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손학규 ‘양강 시대’ 열리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05.0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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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4·27 재·보선의 최대 승자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였다. 분당 을전투의 승리로 인해 손대표의 대선 발걸음에는 한층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기관인 동서리서치에 의뢰해 4월28일 분당 을 유권자 중 투표자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후 여론조사에서도 손대표는 30~40대층에서 강한 경쟁력을 지녔음이 밝혀졌다. 이번 재·보선에서 드러난 표심을 바탕으로 그동안 독주 체제를 이어왔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손학규 대표의 대권 경쟁력 등을 짚어보았다.

  “30~40대가 완전히 돌아섰다. 이것은 재앙이다. 그들을 되돌리지 못하면 한나라당의 미래는 없다.”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지난 4월27일 오후 7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각. 한나라당 개혁 소장파로 분류되는 수도권 한 국회의원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아직 투표가 채 완료되지 않은 시점인데도 그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 을에서의 패배를 예감하고 있었다. 얼마 뒤 분당 을에서 한나라당의 패배를 전망하는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보도되자 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번 재·보선의 최대 수혜자가 손학규 민주당 대표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손대표가 대권 후보 지지율 한 자릿수를 탈피해서 20% 선까지 육박할 것이다. 당분간은 박근혜-손학규 양자 구도로 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했다. 이번 재·보선에서는 수도권의 중산층, 특히 30~40대의 표심에서 손대표의 경쟁력이 높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동서리서치’에 의뢰해 4월28일 실시한, ‘분당 을 유권자 중 4·27 재·보선 투표자’만을 대상으로 한 사후 여론조사에서 손대표는 30대(75.5%)와 40대(74.3%)에서 70%대를 훨씬 넘기는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실제 선거 개표 결과와는 차이가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전체 유권자 가운데 30~4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43.4%에 이른다. 특히 이들은 특정 이슈에 대해 한 방향으로 반응하는 성향이 많아 당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라고 분석했다.

손대표측 “세대교체와 야권 통합에 주력”

당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진영에는 비상이 걸렸다. 친박근혜계의 전략가로 통하는 한 관계자는 “솔직히 이번 선거 전에 주변에서는 ‘현 정권이 정신 차리도록 분당 을에서 차라리 패하는 것이 낫다’라는 얘기도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역대 선거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30~40대의 표심을 잃고서는 대선에서 이기기 어렵다. 대선에서마저 투표율이 낮기만을 바랄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우려했다. 그는 “지지층에서 확장성이 거의 없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보다는 손대표가 우리에게는 버거운 상대임에 틀림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박 전 대표와 손대표의 양자 구도보다는 다자 구도가 더 낫다”라며 손대표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번 4·27 재·보선 전까지만 해도 2012년 12월에 치러질 18대 대선은 다자 구도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박근혜 전 대표의 독주 체제였다. 오죽했으면 ‘근혜 공주와 일곱 난장이’라는 표현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많은 정치 전문가는 이번 재·보선을 통해 박 전 대표 독주 체제가 박근혜-유시민-손학규의 ‘3자 구도’로 옮겨질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그런데 한 가지 돌발 변수가 생겼다. 당초 여론조사에서 앞서나가던 국민참여당의 이봉수 후보가 김해 을에서 낙선하면서 유시민 대표가 치명적 내상을 입고 쓰러진 것이다.   



 손학규 대표측은 “이제 야권의 대권 주자는 손학규 외에 대안이 없다는 점을 입증했다. 확고한 양자 구도로 올라섰다”라고 자평한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당내 비주류인 ‘민주희망쇄신연대’에 가까운 성향의 한 전략가는 “장기적 또는 전략적 관점으로 볼 때 박 전 대표에 1 대 1로 맞서는 양자 구도보다는 1 대 2로 맞서는 3자 구도가 더 낫다”라고 전망했다. 신율 교수 또한 “이번 선거로 유대표는 상당히 큰 상처를 입었으나, 여전히 야권에서는 김두관 경남도지사 등 제3의 후보가 등장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라고 밝혔다.

