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마케팅 사랑’에 빠진 백화점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1.05.0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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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롯데, 앞다퉈 미술 전시회 개최…대형 갤러리 규모에 전문 인력 갖춰 상업 화랑 압도

 

▲ 신세계백화점 서울 본점에 있는 트리니티가든. ⓒ신세계

한국의 대표적인 유통그룹인 롯데와 신세계가 세계적인 대가를 앞세운 아트 마케팅을 동시에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신세계는 지난 4월25일 ‘현대 미술의 살아 있는 거장 제프 쿤스’와 협업해 아트 마케팅을 펼친다고 발표했다. 3백억원대에 달하는 쿤스의 작품 <세이크리드 하트>를 본점 트리니티가든에 설치하고 이 이미지를 활용한 광고와 사은품, 쇼핑백을 제작해 5월 한 달간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제프 쿤스에 대해 신세계는 ‘앤디 워홀을 잇는 네오 팝아트 작가로 일상적인 사물을 소재로 크기를 극대화해 흥미를 유발시키는 작품을 주로 선보이며 생존 작가 중 최고의 경매가를 기록하고 있는 스타 작가’라고 소개했다.

이틀 뒤 롯데백화점은 ‘로버트 인디애나 특별전’을 발표했다. 인디애나는 앤디 워홀이나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동시대의 인물로 분류되는 미국 팝아트의 대가이다. 국내에서도 그의 대표작인 <LOVE>는 태평양그룹 본사 사옥에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친근한 작품이다. 롯데는 이 전시를 지난해 가을부터 준비해왔는데 신세계에서 이틀 먼저 쿤스 프로젝트를 발표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5월의 주제는 두 백화점 모두 ‘러브’

▲ 미국 팝아트의 대가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 . ⓒ롯데쇼핑

그동안 롯데는 2005년 3월 명품관 애비뉴엘을 개관할 때 일본의 대표적인 원로 작가인 세이지 후지시로를 초청해 전관 전시회를 열고 쇼핑백과 광고 이미지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화제를 모았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키스 헤링 전시회를 열면서 아트 마케팅을 실시했다. 올 초에는 아토마우스로 유명한 이동기 작가와 협업 작업을 진행하면서 VVIP용 사은품(드로잉 작품)과 쇼핑백 등에 아토마우스를 적용시키는 아트 마케팅을 펼쳤다. 롯데는 ‘사랑의 달=선물의 달’ 5월에 팝아트 계열 중 가장 대중적인 작가로 꼽히는 인디애나의 <러브>
를 앞세운 마케팅을 펼치려는 순간 신세계에 한방 먹은 것이다. 게다가 신세계가 들고 나온 <세이크리드 하트> 역시 러브와 같은 주제(♡)이다.

이들 두 유통 공룡의 미술 마케팅이 주목되는 이유는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상 롯데와 신세계의 갤러리 규모와 전문 인력은 국내 최대 사립 미술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롯데는 2010년에 다섯 곳의 갤러리를 열어 현재 아홉 곳이고, 올해 세 곳의 갤러리를 더 열 예정이다. 큐레이터 등 전문 인력만 30여 명에 달한다. 지난해 19건의 전시가 있었고 올해에는 15건의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신세계는 본점, 광주점, 인천점, 센텀시티점 등 네 곳에 전시장이 있고 이 중 센텀시티점은 전시 면적만 90평에 달하고 별도로 벽면 길이만 17m에 달하는 윈도우 갤러리를 갖추고 있다. 국내 백화점 갤러리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신세계에서는 연 70건 정도의 전시를 하고 있다. 이 정도면 양적인 면에서나 관람객 수에서 두 백화점의 전시 공간은 웬만한 상업 화랑을 압도한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이들이 직접적으로 그림 거래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미술계에서 나오고 있다. 두 백화점 관계자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상업 거래 기능을 하는 측면에서는 신세계가 조금 앞서 있다. 신세계는 10년 전부터 미술관팀을 만들어 관련 업무를 통합해 진행하고 있다. 황우경 신세계 미술관팀장은 “우리 팀에서 전시 기획이나 수장품을 직접 구입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백화점 갤러리는 백화점에 오는 고객에게 문화적인 서비스를 해준다는 의미이다. 구입을 원하는 경우에 연결은 해준다”라고 밝혔다. 일부 상업적인 화랑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황팀장은 “백화점 갤러리가 상업 화랑의 몫을 빼앗을 생각은 없다. 우리가 미술 시장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신세계 아트페어나 옥션 프리뷰 행사를 개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상업적인 갤러리 기능을 본격화하는 것은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준비하고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다”라는 말로 현재 단계를 설명했다.

