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희망 시드는 4월은 잔인한 달인가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04.1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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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응집력 탓에 민주화 혁명의 열기 식으면서 앞날 불투명

 

▲ 지난 4월13일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입원하고 있는 샤름-엘-셰이크 병원 앞에서 한 아이가 이집트 국기를 들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AP연합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시작된 중동 민주화 운동은 인근 10개 국가로 확산되면서 ‘아랍의 봄’을 예고했다. 그러나 온 세상의 기대를 모았던 혁명의 기세는 3개월 만에 감속(減速)되고 있다. 혁명의 기치를 든 주역은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 엘리트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일자리는 없고 독재와 부패의 그림자는 깊고 광범위하다. 혁명의 전도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이 봉기가 1968년의 ‘프라하의 봄’이나 1989년 동구를 휩쓴 혁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냉전 시대의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와는 달리 지금 중동에서 거리에 나선 시위대는 외세의 압제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결집되지 않았다. 아랍 청년들도 중동의 독재 정권들을 지원한 미국을 곱게 보지 않지만 반미가 봉기를 유발하지는 않았다. 이들에게는 바르샤바조약기구 국민들이 가졌던 반소(反蘇) 같은 적대감도 없다. 타도할 소련도 없고 외세를 추방한 후에 가입할 유럽연합(EU)도 없다. 이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외세가 아니라 국내의 독재와 빈곤이다. 결과적으로 국내의 반(反)독재 투쟁은 반(反)외세 투쟁만 한 응집력이 없다. 이에 비해 독재 정권들은 상대적으로 강력하고 잔혹하다.

‘공약’ 앞에서 시위대 분열하기도

어떤 의미에서 오늘의 중동 사태는 그루지야의 ‘장미 혁명’,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또는 키르기스스탄의 ‘튤립 혁명’과 비슷하다. 옛 소련 위성국의 젊은 세대는 밝은 미래와 번영을 기약하지 못하는 독재 정권에 맞서 목숨을 걸었다. 피의 혁명을 겪은 이들 3개국은 아직도 독재와 부패를 일삼는 정권과 싸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혁명의 열기는 식었다. 튀니지, 이집트 그리고 최근 대통령이 체포된 코트디부아르에는 조만간 새 정부가 들어설 것이다. 그러나 고질적 문제가 너무 많다. 피폐된 경제와 부족 간 갈등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새 정부를 중심으로 단합할 능력이 없다. 독재 정권들은 이 점을 십분 활용해 달콤한 공약을 제시하고 개방과 개혁을 다짐함으로써 반정 시위대를 분열시킨다. 중동 민주화의 전도를 어둡게 하는 상징적인 예는 리비아이다. 이 나라의 국가 원수 무아마르 카다피는 막대한 오일 머니로 용병을 고용하는가 하면 반정부 세력을 현금으로 매수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모로코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1천3백억 달러 규모의 서민용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압둘라 왕의 퇴진을 요구하던 시위대는 즉각 동요하기 시작했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도 외신 보도와는 달리 반대하는 세력보다는 더 많은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다. 대학생까지 시위에 가담하는 사태가 일어났지만 정권 붕괴로 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2009년의 부정 선거로 시위가 촉발된 이란도 잔혹한 탄압으로 반정 시도를 무산시켰다. 중동에서 네 번째로 정권 붕괴가 일어날 위험이 있는 나라는 현재로서는 예멘뿐이다.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지지율이 워낙 낮은 데다 빈부 격차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리비아의 진로는 암중모색 단계이다. 아프리카연합(AU)이 제시한 정전 중재안을 반군이 거부함으로써 어렵게 마련된 출구 전략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반군은 카다피의 퇴진을 고집하고 있으나 카다피의 저항 또한 완강하다. 모로코 국왕 모하마드 6세도 시위에 직면했으나 폭 넒은 대중적 지지를 업은 채 정치·경제 개혁 약속을 통해 반정부 세력을 와해시키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알제리에서는 강력한 군부의 진압으로 반정부 시위가 지지부진하다. 그 밖에 수단과 요르단에서도 시위가 계속되고 있으나 정권을 무너뜨릴 만큼 강도가 세지 않다.

