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예능’이 된 '무한도전'의 저력
  •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04.18 19: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조성·이슈 반영·약자 편들기 등 제작 방향 잘 유지

 

<무한도전>이 ‘존경받는’ 예능이 된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무한도전>은 창조성과 도전 정신을 보여준다. 성공적인 포맷을 계속 우려먹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도전 자체에 시청자는 감동받는다. 간혹 <무한도전>이 부진에 빠졌다는 기사가 나올 경우 네티즌이 강력히 반발하는 것은 이런 도전 정신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블록버스터급 대실패작 ‘좀비 특집’이 이런 <무한도전>의 도전 정신을 상징한다.

둘째, <무한도전>은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선다. 박명수의 여드름 난 등에 그려진 지도를 따라 추격전을 벌였던 ‘여드름 브레이크’에서 철거민의 아픔을 부각시킨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무한도전>이 기획했던 청와대 특집은 사람들의 맹렬한 비난으로 좌초되었다. ‘<무한도전>마저 최고 권력에 영합하느냐’라는 지적 때문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기획은 가장 약자라고 할 수 있는 다문화가정 어린이를 위한 것이었다. 그 어린이도 당당한 주권자임을 알려주기 위한 취지였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이 알려질 때마다 네티즌은 ‘폭풍 감동’에 빠진다.

셋째, <무한도전>은 그때그때의 이슈를 기민하게 반영한다. 그러다 보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무한도전> 속의 모든 표현이 현실과 관련된 풍자적 발언으로 오해되기까지 할 정도이다. 사람들은 자막 하나에까지 모두 의미를 부여하며 <무한도전>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이 때문에 정치적 공격을 받기도 하고, 또 그럴수록 네티즌은 <무한도전>을 ‘결사 항전’의 각오로 지키는 사수대를 자처한다. 이것이 매주 일요일만 되면 <무한도전> 관련 논란이 뜨거워지는 이유이다.

4월9일에 방송된 ‘쩐의 전쟁’은 이런 <무한도전>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우선 이 특집은 <무한도전>의 도전 정신을 보여주었다. 기획 의도가 완전히 살지 않아서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런 아슬아슬함이 오히려 도전 정신을 돋보이게 했다. 절반의 실패가 초래된 것은 제작진이 멤버를 완전히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과거 ‘좀비 특집’이 실패한 이유도 이런 열린 구조에 있었다. 멤버의 돌발 행동에 의해 때로는 기획이 실패로 돌아가지만, 시청자는 익숙한 구도와 안전한 각본보다 이런 아슬아슬한 도전을 사랑한다.

‘쩐의 전쟁’이 보여준 정신으로 <무한도전>의 존재 증명

약자의 편에 선다는 정신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쩐의 전쟁’은 치솟는 등록금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대학생의 입장에서 시작되었다. ‘아르바이트를 계속한다고 해도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이 어렵다’라는 학생의 인터뷰와 ‘아르바이트를 아무리 한다 해도 어떻게 해낼 방법이 없어요’라는 김여진의 호소가 프로그램 첫머리를 장식한 것이다. 그에 이어 멤버들이 직접 아르바이트를 해본다는 것이 프로그램의 내용이었다.

그때그때의 이슈를 기민하게 반영한다는 시의성도 충분히 구현되었다. 대학 등록금 문제는 요즘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이다. 이달 들어 등록금 관련 시위가 연일 보도되었다. 최근에는 카이스트에서 경쟁과 등록금 문제 때문에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더욱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이럴 때 예능 프로그램이 마치 <생방송 100분 토론>처럼 정확히 관련 내용을 소재로 잡은 것이다. 이럴 때 이른바 ‘무도빠’들은 외친다. ‘이봐 이봐, 이러니 안 사랑하고 배겨? 이 어메이징한 예능을’

<무한도전>은 얼마 전에도 ‘나비 효과’ 특집으로 시청자를 ‘폭풍 감동’ 속에 빠뜨렸었다. 멤버들이 팀을 나눠 2층집에서 휴가를 즐긴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기획 속에 지구온난화에 대한 문제 의식이 숨어 있었다. 북극을 상징하는 2층 얼음방이 녹아내려 열대의 섬을 상징하는 1층 방을 덮칠 때는 전율할 정도의 충격까지 느끼게 했다.

올 초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무한도전>은 위기 상황을 자체적으로 점검하는 특집을 마련했었다. 전체적으로 서바이벌 오디션의 거센 폭풍 앞에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주춤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최근 <나는 가수다>라든가 <위대한 탄생> 등의 서바이벌 오디션이 예능 이슈의 모든 것이었다. 대중음악계에서는 아이돌이 도전에 직면하고, 예능에서는 리얼버라이어티가 도전에 직면한 구도인 셈이다.

이번 ‘쩐의 전쟁’으로 <무한도전>은 자신만의 가치를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서바이벌 오디션이 자극성과 감동으로 무장하고 쓰나미처럼 몰아닥쳐도 <무한도전>에는 <무한도전>만의 흔들리지 않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서바이벌 오디션의 도전에 대한 <무한도전>의 응전이었다고나 할까? 이런 기본적인 정신을 지키는 한 올해에도 역시 <무한도전>에 위기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재석이 확인시켜 준 국민 MC의 존재감

‘쩐의 전쟁’이 절반의 실패였다는 것은 이런 얘기이다. 프로그램은 분명히 대학생의 힘든 처지를 언급하며 아르바이트 체험을 한다고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체험이 시작되자 노홍철은 연예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떼돈’을 벌었다. 젊은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구름 관중을 상대로 손쉽게 장사를 한 것이다. 이것은 길바닥에서 외면받으며 아르바이트해야 하는 실제 대학생을 두 번 죽이는 짓이었다.

하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시내에서 마시지를 해주겠다며 여성들을 끌어들였다. 일반 남학생이 길바닥에서 여성에게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나섰다가는 뺨이나 맞기 십상일 것이다. 길의 영업 방식도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프로그램은 분명히 연예인의 이점을 이용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이들은 그것을 어겼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애초의 기획 취지가 다 무너져버렸다. 이들이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 그 의미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고, 왕자의 거지 체험처럼 연예인의 ‘된장 놀음’으로 비쳤을 따름이다.

절반의 성공은 유재석과 박명수 팀에게서 나왔다. 그들은 인적 없는 후미진 곳에서 잘 팔리기 힘든 아이템으로 장사를 했다. 당연히 장사가 안 되었고, 프로그램은 그들을 통해 돈 벌기 힘든 상황이라든가, 물건을 살 수 없는 대학생의 처지라든가, 심지어 일반적인 노동 소득으로는 절대로 집을 살 수 없다는 얘기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유재석이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프로그램을 살린 구도였다. 사전 기획이었든 아니면 현장에서의 우연한 행동이었든 그런 문제와 별개로, 이런 포지션을 계속 취한다면 국민 MC로서 유재석의 지위는 올해에도 탄탄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