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극장가 달굴 국산 블록버스터들의 ‘전쟁’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1.05.1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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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 <7공구> <고지전> 등 1주일 간격으로 개봉…할리우드의 공세도 맞물려

 

대란이 따로 없다. 둘 만으로도 비좁아 보이는데 셋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공생이라는 단어는 생각할 겨를도 없다.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표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충무로의 대형 작품 3편이 출사표를 던진 올여름 극장가. 관객들은 골라보는 재미를 한껏 느끼겠지만, 출혈 경쟁이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다. 블록버스터 시즌이 개막한 5월, 벌써부터 여름 시장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이다.

▲ 위는 , 아래는 .

7~8월 여름 시장을 겨냥한 주요 한국 영화는 <7광구>(감독 김지훈)와 <퀵>(감독 조범구), <고지전>(감독 장훈)이다. 이들 영화는 제작비 100억원대의 한국형 블록버스터이다. <퀵>은 7월21일, <고지전>은 7월28일, <7광구>는 8월4일, 각각 1주일 간격으로 개봉할 예정이다.

여름은 1년 중 가장 큰 시장이 서는 극장가의 대목이다. 2006년과 2009년에는 관객 1천만을 동원한 영화 <괴물>과 <해운대>를 각각 배출했다. 2007년에는 <화려한 휴가>와 <디워>가 쌍끌이 흥행에 성공했고, 지난해에는 <아저씨>가 여름에 개봉해 2010년 최고 흥행 영화 자리에 올랐다. 2009년 <국가대표>는
<해운대>의 1천만명 흥행 속에서도 8백5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여름에 몰리는 이유이다.

‘출혈 경쟁’ 불가피… ‘생존 게임’ 카운트다운 시작

충무로 간판 영화사들이 아무리 탐을 내는 시장이라지만 100억원대 영화 세 편이 잇달아 개봉하는 것은 유례가 없다. 더군다나 <퀵>과 <7광구>의 투자배급사는 CJ E&M 영화사업 부문이고, 제작사는 JK필름이다. 2주일이라는 완충 기간을 두었다고 하지만 한 지붕 두 블록버스터가 집안 싸움을 펼치게 될 형편이다. CJ E&M 영화사업 부문 관계자는 “두 작품이 서로의 시장을 뺏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함께 잘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많다. 한 영화인은 “여름 극장가 관객 수에도 한계가 분명하다. 같은 영화사 작품끼리도 어쩔 수 없이 내부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2주 정도 홀로 극장가를 호령해도 성에 안 찰 덩치 큰 영화 3편에게 1주일씩의 완충 기간은 너무나 짧다. 쌍끌이를 넘어 삼끌이(?) 흥행이 이루어져야 세 편 모두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이다.  세 편 모두 적어도 3백50만명의 관객은 모아야 본전을 챙길 수 있다. <트랜스포머3>(6월30일)와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7월14일)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를 어떻게 이겨내느냐도 이들의 숙제이다.

다크호스 <마당을 나온 암탉>(감독 오성윤)도 여름 시장의 주요 변수이다. 7월 개봉을 저울질하는 이 영화는 오랜만에 선보이는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100만부나 팔린 황선미 작가의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삼았고, 충무로의 품질 보증 마크로 통하는 명필름이 제작했다. 제작비는 40억원대로 덩치는 비교적 작지만 최민식, 문소리, 박철민, 유승호 등이 목소리 연기를 했다.

뛰어난 기술력에도 허약한 스토리텔링 때문에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던 국산 애니메이션이 명필름의 제작 능력과 만나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가 흥행의 관건이다. 적절한 완성도를 갖춘다면 가족영화라는 무기를 활용해 여름 시장을  파고들 잠재력이 충분하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선전 여부는 블록버스터 세 편의 생존 경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올여름은 죽음의 전장이 될 전망이다.

 


1980년 5월18일, 공수부대의 폭력 진압으로 시위는 더욱 격렬해지고, 20일 두 명의 사망자가 나온 이후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21일 도청 앞을 가득 메운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가 이루어지자, 시민들도 총을 들었다. 무장한 시민군에 의해 공수부대가 물러갔지만, 광주는 완전히 봉쇄되었다. 이때 ‘가진 자’들은 광주를 빠져나갔고, 도청과 거리를 지킨 이들은 노동자, 노점상, 운전수, 고등학생 등이었다. 26일 마지막 협상이 결렬되고, 27일 계엄군이 도청으로 진격해 마지막 교전을 벌일 때까지 광주는 공권력이 정지된 공간이었다. 그 열흘간 아주머니들은 얻어 온 쌀로 주먹밥을 만들어 시위대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여고생들은 자진해 도청 취사반이 되었다. 줄을 서서 헌혈을 했고, 공짜로 내놓은 종이로 유인물이 만들어졌으며, 이름 없는 여성이 ‘선무 방송’ 을 했다. 도둑과 깡패가 들끓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질서가 자율적으로 유지된 ‘무법천지’였다.

<오월애>는 5월 광주를 국가 폭력에 짓밟힌 희생자의 역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해방구의 기억으로 환기한다. 중동에서 새로운 혁명의 기운이 불어오는 오늘날, ‘광주 코뮌’의 기억을 상기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폭력·비폭력, 불법·합법의 얄팍한 경계를 넘어, 이제 근원적인 민주주의를 사고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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