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 출구 찾기 바쁜 한나라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1.05.0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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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권력 재편 3대 시나리오 분석 / 급부상한 ‘40대 대표론’ 현실화할지 주목

 

▲ 분당 을에서 낙선한 강재섭 후보가 개표 결과 발표 이후 지지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필요하다면 당명까지도 바꿔야 한다.” 여권의 권력 개편에 시동이 걸렸다. 4·27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하자 여권 전체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드는 분위기이다. 당·정·청 어느 한 곳 바람 잔 데가 없다. 특히 텃밭으로 여겼던 분당과 강원에서의 패배는 충격적이다. 내년 총선에서 일부 영남 지역을 제외하면 어느 한 곳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와 함께 쇄신에 대한 요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권 주류인 ‘친이계’의 한 의원은 “지금의 한나라당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전면적인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지도부를 바꾸는 수순을 밟고 있다. 선거 다음 날인 4월28일 안상수 대표를 비롯한 현 지도부는 총사퇴를 결의했다. 이후 진행 상황은 예측이 가능하다.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해 새 지도부를 구성하면 된다. 하지만 그 과정이 간단치만은 않다. 당내 계파 간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상황에서 일사불란한 위기 관리 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 4월28일 국회 한나라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안상수 대표가 4·27 재·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고위원 전원이 사퇴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김무성-홍준표 당권 대결 가능성은?

‘지도부 총사퇴→비상대책위원회 결성→조기 전당대회 개최’는 지난해 6·2 지방선거 패배 이후 내놓은 수습책과 다르지 않다. 그러한 절차를 거쳐 탄생한 현 지도부가 이번에는 같은 수순을 밟고 물러나는 셈이다. 차기 지도부는 내년 총선을 치러야 하는 것은 물론 대선까지 관리해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런 만큼 ‘친이’ 대 ‘친박’은 물론 친이계 내에서도 ‘친이상득(MB 직계)’ 대 ‘친이재오’ 간 치열한 싸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몇 가지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우선 그동안 자천타천 당권 도전에 나설 것으로 알려진 김무성 원내대표와 홍준표 최고위원의 대결이다. 여권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위상이 높기는 하지만, 대표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계파의 지원이 절실하다. 결국 당내 거대 계파 간 대리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한때 친박계 좌장이었던 김무성 원내대표의 경우 이재오 특임장관측에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원내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살얼음판을 걸었다. 김해 을에 출마한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의 당선 여부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에 유학 중이던 김 전 지사가 출마를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김 전 지사가 낙마했다면 거센 책임론에 휘말릴 수 있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김 전 지사를 무사히 중앙 정치 무대에 입성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이는 김 전 지사를 여권의 ‘잠룡’ 중 한 명으로 여기는 친이재오계의 이해관계와도 맞닿아 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친박계’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이재오 장관측과는 관계가 껄끄럽다. 여기에다 친박계에서는 당권 도전에 나설 만한 인물이 아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라 무계파로 활동해 온 자신에게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최근 공개석상에서 “지금은 박근혜 시대이다”라고 강조한 그는, 대권 도전 여부를 묻는 질문에 “나는 박근혜 전 대표의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아니다”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당권 도전에서 친박계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이른바 ‘젊은 대표론’이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선거 참패의 후폭풍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재창당을 하는 수준의 근본적인 쇄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젊은 대표론’이 힘을 얻는 분위기이다.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 대표 체제로 전환해서 당의 체질과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도 이번 선거의 핵심 키워드로 ‘인물’과 ‘미래’ 그리고 ‘젊음’을 꼽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영국의 보수당이 어려움을 겪을 때 30대인 데이비드 캐머런을 당수로 추대해 위기를 극복했다. 한나라당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그는 또 “외부 인사 영입이 함께 이루어져야 젊은 대표 체제가 시너지 효과를 거둬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원희룡·정두언 등 ‘젊은 대표’ 나올까

▲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 ⓒ주간사진공동취재단

현재 당 안팎에서는 ‘젊은 대표’로 원희룡 사무총장이 우선 거론되고 있다. 3선 의원인 그는 최고위원을 지냈고, 쇄신위원장도 역임하는 등 당내에서 역할을 꾸준히 맡아왔다. 하지만 당의 살림을 도맡은 사무총장으로서 이번 선거 결과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 지도부에 입성한 후 친이계 성향을 보여와 친박계와의 관계 정립도 필요하다. 하지만 친박계의 전략가로 통하는 한 인사는 “원희룡 대표 카드도 우리로서는 나쁘지 않다”라며 환영하는 뜻을 나타냈다.