“고객의 요구 수준 높아 문화에 투자”

롯데백화점은 별도의 미술관팀이 없고 문화사업팀에서 갤러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 애비뉴엘갤러리의 성윤진 학예실장은 “요즘 고객의 요구 수준이 높아져서 기존의 백화점 서비스로는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문화 쪽인 것 같다. 아무래도 백화점 고객이 문화에도 더 관심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아직 미술품을 판매하지는 않고 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영역이지만 좀 더 준비를 해야 하는 단계이다”라고 밝혔다. 

롯데와 신세계의 가장 큰 차이는 소장품의 차이이다. 신세계는 지난 2008년 본점 신관을 완공할 때 갤러리를 열면서 3백50억원 가치가 있는 1백50여 점에 달하는 소장품으로 백화점 곳곳을 장식했다. 반면 롯데는 이렇다 할 소장품이 없다. 때문에 기획전이나 초대전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는 신세계의 오너인 이명희 회장이 예술품에 관심이 많고 국내에서 손꼽히는 컬렉터로 꼽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신세계는 고가의 대형 작품을 회사 명의로 사들여 백화점 문화 공간에 전시하고 있다. 반면 롯데백화점의 갤러리 운영에 관여했던 신격호 롯데 회장의 장녀 신영자 사장은 미술품에 관심이 많았지만 개인적인 컬렉션 차원이고 신세계처럼 회사 차원에서 수십억~수백억 원대의 작품을 구매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제프 쿤스의 작품이 그려진 신세계백화점 기프트카드. ⓒ신세계
데미언 허스트와 제프 쿤스는 대중을 깜짝 놀라게 하고, 그래서 뉴스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현대미술계의 ‘광대’로 불린다.

이들이 대중을 놀라게 하는 지점은 두 군데이다. 하나는 기상천외한 작품 방식이다. 데미언 허스트는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빼곡히 달아놓거나 상어를 방부 처리한 뒤 삼등분해서 전시하거나 피가 흐르는 소 머리를 갤러리에 전시했다. 죽음을 날것 그대로 끌어들인 허스트의 작품에, 대중은 경악했고 매체는 호들갑스럽게 대응했고 허스트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쿤스는 포르노 스타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국회의원까지 지낸 일로나 스톨러(예명 치치올리나)와 결혼했다. 결혼 뒤 쿤스는 치치올리나와의 성행위를 조각과 사진으로 작품화한 <메이드 인 헤븐> 시리즈를 발표하고 뉴욕에서 전시회를 여는 등 스타덤에 올랐다. 그의 이 작업은 하드코어 포르노그라피를 이용한 순수예술 분야의 첫 번째 스타덤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쿤스는 공공 장소에서도 설치될 수 있는 좀 더 안정적이고 덜 직설적인 설치 작업을 통해 순수미술계의 스타로 안착했다.

이들이 작업한 파격적인 퍼포먼스·설치미술은 엄청난 가격으로 팔려 대중은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신세계가 사들인 <세이크리드 하트>는 3백억원에 육박했고, 데미언 허스트의 ‘방부제에 담근 생고기 시리즈 류’는 평균 2백억원대에 거래되었다. 이들의 작품에는 화제성, 엽기성, 선정성, 비싼 값 등 대중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고루 들어 있다. 게다가 미술 전문가의 ‘작품 보증서’까지 겸비하고 있어 중산층이 관심을 보여도 흠이 안 되는 교양 상품이다. 미술 컬렉션은 한국에서는 중산층의 새로운 신분 표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안전한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강도 높은 도발(즐거움)이 백화점 쇼윈도로 들어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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