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직은 경쟁, 진급은 전쟁”
  • 김종대│D&D포커스 편집장 ()
  • 승인 2011.04.2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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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병대, 투서자 색출에만 혈안…제보 내용 언론 통해 불거지면서 ‘대형 비리’ 드러나

 

▲ 지난해 12월31일 장성 진급 신고식이 열린 서울 용산구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준장 진급자에게 삼정도를 수여하고 있다. ⓒ뉴시스

7천명의 병력을 보유한 헌병 병과는 규모 면에서 군대의 최대 ‘기관 세력’이다. 군의 기강을 확립하고 범죄 수사와 예방을 본연의 임무로 하는 이 헌병 조직이 최근 투서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투서 사건’이라는 표현은 이 사건의 경우에 맞지 않다. 제보된 내용이 허위 사실이 아니라면 ‘내부 고발’, 또는 ‘공익 제보’ 사건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따라서 이번의 경우, 지난 2009년 해군본부 내부의 구조적 비리를 폭로해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김영수 소령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헌병대 “진급 경쟁자에 의한 모함”

지난해 11월 초, 육군 중앙수사단(단장 승장래 준장)에 헌병 ㅎ중령의 제보 투서 한 통이 전달되었다. 그가 제보한 내용은 ‘전 수방사 헌병대장을 역임한 당시 ㅇ대령이 △약 3백만원의 연말 격려비 횡령 △매월 4백만원의 증식비, 비품구매비의 가짜 영수증 처리 △매월 수사비 약 100만원 유용 △매월 헌병 오토바이 정비비 약 40만원을 빼돌리는 등의 방법으로 공금 유용’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빼돌린 약 1억2천만원의 현금은 상품권, 양주, 갈비 세트를 구입해 유력자에게 진급 로비를 하는 데 쓰였거나, 지난 대선 때 MB 캠프에서 활약한  ‘서초포럼’ 소속의 예비역 장군들에게 향응을 접대하는 등 사적인 용도로 쓰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당시 국방부와 육군은 이 제보 내용을 확인하거나 검증하지 않았고, 오히려 11월 중순부터 제보자를 색출하는 데 헌병 수사 기능을 대거 동원했다. 헌병은 제보된 내용에 대한 확인 없이 ‘진급 경쟁자에 의한 모함’이라는 전제하에 ㅇ대령의 진급 경쟁자를 대상으로 투서자를 색출하기 위한 전담 TF(태스크포스)팀을 만들었다. 여기에 참여한 수사관들에게는 실제 제보 내용은 전혀 전달하지 않은 채,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의 겉봉투만 전달하면서 “투서자를 색출하라”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TF팀이 영관급 장교들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통화 내역 제출을 요구하는 등 행적을 조사하자 상당수가 통화 내역 제출을 거부하는 등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진급을 앞둔 시점에 진행된 이 수사는 자칫 ㅇ대령의 경쟁자를 견제하는 데 활용될 여지를 드러내면서 본격적인 ‘진급 전쟁’의 양상을 띠기 시작한 셈이다.  

현행 군 인사법과 보안 규정 등에 따르면 헌병은 주요 장교들의 범죄 정보를 비롯한 신원 조회를 실시할 수 있으며, 범죄 예방 차원에서 각종 범죄 및 신상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든 권력 기관이 그러하듯이 헌병 내부의 비리에 대한 제보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나 다름없다. 정작 제보 내용은 잘 모르면서 당사자를 찾아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 TF팀이 별다른 성과 없이 내부 갈등만 유발시키던 사이, 12월 중순에 ㅇ대령은 준장으로 진급해 육군 중수단장으로, 승장래 단장은 소장으로 진급해 국방부 조사단장으로 영전했다. 그러자 이즈음에 또 한 번 김관진 국방부장관 앞으로 비슷한 내용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를 받은 국방부장관실의 군사보좌관은 제보 내용을 검증하거나 확인하지 않은 채 김장관에게 ‘무기명 음해성 투서’라고 보고했다. 자세한 내용을 몰랐던 김장관은 “기강 확립 차원에서 투서자를 발본색원하라”라고 지시했다.