나경원 최고위원도 ‘젊은 대표’ 후보로 꼽힌다.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3위를 차지해 자력으로 지도부에 입성했다. 여성 후보로는 단연 1위였다. 이번에 자신의 지역구에서 펼쳐진 서울 중구청장 재선거에서 최창식 한나라당 후보가 승리하면서 선거 책임론에서 한 발짝 비껴났다. 하지만 친분이 두터운 강재섭 전 대표가 분당 을에서 낙마해 당내 입지를 넓히는 데는 실패했다. 박근혜 전 대표와 같은 여성이라는 점도 친박계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이들 외에도 친이계 내 소장파의 리더격인 정두언 최고위원과 4선 의원인 남경필 국회 외교통일통상위원장 등이 ‘젊은 대표’ 후보로 이름이 오르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에서 ‘젊은 대표’가 탄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적지 않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내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을 염두에 둔다면 다가올 전당대회는 철저한 계파 투쟁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젊은 대표론’에 대한 계파 간의 합의가 없으면 엄청난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젊은 대표론’이 대세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계파의 이해관계를 떠난 큰 틀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황인상 P&C 네트워크 대표는 “젊은 층의 민심 이반을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기는 하지만, 한나라당이 순발력 있게 내부적인 합의를 가져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앞서서 대표직에 도전하려는 중진들도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이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계파 수장·대권 주자들의 움직임은?

▲ 김태호 국회의원 당선자 ⓒ연합뉴스

마지막 시나리오는 계파의 수장이나 대권 주자가 직접 당권 도전에 나서 전면전을 펼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권과 대권을 분리해놓은 당헌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몽준 전 대표가 포문을 열었다. 정 전 대표는 지난 4월28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당헌상 대선에 출마하려는 사람은 대선 1년6개월 전에 모든 선출직 당직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불합리하다”라며 당헌 개정을 요구했다.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지만 만약 정 전 대표의 요구대로 당헌이 개정된다면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는 내년에 치러질 대선 후보 경선의 전초전 성격을 갖게 된다.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로 꼽히는 박근혜 전 대표와 정권 2인자로 불리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직접 움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이번에 국회에 입성한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가 ‘40대 기수’를 내걸고 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친이상득계에서는 최근 사의를 표명한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당권 대결에 뛰어들 수도 있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계파의 사활을 건 대혈전이 펼쳐지게 되는 셈이다.

한나라당 내 전반에 위기감이 팽배해 있지만, 이번 선거 결과에 따른 이해득실에서는 계파 간 온도 차가 느껴진다. 친이계 내에서도 친이재오계가 친이상득계보다 부담이 작다는 지적이 나온다. 쇄신 대상이 친이상득계로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친박계의 경우 선거 책임론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야권의 유력 주자인 손학규 대표의 주가가 치솟아 부담이 커졌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이번 선거의 후폭풍을 어떻게 대처해나가느냐에 따라 정계 개편의 움직임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본다. 한 정치권 인사는 “이번 쇄신과 혁신은 친이냐 친박이냐를 떠나 범보수 세력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시도이다. 이번에도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 보수 진영 내에서 신당이 창당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MB ‘당·정·청 전면 쇄신 밑그림’, 도안 바뀔까

4·27 재·보궐 선거의 후폭풍이 당초 예상보다 더 거세지고 있다. 한나라당에 이어 청와대도 개편 준비에 돌입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수석진은 4월28일 선거 패배의 총체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개각의 폭도 당초 예상보다 커져 당·정·청이 모두 대형 쓰나미를 맞은 분위기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임실장 등과의 회동에서 “이번 선거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무겁고, 무섭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여당이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대통령이 민심 수습책으로 내놓을 수 있는 카드 중 하나가 바로 인적 쇄신이다.

이미 예정되어 있던 개각보다는 청와대의 인사 개편이 어떻게 이루어질지가 주목된다. 이대통령은 조만간 임실장에 대한 재신임 여부 등을 숙고한 후 개편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임실장의 교체가 유력하다는 분위기이다. 새롭게 구성될 참모진의 성향과 역할에 따라 여권 내부의 권력 구도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 과거처럼 질질 끌지 말고 속전속결로, 새로운 인물을 등용해 인사에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현재 청와대 요직을 대부분 이상득 의원 쪽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이 떠난 후 어느 쪽 인사들이 자리를 차지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이재오 특임장관 쪽 인사들이 입성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라고 밝혔다.

인사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한나라당 간의 정면충돌도 예상된다. 당·정·청에 걸쳐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을 이대통령의 의중과는 달리 한나라당은 독자 노선을 걸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벌써부터 한나라당 내 소장파들 사이에서는 ‘임태희 실장의 당 복귀설’에 대해 “말이 되는 소리인가”라고 격앙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자칫 이대통령의 인사 개편 그림이 정·청에만 머무를 가능성도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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