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아직도 곳곳에 ‘뇌관’
  • 한면택 | 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1.05.0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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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급등·주택 시장 침체 등으로 경기 회복에 ‘찬물’…‘더블딥’으로 추락할 위험성은 크지 않아

미국 경제에 완연한 봄기운이 감돌다가 예기치 않은 한파가 몰아닥쳤다.
유가 급등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는 최대 복병으로 등장했다. 일자리는 늘고 있으나 소득은 그렇지 않아 소비를 촉진시키지 못하고 있다. 미국 불경기의 진원지인 주택 시장에서는 여전히 압류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

곳곳의 뇌관이 터져 더블딥(재침체)으로 추락할 위험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미국 경제의 성장률을 3% 아래로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 경제의 흐름은 내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선 여부는 물론 지구촌 경제에까지 미치는 영향이 커 앞으로의 향방에 미국 안팎에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 국제 유가 급등은 미국 가계 경제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AP연합

▒ 휘발유값, 1년 전보다 1달러나 상승

미국에서도 국제 유가와 휘발유값의 급등은 경제 회복세에 최대 장애물로 등장했다. 특히 휘발유값의 급등은 미국의 가계 경제에 치명타를 주고 있다. 미국 내 휘발유값은 이제 갤런당 4달러대를 돌파하고 올여름에는 5달러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내 휘발유값은 4월 말 현재 전국 평균이 3.87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8년 7월의 4.11달러에 바짝 근접하고 있다. 더욱이 50개주 가운데 하와이,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워싱턴D.C.와 뉴욕 등 7개주에서는 이미 4달러를 넘어섰고 올여름 5달러 돌파가 우려되고 있다.

현재 미국 내 휘발유값은 한 달만에 갤런당 30센트, 1년 전에 비하면 1달러나 상승해 있다. 그 결과 미국민들은 자동차 한 대에 휘발유를 가득 채우는 데 한 달 전보다 한번에 15~20달러 정도를 더 들이고 있어 차량 운행 비용으로만 한달에 60~80달러, 1년에 1천 달러를 더 지불하고 있다.

▒ 일자리 늘고 있으나 임금에는 불만

미국 경제에서 최대 고민거리 중 하나였던 고용시장에서는 2월과 3월 두 달 연속 회생 조짐을 보였다. 한 달에 20만명 이상씩 두달 연속 일자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의 실업률도 지난해 11월 9.8%에서 3월에는 8.8%로 4개월 만에 무려 1% 포인트나 내려갔다. 이러한 일자리 창출은 지속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은 아직도 불만스러운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라진 일자리가 다시 생기는 데 감지덕지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불경기 시절의 저임금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미 고용법 프로젝트라는 노동단체는 “지금까지 미국 내 고용 증가는 저임금 일자리에 집중되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7개월 동안 만들어진 일자리는 무려 76%가 저임금 또는 중급 수준의 직종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반면 임금이 높은 직종에서는 만족할 만한 일자리는 대거 사라진 데 비해 아직도 회복이 매우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고임금 직종들은 경기 침체 시 사라진 일자리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으나 고작 5% 선만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미국민 소비자들이 소비를 진작시킬 여력이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다.

▒ 주택 시장, 여전히 깊은 터널 속

▲ 미국 내 대도시들에서 주택 가격이 7개월째 내림세이다. ⓒAP연합

미국 불경기의 진원지였던 주택시장은 여전히 깊은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주택 시장에서는 아직도 모기지를 제때 갚지 못해 집을 빼앗기는 압류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압류 현황을 추적하고 있는 리얼티트랙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모기지를 연체시켜 디폴트(채무불이행) 통지를 받았거나 은행으로 소유권이 넘어갔고 경매에 넘어가는 등 압류 절차에 들어간 가구 수는 2백87만 가구에 달했다. 그중에서 실제로 압류가 실시된 가구는 1백5만 가구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2009년보다 14% 증가한 수치이다. 미국 정부의 갖가지 구제책에도 압류 주택이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2011년에 들어서는 1분기 3개월 동안 압류 절차에 들어간 주택들이 전분기에 비해 15% 줄어들어 감소세로 돌아섰으나 여전히 68만 채를 넘고 있다.

압류 주택은 팔리고 있는 전체 주택의 25% 안팎을 차지하고 있어 주택 가격의 하락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국 내 20대 대도시들의 주택 가격은 워싱턴D.C. 단 한 곳을 제외하고는 19군데에서 7개월째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 미국민 소비, 정체 또는 위축

미국 경제는 전적으로 미국민 소비에 의존해 가동되고 있다. 미국 경제에서 미국민 소비가 70%나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미국민들이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시 빠져들고 있어 소비가 정체되거나 위축될 위험이 생긴 것이다.

미국민들은 그동안 근로 소득 외에 신용카드 그리고 집값 상승으로 생기는 에큐티 론 등을 동원해 소비 생활을 즐겨왔다. 그러나 일자리를 잃었거나 다시 직업을 찾아도 임금이 줄어든 데다 집값까지 폭락함에 따라 에큐티론이 없어진 지 오래다. 그리고 신용카드 빚은 계속 쌓여왔다. 그런 상황에서 휘발유값, 식료품값 등 물가만 폭등하고 있으니 차량 운전, 외식, 여행부터 줄이려 하는 것이다.

미국 경제에서 미국민 소비는 지난해 4분기 4% 이상 성장한 바 있으나 올들어 1분기에는 그의 절반인 2%밖에는 늘어나지 않았다고 경제 분석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여기에 휘발유값이 급등한 데 따라 2분기에는 소비가 더 위축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 경제 성장률은 3% 아래로 하락

경제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이 3% 아래로 다시 주춤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USA투데이가 경제 분석가 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가 급등과 그에 따른 물가 인상으로 올해 경제 성장률이 2.9%에 그쳐 3%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수정한 전망이 대세를 이루었다. 전문가들은 지난 1월에는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이 3.2%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경제 분석가 10명 중 8명이나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 때문에 경제 성장률을 낮출 수 밖에 없다고 답했으며, 일부는 일본의 재앙으로 미국 수출과 일본산 부품 조달에 차질을 빚은 여파도 포함시킨 것으로 USA투데이는 전했다.

▒ 오바마 재선에 악재 될 가능성

유가 급등에 타격 입은 미국민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경제 상황은 일찌감치 재선 도전에 나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커다란 악재가 되고 있다. 고유가 등 경제 상황 악화에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하고 유권자들의 분노는 증폭되고 있다.

ABC뉴스와 워싱턴포스트의 공동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미국민들의 71%가 고유가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고유가로 심각하게 고통받고 있다는 미국민들 중에서는 39%로 추락했고, 경제적 타격을 입고 있다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43%,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부자들 사이에서는 53%의 지지율을 보여 큰 격차를 보였다. 특히 유가 급등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한 유권자들의 53%나 내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퉁령을 찍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휘발유값 급등과 물가 인상 등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미국민들은 부유층이 아니라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다. 이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조사 결과는 자칫하면 그의 재선이 위태로워질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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