제보자를 찾아내는 수사는 올해 1월 말까지 강도 높게 진행되어 결국 경기도에 있는 한 사단의 헌병대장인 ㅎ중령으로 밝혀졌다. 투서를 낸 경위에 대해 ㅎ중령은 자신의 육사 후배인 헌병 ㅂ소령으로부터 ㅇ대령의 비위 사실을 전해 듣고 투서를 작성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ㅇ대령이 “현금을 상납하라”라며 헌병대 소속 몇 개 과에 각기 할당 금액을 부과하자 실무 장교들이 이를 마련하느라 예산을 과도하게 계상하고 허위로 서류를 작성했다는 ‘고백’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갈등을 느끼고 있던 ㅂ소령에게 ㅎ중령은 “내가 나서겠다”라며 이를 폭로하는 편지를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 막상 제보자가 밝혀졌으나, 장관 지시대로 제보자를 처벌하기에는 장애 요인이 발생했던 것이다. 우선 장관에게 편지를 전달하기 이전에 병과장(중앙수사단장)에게 먼저 내용을 알렸기 때문에 제보자가 지휘 계통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제보 내용이 입증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음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제보자는 “입증 가능한 1억2천만원 부문만 편지에서 적시했으며, 장부 파기로 입증이 곤란한 부분이 더 있다”라고 주장함에 따라 사건의 본질은 ‘음해성 투서’가 아니라 ‘대형 비리’로 전환될 성격의 문제였다. 이에 국방부와 승단장은 준장으로 승진한 ㅇ대령이 전역하는 것으로 이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전언이다.

육군 헌병의 병과장이 진급과 동시에 구설에 휘말리고 전역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헌병 병과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제보 내용은 외부는 물론 헌병 병과 내부에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오직 조사본부 고위층 극소수만이 갖고 있는 특급 기밀이었다. 때마침 김상기 육군참모총장은 차제에 이 사건을 헌병 개혁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박종선 인사사령관에게 헌병 개혁이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그러나 사건의 내용을 정확히 모르던 인사사령부나 헌병 장교들에게는 무엇을 개혁하라는 것인지, 방향 자체가 애매했다. 대령들을 불러모은 헌병 워크숍에서 헌병 수뇌부는 “무기명 투서를 하는 군기 문란 행위를 근절하고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라는 취지로 개혁의 방향을 설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금 횡령해 진급 로비에 유용한 혐의 포착

▲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지난 3월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방 개혁 과제 설명회에서 브리핑을 마친 뒤 각 군 참모총장들과 함께 자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4월 들어 제보 내용 일부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편지 내용의 진위 여부가 세간의 관심사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공금을 횡령해 현역은 물론 예비역 유력자에게도 진급 로비를 하는 현 진급 풍토의 치부가 외부에 드러난 것이다. 물론 로비 대상으로 알려진 고위 장성들은 금품과 선물을 상납받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서초포럼’측은 “ㅇ대령의 친형은 서초포럼 회원이 아니다”라며 관련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편지를 작성한 제보자측이 풍부한 수사 경험을 보유한 엘리트 헌병 장교들이고, 1억2천만원이 횡령된 정황이 상당히 구체적이며, 예비역을 통한 진급 로비의 일단이 드러난 이상 제보 내용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군 안팎의 중론이다.

군 주변에서는 “어느새 우리 군이 몇 번의 정권 교체를 겪으면서 정치권력의 향배에 민감한 ‘권력형 군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비역 사회가 청와대와 밀월 관계를 형성하고 현역이 여기에 다시 줄을 대면서 이제 “보직은 경쟁, 진급은 전쟁이다”라는 말이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것이다. 엄정한 재조사를 지시한 김관진 장관이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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