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연대, 소리는 높고 길은 멀어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5.0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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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국민참여당 불신의 골 너무 깊어…“참여당 후보 당선되면, 정치 그만둔다”는 극단 주당도

# 장면 1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지난 4월27일 오후 8시10분쯤. 경기도 성남시 분당 을에 있는 손학규 민주당 후보 사무실에서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YTN의 출구조사에서 손후보가 강재섭 한나라당 후보를 10% 포인트나 앞선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사무실은 이내 잔칫집 분위기로 변했다.

이날 개표 초반 경남 김해 을 지역구에서는 김태호 한나라당 후보가 이봉수 국민참여당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나갔다. 그러다 9시25분쯤, 이후보가 처음으로 김후보를 역전한 순간, 손후보 사무실에 모여 있던 100여 명의 민주당 사람들 가운데 몇몇만이 ‘작은’ 박수를 보냈다. 환호성은 없었다. 오히려 “차라리 (이후보가) 떨어지는 것이 낫다. 이기면 또 시끄러워진다” “유시민은 꼴 보기 싫은데…”라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 4월27일 오후 민주당 당사에 마련된 개표 상황실에서 박지원 원내대표 등 당내 인사들이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듣고 기뻐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 장면 2

한창 재·보궐 선거 투표가 진행되고 있던 같은 날 오후, 기자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을 만났다. 이 의원은 “만약 손대표가 분당 을에서 지면 손대표 개인도 끝이고, 우리 당도 끝이다. 손대표가 지는 순간 민심은 박근혜 쪽으로 확 기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분당 을에서 지더라도 김해 을에서 이기면 유시민 대표가 탄력을 받을 수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하자, 그는 대뜸 “손대표가 지고 유시민(국민참여당)이 이기면, 나도 정치를 그만둘 것이다. 체질적으로 유시민과는 안 맞는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두 장면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의 가장 큰 변수인 ‘야권 연대’의 험로를 엿보게 한다. 전문가 및 관계자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물론 야권 연대에 대한 의지는 상당히 강하다. 야당 인사들을 만나면 3분의 2 이상이 “반드시 야권 연대를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야권 연대의 필요성과 절박성에 대한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되어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유시민 참여당 대표도 틈날 때마다 야권 연대를 외친다. 손대표는 당선 이후 “재·보선 야권 연대를 통해 야권 연대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느낄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 최대 조직인 ‘진보개혁모임’의 공동대표인 한명숙 전 총리는 “야권의 통합이 없이는 4월 재·보선이라는 ‘모의고사’와 내년 총선이라는 ‘예비고사’, 대선 ‘본고사’를 잘 치를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대표는 당 대표 후보로 단독 출마한 후 전국 유세를 돌던 지난 2월26일 대전시당 대회에서 야권 연대와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야권 연대는 6·2 지방선거의 좀 더 완벽한 형태로 하면 된다. 이 시점에서 (2012년) 총선 연대 기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4·27 재·보선 얘기만 하고 있다. 우리 당에서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지만 원만한 연대를 위해서 말할 때는 아닌 것 같다. 내가 당 대표가 된 다음 다른 야당 대표들과 만나서 상설 연대 기구를 만들고 각 당의 좋은 생각을 토론하고 합의하도록 노력하겠다.”

하지만 야권 관계자들에게 “어떤 과정과 형식으로 야권 연대를 성사시킬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면, 그저 우물거릴 뿐이다. 대부분 “다른 야당과 잘 협의해봐야겠지”라고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야권 연대 문제가 단순한 사칙연산은 아니기 때문이다. 야당 간의 지분 문제 등 정치적 이해타산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거기에 감정적인 문제까지 꼬여 있다. 야권 일각에서 ‘야권 연대 비관론’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야권 연대 문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되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이미 그 위력을 경험했다. 이번 재·보선에서도 김해 을을 제외한 강원도와 분당 을, 전남 순천 등에서 야권 연대의 파괴력이 다시 입증되었다.

그렇다면 야권 연대로 가는 길에는 어떤 난관이 도사리고 있을까. 무엇보다 야권 연대의 최대 당사자인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저변에 흐르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반목을 극복할 수 있을지가 핵심 관건이다. 특히 유대표에 대한 민주당 쪽의 반감이 여전하다. 김해 을에서 단일 후보 경선 방식을 놓고 양당이 갈등을 겪으면서 유대표에 대한 불신의 골은 더 깊어졌다. 민주당의 고위 당직자는 “우리 당은 전남 순천은 일찌감치 무공천하기로 했고, 김해 을에서도 참여당이 요구했던 100%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 후보 선출 방식을 수용했다. 우리 내부의 진통에도 불구하고 야권 연대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참여당만 패배하지 않았느냐. 참여당 후보 선정부터 패배까지 모두 유대표의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김해 을 패배 후 ‘야권 통합론’ 고개 들어
 

▲ 4월27일 김해시 장유면의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 선거 사무실에서 지지자들이 개표 결과를 보면서 허탈감에 젖어 있다. ⓒ연합뉴스

‘유시민의 패배’로 선거가 끝나자마자 ‘야권 통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김해 을에서 야권 연대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에 ‘연대’를 ‘통합’ 수준으로 한 단계 더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4월28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민주당과 참여당은 뿌리가 같기 때문에 참여당과 유시민 대표가 결단을 통해 통합의 길을 택한다면 참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각에서는 총선과 대선을 분리해서 전망하기도 한다. 총선이 치러지는 전국 2백45개 지역구 전체에서 야권 단일 후보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이재정 전 참여당 대표는 지난 3월30일 기자와 만나 “내년 총선과 대선에 야권에서 단일 후보가 나오면 최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총선에서는 힘들 것이다. 전국 각 지역구마다 특성이 있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 그것을 중앙당에서 어떻게 조정하고 정리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대선에서는 결국 단일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군가 고집을 부리면서 끝까지 출마한다고 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 역시 “유시민 대표가 향후 선거에서는 이번 재·보선과는 다른 행보를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야권 통합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 정당은 통합보다는 정책 연대를 통한 ‘연합’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야권 단일 정당론’과 ‘선(先) 진보 대통합, 후(後) 민주 대연합론’ 등 다양한 연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야권 연대에 대한 당위성은 강하지만,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백가쟁명’이다. 

야 4당의 상징색은 각각 빨강(진보신당)·주황(민주노동당)·노랑(참여당)·초록(민주당)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빨·주·노·초’가 합쳐져 무지개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야권의 정치력과 포용력, 인내력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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