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부부 죽음’에 숨은 거대 비극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5.02 19: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산 둘러싼 가족간 다툼 있었다는 증언 잇따라…한국 사회의 가족 해체 현상이 응축된 사례

지난 4월17일 오전 9시께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의 한 고급 주택에서 50대 부부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남편 김 아무개씨(58)는 청테이프로 양손과 발이 묶여 있는 상태였고,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어 피를 흘린 채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내 양 아무개씨(58)는 대들보에 목을 맨 채 숨져 있었다. 이들 주변에는 양씨가 쓴 유서가 있었다. 유서에는 “아들아, 미안하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구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번 사건이 충격적인 것은 아내가 남편을 삽으로 내리쳐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데 있다. 게다가 부부는 팽성읍 일대에서 3백억원대 자산가로 알려져 있었고, 4월 초에는 둘째아들을 장가 보낸 상태이기에 겉보기에 남부러울 것이 전혀 없어 보였다. 당초 이 사건은 남편의 가정 폭력에 시달린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고 자신도 뒤따라 자살한 참극으로 알려졌다.

ⓒhoneypapa@naver.com

당초 경찰 발표는 “가정 폭력이 부른 비극”

경찰 조사 결과, 아내의 범행에는 그녀의 조카사위 장 아무개씨(32)와 그의 선후배 세 명이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양씨는 지난 4월6일께 장씨에게 연락해 “고모부가 때리는 것을 막아달라”라며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범행이 일어난 4월16일 장씨 일행은 평택시 안중읍의 한 찜질방에 머무르고 있는 김씨를 납치해 렌터카에 태워 팽성읍에 있는 김씨의 집으로 끌고 갔다. 당시 차 안에는 아내 양씨도 타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도중 양씨는 자신의 큰아들(35) 집에 잠시 들렀다고 한다. 양씨는 큰아들에게 5백만원을 받아 장씨 일행에게 수고비 명목으로 나누어 주었다. 큰아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경찰 수사에서 “5백만원을 건네줄 당시 어머니의 범행 사실에 대해 전혀 몰랐다”라고 진술했다. 양씨와 장씨 일행이 집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1시40분 무렵이다. 그리고 부부의 집에 설치된 CCTV에는 범행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장씨 일행이  돌아간 뒤, 아내 양씨가 범행 도구로 쓰인 삽을 들고 들어가는 장면 등이다. 17일 오전에 죽은 김씨와 양씨를 발견한 이는 큰아들이었다.

CCTV 촬영 결과를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한 경기 평택경찰서는 4월26일 부인 양씨가 남편을 혼자서 살해한 것으로 결론짓고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경찰은 장씨 일행을 살인 방조와 납치·감금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0년 가정 폭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부부간 폭력을 경험한 비율이 약 53.8%에나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38쪽 기사 참조). 경찰 발표대로라면 이번 사건 역시 전형적인 가정 폭력이 부른 비극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시사저널> 취재진이 4월26일 팽성읍의 사건 현장을 찾은 결과, 새로운 증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부부의 비극 속에는 마치 우리 가족의 해체상을 응축한 듯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취재진과 만난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가정 폭력만이 원인은 아닐 것이다. 죽은 남편 김씨는 온순한 편이고 오히려 아내의 성격이 괄괄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웃 주민 중 한 사람은 김씨 부부가 가지고 있는 건물을 공사할 때 생긴 일화를 예로 들었다. 그는 “부인 양씨가 맞고 지낼 사람이 아니다. 건물 공사를 했을 때, 목수 일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배너 간판 같은 것을 3층에서 던진 일도 있었다. 당시 인부에게 상처를 입혀서 돈도 물었었다”라고 전했다.

일부 이웃들은 부부가 죽은 배경에는 ‘재산 분할’ 문제가 엮여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죽은 김씨와 약 20년간을 알고 지냈다는 마을 주민 김 아무개씨는 “이번 사건은 부부의 재산 때문에 빚어진 일일 것이다. 조카사위 장씨 일행 세 명 중 한 사람은 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 그를 통해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조카사위 장씨가 김씨 부부로부터 ‘재산 때문에 다툼이 있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김씨, 부부 싸움 크게 한 뒤 찜질방에서 생활 

▲ 지난 4월17일 오전 9시8분쯤 경기 평택시 팽성읍 2층짜리 고급 주택(아래) 1층에서 50대 부부가 숨져 있는 것을 아들이 발견해 신고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주민 김씨에 따르면 부부는 죽기 약 3주 전 즈음 ‘재산 분할’ 문제를 가지고 크게 다툰 적이 있다고 한다. 둘째아들의 결혼식을 치른 직후였다. 부인 양씨는 ‘재산을 분할해 아들 내외에게 줄 것을 미리 주자’라고 주장했고, 이에 남편 김씨는 ‘절대 안 될 일’이라고 반대했다고 한다. 이 무렵 남편 김씨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이웃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남편 김씨는 성실하게 회사를 다니던 사람이었다. 회사가 힘들었을 때에는 “임금을 삭감하더라도 회사를 지키자”라고 직원들을 설득해 남아 있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김씨가 돌연 회사를 그만둔 데에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마을 주민 김씨는 “아마 재산을 두고 크게 싸움을 했던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분은 죽기 전에 열흘 동안 찜질방에서 생활했다. 아내와 다투고 머리도 식힐 겸 나가서 지냈던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팽성읍 부근에는 죽은 김씨의 사촌형이 머무르고 있었다. 취재진이 찾아가자, 김씨의 사촌형은 “사촌지간이라고 해도 교류는 전혀 없었다”라며 부부의 죽음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큰아버지가 워낙 부자여서 아들(죽은 김씨)에게 재산을 꽤 많이 물려줬다. 물려받은 땅이 이 근처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인근에 살고 있어도 서로 교류는 없었다. 전해 들은 얘기로는 동생이 찜질방으로 나올 때 집의 통장 같은 것을 가지고 나왔다고 했는데 아마 그래서 문제가 생기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죽은 부부의 아들도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라 정확히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장례식장에서도 말이 없었다”라고 전했다.

이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큰아들의 침묵에 대해서 마을 주민이나 친척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한 이웃 주민은 “평소 왕래가 많지 않았던 큰아들이 처음으로 부부의 죽음을 발견한 것이 이상하다. 아마 죽기 전날 어머니를 만났을 때부터 무언가 불길한 낌새를 느끼지 않았겠나”라며 혀를 찼다. 

죽음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남편을 살해하고자 하는 아내의 계획에 조카사위가 동참하고 어렴풋하게나마 심각성을 알고 있었을 아들조차 속수무책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평택 부부의 죽음에는 ‘가족에 대한 무관심’과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다툼’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가족 해체상이 그대로 응축되어 있었다. 부부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한국 사회의 가족 해체 위기가 부른 참극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