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장 개척인가 기존 시장 교란인가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05.10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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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인기, 음원 시장 등 가요계에 큰 변화 몰고와

 

▲ MBC .왼쪽부터 박정현·BMK·김범수·김연우·임재범. ⓒMBC

작금의 대중문화에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만큼 뜨거운 감자는 없다. 한 달 전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부진의 늪에 허덕이던 MBC 주말 예능의 대표 주자인 <우리들의 일밤>을 회생시킬 구원자로 떠올랐다. 5%에 머무르던 시청률은 <나는 가수다>를 기점으로 10%대를 훌쩍 넘겨버렸다. 고정 시청층이 유동층보다 훨씬 많은 일요일 저녁 예능의 흐름을 두고 보면, 이런 <나는 가수다>의 급부상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가수다>는 그동안 주말 예능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리얼 버라이어티 쇼 트렌드의 독주를 막아선 대항마로 자리하기도 했다. 다른 방송사의 주말 예능 프로그램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는 눈치이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의 등장에 가장 긴장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기존 가요계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기획사일 것이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명분으로 들고 온 ‘가창력 있는 가수’라는 소구 포인트는 그 자체로 기존 기획사가 주로 선보였던 ‘보는 것’ 중심의 아이돌 가수와는 어딘지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가 주말 저녁 프라임 시간대에 방영되고, 갈수록 폭발력이 강해진다면 기존 아이돌 중심으로 흘러가던 가요계의 흐름을 뒤집을 수도 있다. 기획사로서는 헤게모니의 침입으로 여겨질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우려가 아니라 실제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즉, 시각에 집중되던 가요계의 판도가 청각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의 자격>이 선보였던 ‘하모니’에서부터 ‘세시봉’을 거쳐 ‘듣는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면, <나는 가수다>는 이것을 폭발시켰다. <나는 가수다>가 방영된 후 올라오는 대중들의 반응은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음미해본 것이 얼마 만이었던가” 혹은 “울어본 것이 얼마 만이었던가” 같은 정서적인 반응이다. 이처럼 청각이 주는 감성적인 느낌을 발견하고 있다.

▲ 이소라·윤도현. ⓒMBC 제공

실제로 이런 변화는 가요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한때 소녀시대와 카라 그리고 2PM으로 대변되는 퍼포먼스 위주의 가요계 흐름은 언젠가부터 가창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아이유처럼 가창력을 갖춘 아이돌이 음원 차트를 ‘올킬’하고, 케이윌이나 휘성, 양파같이 대표적인 가창력 가수가 음악 프로그램 차트에 올라오는 것은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이다. <뮤직뱅크>의 김호상 PD는 “아이돌 그룹 중심으로만 흐르던 가요 판도에서 최근 들어 가창력을 갖춘 솔로 가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은 확실히 과거와는 달라진 양상이다”라고 말했다.

“신인 가수의 새 노래에 줄 기회까지 뺏는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화적인 변화가 실제로 시장의 변화로까지 이어지느냐이다. 여기에서 다시 주목되는 것이 <나는 가수다>가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시장 흐름이다. 즉, <나는 가수다>가 방영되자 한동안 거기에 출연한 가수의 모든 음원이 차트를 장악해버리는 현상이 벌어졌다. 심지어 이 시기에 새 노래를 들고 온 아이돌 가수는 상위권 차트 바깥으로 밀려나는 굴욕을 당했다. <나는 가수다>가 중간 한 달간 쉬고 다시 방송을 재개한 지금까지의 시기는 아이돌 가수에게 더욱더 민감한 시기였다. 일본 진출을 앞두고 음반을 준비하던 아이돌들이 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국내 가요계로 회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상당히 많은 가수의 음반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른바 ‘재도전’ 논란으로 한 달간 <나는 가수다>가 재정비에 들어간 상황 속에서도 음원 차트에는 여전히 김범수의 <제발>,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올라가 있었다. 이들이 부른 노래는 심지어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 갖는 사이클보다 더 오래 차트에 남아 있는 경향까지 보였다. 

기존 제작사들로서는 이제 그저 한 예능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이하 연제협) 차원에서 대응 방침을 마련하겠다는 얘기까지도 나왔다. 연제협은 <나는 가수다>의 음원 공개가 온라인 음악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기성 가수의 음원이 차트를 장악하면서 신인 가수의 새 노래가 설 자리를 잃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일요일 밤 프라임 시간대에 배치되어 주목된 가수의 음원은 사실상 공중파의 힘에 의해 음원 시장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즉, 대중에게 큰 힘을 발휘하는 방송사의 개입으로 가요계가 미디어에 종속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에 대한 대중의 공감대가 워낙 깊기 때문일까. 현재 연제협측의 반응은 상당히 누그러져 있다. 미디어의 개입과 기존 아이돌이 잡고 있던 가요계 헤게모니가 그로 인해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도, 그동안 설 자리를 잃었던 실력파 가수에게 새로운 무대가 제공되었다는 긍정적인 결과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연제협측은 이 상황을 아이돌과 실력파 가수 사이의 대결 구도로 볼 것이 아니라 아이돌로 대변되는 10~20대 시장에서, 실력파 가수들이 진입할 수 있는 30~40대의 새로운 시장이 마련된 것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모두 끝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아이돌을 거느린 기획사는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음원 시장에 적응하거나, 아니면 해외 진출 등을 통한 새로운 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간 아이돌 중심의 가요 시장을 형성하면서 유지되어온 방송사와 기획사 사이의 오랜 밀월은 어쩌면 이미 이 <나는 가수다>라는 새로운 수익 모델 앞에서 시험대에 올라가 있다. 


 <나는 가수다>의 음원 수익 배분은 공정한 것일까

MBC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나는 가수다>의 음원 수익 배분은 유통사 마진을 빼고, 거기서 10%를 사회에 기부한 후 그 나머지를 가수와 50 대 50으로 나눈다고 한다. 즉, 기존 가요계가 보통 유통사 마진을 뗀 수익에서 소속사와 가수가 70 대 30으로 나누는 것과 비교해보면 가수가 상대적으로 엄청난 혜택을 받는 셈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수다>의 음원 수익 배분에 대한 이의 제기가 연예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이유는, 이 프로그램으로 이미 광고를 완판하고 있는 방송사가 음원 수익을 덤으로 얻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MBC측은 그 50% 마진율의 근거로 제작 마케팅비를 들었다. 실제로 <나는 가수다>는 무대 제작에서부터 세션, 심지어 편곡비까지 방송사가 내고 있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합리적인 배분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문제에서 더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 가수와 방송사 간 논쟁의 뒤편에서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짓고 있는 유통사이다. 그들은 무려 전체 수익의 60%를 가져간다. 즉, 아무리 몇 %로 배분한다 해도 원천적으로 나가버리는 60% 유통사 수익률 앞에서는 조족지혈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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