아랍의 봄이 이 지역 국민들의 인내심의 한계를 허물었고 그 결과 새로운 장(章)이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 들어설 새 정부들의 능력을 과대 평가하거나 기존 독재 정권들의 저력과 잔혹성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동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중동 봉기의 성공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또 하나의 요소는 모든 나라의 시위대에 지도자가 없다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너셔스는 시위대를 ‘오합지졸’(flash mob)이라고 표현했다. 단 하나 유일한 공통점은 시위대가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변화에 눈을 뜬 젊은 세대라는 점이다. 이들은  부패한 독재 정권들에 대한 두려움을 ‘순간적으로’ 망각한 나머지 거리로 나서기는 했으나 방향 감각은 없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언론인은 중동의 봉기가 “연착했다”라고 풍자했다. 10년 전 혹은 20년 전에 폭발했어야 할 분노가 이제야 나타났다는 것은 기회를 놓쳤다는 의미이다. 물론 중동 사람들이 낮잠만 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수 세대에 걸쳐 변화를 모색했다. 그러나 늘 독재 정권에 대한 공포와 부패에 대한 분노 사이에서 우유부단하다가 시간을 낭비했다.

딜레마에 빠진 미국 외교도 거들어

▲ 지난 4월7일 체코를 방문한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EPA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미숙한 미국 외교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미국은 혁명의 대의(大義)는 환영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전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증오하면서도 그의 오만과 독선을 암암리에 고무했다. 이라크 침공으로 딜레마에 빠진 미국은 이른바 ‘이라크 신드롬’에 걸려 아랍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에서의 변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협상을 성공시키지 못했고 레바논의 헤즈볼라도 견제하지 못했다. 핵을 개발하려는 이란에는 질질 끌려다녔다. 미국은 중동 민주화 바람이 자생적으로 시작된 사실에 흡족해하는 눈치이다. 하지만 이것은 위선이다. 혁명의 불길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고 그 방향은 확실하지 않다. 어느 순간 반미로 돌변할지도 모른다. 아랍 혁명을 바라보는 이스라엘의 심정도 불편하다. 대체적으로 이스라엘에 우호적이었던 정권들이 붕괴되고 과격한 이슬람 세력이 집권할 경우 예루살렘의 평화와 안정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이런 인식도 아랍 혁명의 전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모든 혁명은 초기 단계에서는 매력적이다. 자유는 충만하고 반대의 소리는 충천한다. 그러나 프랑스와 러시아 혁명에서 1979년의 이란 혁명에 이르기까지, 모든 혁명은 이상과 현실에서 차이가 있다. 장밋빛 이상만 있고 조직이나 지도자가 없는 혁명은 또 다른 ‘악의 먹이’가 된다는 점을 역사는 가르치고 있다.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한 카이로의 ‘타흐리르(Tahrir)’ 광장은 자유를 의미한다. 1952년 왕정을 타도한 가말 압델 나세르의 혁명을 기념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그 후에 이집트에 온 것은 또 다른 독재 정권이었다. 튀니지, 이집트, 요르단의 혁명은 성공에 필요한 요인을 처음부터 결여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분노를 달래줄 카드가 없다 보니 혁명의 종착역은 혼란과 폭력이다. 이집트 혁명이 성공하려면 인도 수준에 버금가는 8%의 경제 성장이 따라주어야 하지만 현실은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내부에서 부패한 사회는 언젠가 폭발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혁명은 필연성을 내포하지만 그 혁명이 성공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집트의 어느 정치인이 한 말이 함축적이다. “아랍 혁명은 장기적으로는 좋은 일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일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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