손대표의 핵심 측근으로 통하는 한 전략가는 “양자 구도보다는 3자 구도가 전략적으로 낫다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2위와 3위 후보 간의 지지율이 팽팽해야 단일화 효과가 극명하게 나타난다는 지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문제는 선두인 박근혜 전 대표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 표가 어느 정도이냐 하는가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손대표의 향후 행보와 전략에 대해서도 살짝 귀띔했다. 그는 “분명히 흐름은 탔다. 그러나 서두르지는 않겠다. 대세는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열망이 확인된 만큼 향후 방점은 변화에 맞춰질 것이다. 당도 변해야 하고, 야권 전체도 변해야 한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여야를 떠나서 ‘세대교체론’이 강하게 일 것이다. 여당이 먼저 선점하려 나설 것이다. 우리도 여기에 뒤처지면 안 된다. 어차피 손대표는 이번 대권 도전이 마지막이라고 보았을 때, 그 이후를 이어나갈 차세대 리더가 필요하다. 또한 야권 전체도 단순한 연대가 아닌 통합의 개념으로 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손대표가 대권에 전념하기 위해 올 하반기쯤 대표직을 사퇴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 후계자로 이인영 최고위원을 지원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박 전 대표측은 여권 신당 창당설에 우려

▲ 4·27 재·보선에서 승리한 후 손학규 후보와 민주당 의원들이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지금은 오히려 야권보다 여권이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야권이 손대표 중심으로 한결 간결해진 반면, 여권은 박근혜 전 대표를 흔들 카드가 여기저기서 거론되는 모습이다. 친박계의 한 초선 의원 역시 “이제 박 전 대표가 2위 그룹과 20% 포인트 이상의 격차를 벌리며 선두를 독주하는 시대는 끝났다. 지금이야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2위가 10% 포인트 이내 격차로 치고 올라오면 당장 저쪽(친이계)에서는 ‘박근혜로는 안 된다’라고 흔들고 나설 것이다”라고 밝혔다.

친박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의 ‘입성’이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강재섭 전 대표가 붙고, 김태호 전 지사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솔직히 우리로서는 악재이다”라고 밝힌 친박계 한 관계자의 솔직한 토로처럼, 김 전 지사를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된다며 경계하는 시선이 강하다. “그를 만나면 팬이 된다”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올 정도로 김 전 지사는 친화력이 대단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초 출마를 주저하던 김 전 지사를 출마하도록 강하게 압박한 막후에는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김원내대표 뒤에는 또 이재오 특임장관이 있다는 얘기가 갈수록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김 전 지사의 ‘나 홀로 선거’ 전략 역시 이장관이 노하우를 전수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실제 특임장관실 직원이 김해 현지 선거에 관여했다는 시비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불거지기도 했다. 여전히 여권 주류에서는 ‘김태호 카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2002년 대선 때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캠프에서 비서관을 지낸 홍기표씨는 지난 4월15일, 2012년 대선을 전망한 <보수 집권 플랜B>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는 여기서 ‘오는 4월 재·보선을 통해 박근혜에서 민주당 쪽으로 권력 이동의 추가 움직이는 기운이 감지될 것이다’ ‘박근혜-손학규의 1 대 1 구도를 통해 ‘손학규 필승론’이 제기되면 김문수가 대안으로 급부상할 것이다’라는 예측을 내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 인터넷 논객으로 활약하고 있는 홍씨는 “여러 여야 후보가 등장하지만 결국 박근혜-손학규 양자 구도로 갈 수밖에 없고, 거기서 손학규에 추월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면 여권은 결국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불러내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김지사가 유일한 변수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친박계의 전략가로 통하는 한 관계자는 “김태호 전 지사의 당선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현재 상황에서 지지율이 한때 40%까지 올라갔던 유력한 대권 주자를 물리적으로 거꾸러뜨릴 수는 없다”라고 애써 낙관론을 폈다. 그는 “하지만 이재오 장관은 반드시 판을 한번 크게 흔들고 나설 것이다. 김문수이든 김태호이든 밀고 나올 것이다. 이도저도 안 되면 마지막 카드를 내밀 것이다. 수도권 대연정을 명분으로 한 신당 창당설이 그것이다. 당을 깨겠다는 것인데, 벌써부터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서 ‘필요하면 당명도 버려야 한다’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이다”라고 밝혔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 또한 “이번 재·보선의 가장 큰 의미는 ‘고정 지지층의 분열’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고정 지지층 표심의 급격한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다. 그리고 이런 고정 지지층의 이탈은 새로운 정당을 지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색으로 연결될 것이 분명하다. 여권 일각에서 분당과 신당 창당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나오는 목소리는 이런 한나라당 고정 지지층의 변화를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라고 밝혔다.

