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의 잠’에서 깨어나는 쿠바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04.25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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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2위에는 제3의 인물 올라…새로운 집권 체제 구축하려는 듯

 

▲ 지난 4월19일 라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이 형 피델 카스트로(왼쪽)로부터 제1서기직을 승계하게 되자 환호하고 있다. ⓒAP연합

50년간의 ‘고립’을 버텨오던 쿠바가 마침내 세계사의 흐름 앞에 변화의 몸짓을 시작했다. 지난 4월17일부터 열린 제6차 공산당대회는 19일 폐막식에서 피델 카스트로나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아닌 제3의 인물을 공산당 권력 서열 2위 자리에 임명했다. 1959년 혁명 이후 처음으로 가장 중요한 권력 변동을 단행했다. 지난 2008년 와병 중인 형으로부터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물려받은 라울 대통령은 이날 형이 차지하고 있던 당 제1서기직을 승계하는 한편, 자신이 유지해 온 당 제2서기에는 심복인 호세 마차도 벤투라 부의장을 지명했다. 이것은 카스트로 형제의 50년 집권이 마침내 종말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당 대회는 권력 변동과 함께 3백건 가까운 경제 개혁안도 승인했다. 권력 이동과 개혁안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은 혁명 세대가 쿠바 사회주의의 한계를 인정한 결과이다. 라울 대통령은 폐막 연설에서 일련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는 고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급격한 체제 변화로 인한 충격을 줄이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며 쿠바의 변화는 거역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는 것이 분석가들의 평가이다. 이날 의례적으로 측근의 부축을 받으며 대회에 참석한 87세의 피델 카스트로는 동생의 당 제1서기직 승계가 발표될 때 뜨거운 박수를 보내 자신이 만든 당으로부터 완전히 은퇴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쿠바의 변화는 최근 카터 전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냉전 시기 앙숙이었던 미국과의 관계가 완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이루어져 주목을 끌었다. 중동의 민주화 바람에도 초연했던 쿠바가 변화의 몸부림을 보인 것은 매우 파격적이고 이례적이다. 쿠바는 얼마 전까지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반미 연합을 결성하고 사회주의를 고수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아마도 내부적으로 더 이상 국제 사회의 조류를 거역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공산당 대회를 14년 만에 개최한 것도 심상치 않은 일이다.

물가 상승 등으로 핵심 안건은 경제 개혁

라울은 당 대회가 열리기 수일 전 자신을 포함한 고위직의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는 조치도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84세인 그가 또 다른 10년의 권력 유지를 담보하려는 술책으로 폄하하지만 최소한 장기 집권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의 입으로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쿠바에 변화를 강요한 요인은 경제이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국민의 일상은 빈곤선으로 추락했고 정부의 배급 제도도 한계에 다다랐다. 그 때문인지 당 대회에서 통과된 핵심 안건은 경제 개혁이다. 100만명의 공무원 감원, 배급 제도 폐지, 사유 부동산의 매매 허용, 국가 보조금 축소, 국영기업에 대한 자율권 부여, 외자 유치, 정부 지출 감축 등을 골자로 하는 개혁안은 중앙위원회 토론에서 반대 없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그 밖에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서기국 위원 등 100명이 넘는 요직을 새로 선출했다. 라울 시대에 맞는 새 인물로 새로운 집권 체제를 구축하려는 포석이다.

형으로부터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물려받고도 형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던 라울은 당 대회를 계기로 명실상부한 쿠바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형의 권한대행 시절 대체로 현상 유지에 안주했으나 일단 대권을 잡은 이상 자신의 색깔을 낼 것이 확실하다. 라울의 색깔이란 다름 아닌 고립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당 대회에서 가결된 수많은 안건에는 라울의 야심이 묻어 있다. 

라울이 꿈꾸는 새로운 쿠바의 미래가 순탄하지는 않다. 반백 년에 걸친 형의 그림자가 너무 짙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그는 개혁 안건을 토의하는 과정에서 개혁을 향후 5년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자본주의’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쿠바에서 미국의 상징어로 간주된다. 그는 ‘개혁’이라는 말도 피했다. ‘변화’는 여러 차례 언급했으나 변화의 포괄적 의미를 ‘현대화’로 표현했다. 경제 회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개혁은 하지만 형의 통치 철학인 사회주의는 고수하겠다는 심중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쿠바가 당면한 경제난을 직설적으로 호소했다. 놀고먹는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없고 저가의 생필품을 공급하기 위해 정부가 언제까지나 보조금을 줄 수 없다고 고백했다.

젊은 세대가 권력 잡기는 힘들 듯

분석가들은 라울의 개혁이 과격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지난해 연설에서 “고무 풍선처럼 과도한 공무원들이 나라의 미래를 잠식하고 나아가 혁명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또 인사 개편을 통해 젊은 피를 수혈하고 싶지만 젊은 세대들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그가 지적한 대로 쿠바의 권력이 젊은 층으로 넘어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카스트로가 젊은 후계 세대를 양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양성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숙청했다. 그 결과 쿠바의 집권 세대와 먼 훗날 권력을 이어받을 젊은 세대 간에는 50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 쿠바의 시사 잡지 <테마스(Temas)>의 편집인이자 정치 분석가인 라파엘 에르난데스는 그 차이를 메우는 일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쿠바의 개혁이 점진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젊은 층 가운데 카스트로 시대를 맹신하는 이질적 인물들이 많다는 것도 문제이다. 이들은 쿠바의 민주화나 개방보다는 카스트로식 사회주의를 신봉한다. 이들이 당과 정부의 요직을 맡고 급진적 개혁을 저지한다. 쿠바에서 반카스트로 시위가 없는 것도 이들의 역할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요직 인사들의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는 제안에는 찬성과 반대가 반반이다. 라울을 승계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이를 반겼다. 그러나 아직 권력 핵심에 이르지 못한 정치인들은 제안 자체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카스트로 정권이 젊은 후계자를 양성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아니다. 카스트로는 한때 젊은 엘리트 세대를 키우려 했으나 그들이 자신과는 다른 인식을 보이는 바람에 당초의 계획을 취소했다. 쿠바 출신의 하버드 대학 교수 호르게 도민구에스는 쿠바 개혁의 최대 난관은 국민에게 개혁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설명하고 이를 통해 희망과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정치인이 없는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가게를 열 계획인 한 청년은 과거에 너무 많이 속았기 때문에 이번 개혁이 실현될 것으로 확신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라울은 직설적인 인물인 만큼 일단은 기대를 건다고 덧붙였다.

카터 전 대통령의 방문도 쿠바의 개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카터는 자신의 방문이 쿠바에서 투옥된 한 미국인의 석방을 교섭하기 위한 비공식 행사라고 강조했다. 미국인 앨런 그로스는 쿠바에서 사업을 하던 중 ‘반동’ 혐의로 체포되어 15년 징역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방문이 쿠바 정부의 초청에 따른 것이어서 정치적 해석이 뒤따른다. 카터는 쿠바로 가기 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만났다. 쿠바는 미국의 국제개발처(AID)가 하청업자인 그로스를 시켜 쿠바 국민들에게 불법적으로 인터넷을 연결시켜주는 반동 행위를 했다고 비난했다. 카터는 라울과도 면담했으나 그로스가 즉각 석방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라울은 카터의  방문을 앞두고 2003년에 투옥된 정치범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75명을 석방함으로써 미국의 요구를 수락하는 화해 조치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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