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모르고 왜 그리 시끄러운지…”
  • 부산 기장·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1.04.25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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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원전 지역 현지 취재 / 주민들, “밖에서 벌어지는 논란이 더 불안하게 만든다” 불만

4월21일, 경남 울산으로 통하는 기장대로를 빠져나와 ‘고리’ 방향으로 향했다. 원자력발전소로 향하는 국도변 길가에는 하얀색 꽃망울이 희끗 남아 있는 벚나무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벚나무길이 끝나면 이내 에메랄드 빛깔을 띤 바다가 펼쳐진다. 이처럼 평온하고 아름다운 곳에 도착하면 어디에서든 웅장한 시멘트 돔을 자랑하는 고리 원자력발전소를 볼 수 있다.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부산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울산과의 경계 지역이다. 이 지역에 있는 고리 원전 1호기의 폐쇄를 놓고 최근 논란이 뜨겁다. 환경단체들은 안전성을 의심하며 ‘폐쇄’를 주장했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관계자들은 안전성을 자신하며 ‘유지’를 고집했다. 반면 사건의 중심지인 고리 원전 주변 지역은 조용하다. 예상과 달리 그 흔한 찬반 플래카드 하나 나부끼지 않는다.

▲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 원자력발전소. ⓒ시사저널 유장훈

원전에 대한 불안감은 있다. 원전과 가장 가까운 월내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저게 흉물이제 흉물. 저것 때문에 자식들이 걱정된다고 전화도 오고 그랬다”라고 말했다. 원전 주민들 중 일부는 해외 원전 탐방을 다녀오기도 했다. 방문지 중에는 이번에 사고가 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도 있었다. 수년 전 후쿠시마 원전 설명회에 참석했던 박갑용 장안읍 길천리 이장은 “그곳도 매우 안전하다고 하더니 결국 사고가 났다. 주민들에게 확실한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오히려 ‘논란’에 더욱 불편해했다. 원전 사고에 대한 불안은 익숙해진 지 오래다. 한 주민은 “북한하고 전쟁 난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라고 반문했다. 반면 이럴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고 불안한 지역으로 떠오르는 것이 신경 쓰인다고 했다. 정종복 기장군의회 의장은 4월21일 이른 아침, 고리 원전 인근 주민들을 만났다. 이날은 최근 원전 문제로 골치가 아팠을 인근 지역 노인들이 관광버스 두 대를 나누어 타고 나들이를 가는 날이었다. 정의장은 “그냥 잊고 푹 쉬시다 오라고 했다. 사고가 터지면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분들이 저분들 아닌가. 오히려 바깥의 반응들 때문에 불안해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높은 양반들만 줄곧 오더라. 지금은 사람이 없어, 사람이.” 고리 원전이 논란을 불러오면서 지역민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원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고리 원전 주변 월내마을이나 임랑 해수욕장에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월내마을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주인은 “손님이 많이 줄어들었다. 처음 오는 손님들 중에는 주문을 했다가 원전 건물을 보고는 다음에 오겠다며 나가는 이들도 있다. 그동안 겪었던 그런 피해 다 따지려면 한도 끝도 없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지고 너무 떠드니까 싫다. 우리 속도 모르고…”라고 전했다.

“한수원 덕에 먹고살아…입장 쉽게 못 정해”

적어도 이 지역에서 고리 원전은 두 얼굴을 하고 있다. 고리 원전에서 가장 가까운 월내마을은 황량하고 스산하다. 흡사 탄광촌 이미지와 비슷하다. 기장군 관계자는 “고리 원전이 들어서려고 했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쪽이 기장읍보다 더 발전했던 지역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원전으로 인해 모든 발전 요소는 사라졌다.

원전은 이들에게 삶을 앗아갔다. 주위 주민들은 원전 때문에 생긴 박탈감이 크다. 원전을 중심으로 반경 8km 그린벨트가 생겼고, 지역민들의 재산권은 30여 년간 묶여 있었다. 그린벨트 때문에 한 집 건너 전과자가 나온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개발제한구역법을 위반하면서 생긴 일이다. 월내마을의 한 주민은 “잘 모르고 건물을 고치거나 축사를 올리다 고발 조치를 당해서 벌금을 문 사람이 수두룩하다”라고 말했다.

2007년 고리 원전 1호기 수명 연장을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것도 그래서였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대책위가 꾸려졌고 한수원과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다. 주민들은 ‘정당한 권리’를 되찾으려고 투쟁했고 한수원은 이런 지역민에게 보상을 약속했다. 고리 원전이 있는 부산시 기장군에는 1천6백10억원, 북쪽으로 인접한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지역에는 원전 지원금 5백50억원이 지원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한테 오는 것은 없다니까요.” 장안읍에서 만난 조근수씨(62)는 “지원금 때문에 부자 된 사람 많다고 외지인들은 오해하는데 그 돈은 다 군청으로 간다”라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기장이나 울주 한번 가봐라. 관청은 다 으리으리하고 이것저것 개발한다고 정신없다”라고 했다. 지원금의 상당수는 지역 내 토목 사업에 사용되고 있다. 기장군은 도예촌 테마파크 사업에 드는 7백41억원 중 5백억원을 수명 연장과 바꿔 받은 지원금에서 충당하기로 했다. 원전 지원금으로 부유해진 울주군은 서생면, 웅촌면, 삼동면 등 최근 새로 지은 네 곳의 면사무소 건립비로 2백70여 억원을 썼다.

반면 이 지역에는 원전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중학생 아이를 둔 여성은 “아이 학비 지원도 나오고 남편도 한수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라고 말했다. 기장군의회의 한 의원은 “한수원은 30년 동안 지역 주민들을 어르고 달랜 곳이다.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건설 현장의 기능공이나 여러 자리에 주민들을 꽤 많이 쓰고 있고, 비율도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그런 오랜 지원 때문에 원전에 대해 주민들이 무뎌 있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밖에서는 원전 가동을 중단하라고 말한다. 최근 고리 원전과 직선거리로 30km 이상 떨어진 부산시 남구 의회와 북구 의회는 ‘고리 원전 1호기 폐쇄 결의문’을 채택했다. 반면 당사자인 기장군의회는 고민에 빠져 있다. 의회 관계자는 “이 지역에 없는 사람은 쉽게 말할 수 있다. 신문이나 방송으로 보면 위험해보이고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부산 전체가 피폭된다고 하니 그냥 폐쇄하자고 말할 수 있지만, 대신 지원금으로 다른 자치구가 부러워할 정도로 육영 사업과 복지 사업도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원전을 둘러싼 논란은 이처럼 안과 밖이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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