하나의 변곡점을 넘어 대선 구도는 이제 새로운 질서로 재편될 전망이다. ‘흔들리는 박근혜’ ‘날개 단 손학규’로 정리되는 이번 결과를 통해 여야는 이미 본격적인 대권 힘겨루기에 들어섰다.

 

 ‘3자 구도’ 많았던 역대 대선, 어떻게 흘렀나

선거에서 ‘양자 구도’는 ‘제로섬 게임’이다. 내가 못 이기면 상대방이 이긴다. 그뿐이다. 반면 ‘3자 구도’로 가면 다양한 시나리오가 생성된다. 갑과 을이 손을 잡을 수도 있고, 을과 병이 연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양자 구도보다는 3자 구도가 훨씬 더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이다. 이번 4·27 재·보선을 통해 여야 전략가들 사이에서는 양자 구도가 유리할지, 혹은 3자 구도가 장기적으로 유리할지를 놓고 주판알 튕기기가 한창이다.

역대 대선 구도를 보면, 대개 양자 구도보다는 3자 구도 체제가 많았다. 그래서 훨씬 흥미를 더했다. 13대 대선(1987년)은 여당의 노태우, 야당의 김영삼(YS)·김대중(DJ)의 3강 체제였다. 양 김씨는 야권 후보 단일화 요구를 끝내 외면하고 독자 출마했다. 그 결과는 36.6%라는 역대 최저 득표율로 노후보가 당선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당시의 여론조사 시스템이 만약 지금처럼만 과학적이었다면, YS와 DJ는 후보 단일화를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역사는 바뀔 수 있었다”라고 전망했다.

14대 대선(1992년) 역시 YS와 DJ 그리고 정주영 후보 3자 구도였다. 선두는 YS였다. 순리대로라면 DJ와 정후보가 손을 잡아야 그나마 뒤집기 가능성이 있었으나, 진보 성향의 DJ와 보수 성향의 정후보가 손을 잡기에는 이념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 면에서 15대 대선(1997년)은 상당히 이례적인 결과를 낳았다. 당시 여당의 이회창 후보에 맞선 야권의 후보는 DJ와 JP(김종필)였다. 이들 역시 이념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끝내 DJP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단일 후보가 된 DJ는 단숨에 이후보를 추월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1980~90년대 당시만 해도 3김씨가 갖고 있던 지역적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날은 거의 힘든 결합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3자 구도의 가변성과 역동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대선은 지난 16대 대선(2002년)이었다. 당시는 선두 이회창과 2위 그룹 정몽준·노무현의 견고한 틀이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필패’라는 위기감에 정후보와 노후보는 단일화에 합의했고, 결국 이것이 막판 대역전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진보 성향의 노후보와 중도 성향의 정후보가 보수 성향의 이후보를 코너로 몬 전략이 주효했던 셈이다.

지난 17대 대선(2007년) 역시 일찍부터 이명박-박근혜-고건의 3자 구도가 정착되었으나, 문제는 이때 1, 2위는 모두 야당인 한나라당 후보들이었다는 점이다. 역부족을 느낀 범여권의 고후보는 중도 하차했고, 한나라당 경선에서 사실상 승부는 판가름 났다. 이후 17대 대선은 역대 유례가 없는 이명박 독주 체제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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