존의 정당 세력 간 힘의 이동은 있었으나 지방 차원에서 인물 중심의 정당이 출현한 적은 없었다. 향후 정치의 풍향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과 기존 정당들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오사카 지역에서 뿐만이 아니다.

시민 편에서 ‘재정 개혁’ 내세운 정당들 약진

▲ 일본 대지진 피해 이재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리쿠젠타카타 시의 한 중학교 체육관. ⓒEPA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이 주창한 ‘감세 일본’ 세력도 나고야 지역에서 새로운 대안 세력으로 부상했다. 가와무라 시장 하면 ‘감세’가 트레이드마크로 인식될 정도로 감세에 대해 적극적이다. 그는 “일본에서 세금이 제일 낮은 나고야를 만들겠다” “시민세를 10% 줄이고 그 재원은 행정 개혁을 통해서 충당하겠다”라고 주장한다. 모든 초점은 시민을 위하고 세금을 삭감하기 위해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다. ‘감세 일본’은 나고야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이번 아이치 현 지방선거에서 정원 1백3명 중에 19명의 후보를 내 13명을 당선시켰다. 또 한·일의원연맹 의원이기도 한 오무라 히데야키 아이치 현 지사가 중심이 된 ‘일본 제일 아이치의 모임’, 가다 유키코 시가 현 지사 등이 이끈 지방 정치 세력들도 부상했다.

하시모토 지사를 중심으로 한 지역 정당들이 일으킨 변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개혁이다. 특히 재정 개혁을 우선시하고 있다. 오로지 국민들, 시민들 편에 서서 무소의 뿔처럼 단단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사람들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최근 단명한 총리들과는 다르게 임기 5년간 내내 40% 이상의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철저한 개혁 브랜드였다.

일각에서는 하시모토 지사, 가와무라 나고야 시장, 오무라 아이치 현 지사 등이 중심이 된 인물 중심의 지역 정당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도 있다. 하시모토 지사가 공약으로 내건, 오사카 부를 도쿄처럼 수도로 삼겠다는 주장에 대해서 구체적인 알맹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와무라 시장의 감세 정책에 대해서는 대지진과 원전 사고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증세가 불가피한데 감세라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서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과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의지가 표출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책임론을 따질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 동북부 대지진이 오기 전에 2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했듯이 지방 정치 세력의 새로운 부상은 일본 정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정치 대지진의 전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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