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검사장 등장도 멀지 않았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05.10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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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도 ‘여풍’ 쌩쌩…신임 검사 성비 2008년에 역전, 현재 전체의 22.4% 차지

 

▲ 지난 3월11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성폭력 범죄 수사 실무 오리엔테이션’에서 전국에서 온 검사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에서 금녀(禁女)의 벽이 처음 허물어진 것은 1982년이다. 조배숙 현 민주당 의원과 임숙경 변호사가 ‘여검사 1호’로 동시에 입성했다. 이들이 배치되는 곳에는 여성 화장실이 따로 마련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당시만 해도 검찰 내에서 ‘여검사’는 희귀종으로 불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각각 1986년과 1987년에 1년 차이로 판사로 전관하면서 검찰을 떠났다. 동시에 여검사의 명맥도 끊어졌다. 그리고 3년 만인 1990년 조희진 현 대전지검 천안지청장이 검사로 임관하면서 다시 여검사 시대를 열었다. 조청장은 임관 당시 유일한 여성이었다. 이때만 해도 검찰은 남성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가 2000년 들어 여검사들의 진출이 부쩍 늘어났다. 2002년에는 22명(24.45%)에 불과했으나 6년 만인 2008년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전체 검사 임용자 76명 중 41명(53.95%)이 여성이었다. 신임 검사의 성 비율이 처음으로 역전된 것도 이때였다.

그 후 해마다 신임 검사 10명 중 6명은 여성이 차지했다. 올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9백70명 가운데 3백88명(40%)이 여성이었고, 검사 1백24명 중 76명(61.3%)이 여성이었다. 여성 검사들의 전성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 검사들의 위상이 높아진 것일까. 아직은 미풍(美風)에 그치고 있다. 여검사의 비율이 전체 검사의 22.4%에 달하지만 핵심 요직으로의 진출은 적은 편이다. 단순히 숫자로만 따져 여검사의 위상을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현재 여검사 중에서 최고위직은 조희진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장이다. 여성 검사 최초의 기관장이기도 하다. 조청장은 여성으로는 최초 부장검사(2004년), 최초 차장검사(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최초 지청장(대전지검 천안지청장)에 오르며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여검사 중에서 고검장급을 배출하지는 못했다. 중간 간부인 부장검사도 10명(2.4%)에 불과하다. 특수 여검사 1호인 김진숙 법무부 정책기획단 부장검사, 여성 검사로는 처음으로 대검찰청 과장이 된 이영주 서울 서부지검 형사3부 부장검사, 박계현 대검 감찰2과장 등이 있다.

이은재 한나라당 의원은 “모든 검사가 선호하는 금융조세부장, 특수부장, 공안부장에 여성 검사들의 배치가 거의 없다. 주로 형사부장 쪽으로만 배치하고 있다. 또 평검사들이 자신의 역량을 키울 수 있어 선호하는 대검찰청과 법무부에도 기수별로 1~2명 내외로 여검사를 뽑고 있어 여검사 배출 수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여검사들에게도 선호하는 기관이나 보직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신설된 3개 전문검사에 모두 여성이 임명돼

여검사들의 맏언니인 조희진 천안지청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조청장은 “아직 여성 검사가 조직의 중심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부에서는 여성 검사 수가 늘어났지만 그렇다고 중심이 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여성 검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스스럼없이 낼 만큼의 경험과 전문성을 쌓지 못한 탓도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 기관 중 청와대가 요청할 경우 검사직을 사직하고 옮겨야 한다. 국회는 법제사법위원장이 파견 검사 한 명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대검이나 법무부 쪽에 여성 검사의 배치가 적다 보니 국회와 접촉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국회 파견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여검사들이 마냥 한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수별 승진’을 채택하고 있는 검찰의 인사 문화로 볼 때 향후 5년 안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2~3년 내에 여성 검사장이 탄생할 수도 있다. 이미 그런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월에 있었던 검찰 정기 인사에서 몇몇 여검사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국무총리실에는 최초의 ‘조폭 전담 여검사’로 유명한 정옥자 부산지검 검사가 파견되었다. 정검사는 2005년 수원지검 형사1부에서 조직폭력을 전담했다.

여성 공안검사 1호인 서인선 대검 부대변인은 대검 연구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검사는 2003년 8월 서울지검 공안2부에 배치되어 학원, 노동 등 각종 사회 관련 공안 사건을 처리했다. 그 밖에 구태연 검사가 대검 연구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김희경 검사가 법무부 보호법제과에 배치되었다. 서울 중앙지검에는 여성 검사 여섯 명이 새로 배치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신설된 공정 거래와 지식재산권, 의약 등 세 개 분야 전문검사에 모두 여성이 선발된 것이다. 법무부는 내부 공모를 통해 전문검사를 선발했다. ‘전문검사 3인방’으로 공정 거래 분야에 홍승현 검사, 지적재산권 분야에 정지은 검사, 의약 전문 분야에 허수진 검사가 발탁되었다.

홍승현 검사는 대형 로펌의 공정거래팀에서 근무하다 2006년 9월에 검사로 임관했다. 정지은 검사는 일선 지청에서 지식재산권 사건 수사를 3년간 맡은 경험이 있다. 이 분야의 관련 사범 1백63명을 인지 수사를 통해 적발하기도 했다. 허수진 검사는 약사·한약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대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05년 2월 검사로 임관했다.

검찰 내에서 여검사들의 소통도 활발하다. 해마다 봄에 선배 여검사들의 주도로 신임 여검사들에 대한 환영회를 갖는다. 이때 자연스럽게 상견례가 이루어진다. 또 매년 후반기에는 법무부 주도하에 여검사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워크숍이 열린다. 이때 부장급 여검사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대검찰청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분야의 커뮤니티가 개설되어 있어 이곳에서도 소통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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