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안전 챙기기, 손길이 다르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04.1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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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I·보건복지부’ 인증 병원, 기자가 직접 체험…환자 분류부터 시술까지 시종 ‘꼼꼼’

 

▲ ① 과거와 달리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심각성을 측정해서 각기 다른 응급실로 배치한다. ② 환자 이름과 환자번호 등이 적힌 팔찌 인식표 확인은 환자가 바뀌는 사고를 방지한다. ③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자신이 어떤 진료를 받게 될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시사저널 박은숙  

부지불식간에 환자는 병원 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병원에서 환자의 모든 것은 의료인의 손에 달려 있다. 치료를 잘해서 환자가 회복되기도 하고, 의료 실수로 환자가 사망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실수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의료 실수인지를 일반인으로서는 규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지난 1월(제1109호)과 3월(제1115호)에 그 심각성을 심층 취재해 보도했다. 그 이후 의사들은 언젠가 터질 일이었다는 반응을 보였고, 독자들은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을 문의해왔다.

JCI(국제 의료기관 평가위원회)와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 수준을 평가해서 인증 마크를 부여한다. 인증 마크를 받은 병원은 환자 안전을 세계적인 수준에서 관리함을 공인받는 셈이다. 평가 기관은 병원 실사를 통해 환자 안전을 평가한다. 기자는 가상 심근경색 환자가 되어 실사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인증받은 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의 차이점을 확인해보았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로 작은 부분에서 차이가 났다.

현동근 인하대병원 적정진료관리실장은 “인증받은 후에는 의료 과오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인증 자체보다 환자 안전에 대한 의료진의 인식과 행동이 변한 점이 큰 수확이다”라고 말했다.

오전 10시      환자 분류

환자는 출근 직후 심한 가슴 통증을 느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응급실 의료진은 가장 먼저 환자의 통증 정도를 파악했다. 무통증을 0, 극심한 정도를 10으로 할 때 어느 정도인지를 환자에게 물었다. 또 당뇨, 고혈압, 수술 경험 등이 있는지도 확인했고, 혈압·맥박·체온 등을 측정했다. 심각성이 중한 환자는 레드, 중간 정도는 옐로, 가벼우면 그린 응급실로 분리되어 배치된다. 일반적으로 응급실에는 위급한 환자와 가벼운 환자가 혼재되기 십상이다. 자칫 상태가 심각한 환자가 신속한 처치를 받지 못해 위급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환자 분류 지침은 필요하다.

오전 10시5분    환자 인식표 부착

환자는 레드 응급실로 옮겨졌다. 두 명의 의사와 세 명의 간호사가 각각 이름과 나이를 물었고, 또 여러 차례 확인했다. 검사·시술·투약 등 진료 과정마다, 또 응급실·시술실·입원실 등 장소를 바꿀 때마다 환자는 자신의 입으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말해야 했다. 정신없는 응급실에서 환자가 뒤바뀌는 사고를 원천적으로 방지하려는 노력이다. 곧이어 신원을 알 수 있는 인식표가 환자의 팔에 채워졌다. 인식표에는 이름, 나이, 성별, 환자번호 외에도 빨간 하트 표시가 붙었다. 침대에서 떨어질 위험이 있는 환자라는 의미이다. 이 표시가 있는 환자의 침대는 항상 고정되고, 침대 양옆에 지지대도 설치된다. 낙상 사고를 미리 방지할 수 있다.

오전 10시8분     검사

의료진은 채혈, 심전도 검사, 흉부 엑스레이 촬영, 가슴 초음파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환자에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간호사는 환자에게 사생활 보호를 원하는지 물었고, 환자의 요청에 따라 커튼을 쳤다. 의료진 외에는 환자를 볼 수 없도록 한 후 검사가 시작되었다. 사실 위급하다는 이유로 환자의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다. 개방된 응급실에서 옷을 벗어야 하고, 심지어 여성이라도 성기를 드러낼 때도 있다.

간호사는 소독제로 손을 닦고 장갑을 낀 후 채혈했다. 소독 솜도 밀폐된 상자에서 꺼내 사용했다. 그 상자에는 유효 기간이 표기되어 있어서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내용물을 모두 폐기한다. 상태가 위중한 환자일수록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감염에 더욱 신경 쓰는 부분이다. 일부 병원 응급실 의료진은 다른 환자를 만지던 손으로 또 다른 환자를 보기도 한다. 채혈할 때 장갑을 끼지 않거나 공기 중에 노출된 소독 솜을 사용하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 ④수술과 입원이 필요하면, 환자 보호자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개별 면담실에서 의료진과 상담한 후 동의서에 사인한다. ⑤ 수술실 의료진은 타임아웃이라는 제도를 통해 환자와 수술 부위 등을 확인한다.⑥ 수술 후 환자는 집중치료실에서 수술 경과를 점검받는다. ⑦ 집중치료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환자는 퇴원할 때에도 의료진으로부터 안전 수칙과 향후 치료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시사저널 박은숙  

오전 10시20분    개별 면담

검사 결과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판명 났다. 의사는 시술이 급하다고 판단하고, 환자의 보호자를 개별 면담실에서 만나 이 사실을 알렸다. 특히 시술이 필요한 이유, 그 방법,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 시술하지 않을 때의 문제점, 다른 대안 등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환자나 보호자는 경황이 없어 이런 설명을 건성으로 듣기 십상이다. 따라서 보호자에게 조목조목 설명하고 항목마다 사인하도록 한다. 그런 후에 시술 동의서에도 사인을 받는다. 설명을 대충 하거나 인쇄물로 대체하는 병원이 많다. 급하다는 이유로 시술 동의서만 받고 입원을 재촉하기도 한다. 보호자와의 면담도 응급실 복도 등 개방된 곳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오전 10시25분    ‘타임아웃’ 외친 뒤 시술

▲ 인하대병원 심혈관계 집중치료실 문에는 환자 안전 정보 확인을 강조하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환자는 시술실로 옮겨졌다. 시술에 들어가기 직전 모든 의료진은 타임아웃을 외쳤다. 타임아웃은 환자가 바뀌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절차인데, 환자·시술 방법·시술 부위 등을 세 명의 의료진이 모두 동의한 후에야 비로소 시술이 시작되었다. 일부 병원에서는 환자 확인을 소홀히 해 엉뚱한 환자를 수술하기도 한다. 

오전 11시15분     집중치료실 이동

좁아진 혈관을 확장시키는 기구(스텐트)를 환자의 심장 혈관에 삽입하는 것으로 시술은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후유증 등에 대비하기 위해 환자는 집중치료실로 이동되었다. 환자 또는 보호자는 집중치료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에 동의하는 사인을 해야 한다. 그 동의서에는 갑자기 위급해지면 응급조치나 수혈을 한 후에 환자나 보호자에게 설명할 수 있고, 환자에게 불가항력적인 증세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실 구두 설명은 대충 하고 문서로 대신하는 병원이 많다. 

정오     일반 병실 이동 후 퇴원

상태가 호전되어 큰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설명에 따라 환자는 휠체어를 타고 일반 병실로 이동했다. 간호사는 휠체어를 고정한 후 환자가 앉도록 했다.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길 때 환자가 삐끗하면서 넘어져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 있다. 며칠씩 입원하기도 하지만 환자가 회복되었다는 가정하에 의사의 권유로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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