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먹어도 배 부르고 마약 안 해도 핑 도는 이유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5.1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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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면 식욕 억제제 구실하는 페닐에틸아민 대량 분비
ⓒ일러스트 임성구

사랑은 아찔한 현기증을 동반하는 어떤 영혼의 울림이라고나 할까? 어떤 형태로든 보통의 일상생활을 흔들어대면서 사랑은 대개 그렇게 온다. 손에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고 보일 듯하면서 보이지 않는 존재,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서로 눈길만 마주쳐도 웃음이 배시시 삐져나오는가 하면 가슴에는 늘 나비 한 마리를 잡아넣은 듯 산들바람이 분다.

세상의 많은 철학자와 문학가는 사랑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많은 정의를 내린다. 사랑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어떤 철학자는 “여신 아프로디테와 거짓의 신인 헤르메스가 결합해 탄생한 헤르마프로디토스라는 양성. 이 완전한 존재를 제우스가 갈라놓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잃어버린 반쪽을 찾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랑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시인’이라는 말이 있다. 대뇌의 변연계가 활성화되면서 감성이 풍부해져 은유와 상징 그리고 시적인 사고가 자극된 결과이다. 사랑은 과학적으로 보면 두뇌의 단순한 화학 작용에 불과하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나타나면 몸속에서 여러 호르몬이 복합적으로 분비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뇌는 우리가 조종할 수 없는 호르몬 분비로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또 사랑에 빠지게 한다. 흔히 사랑을 부르는 호르몬, 사랑에 빠지는 호르몬 같은 생화학 반응에 의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도파민과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 엔도르핀이 적당히 분비되면서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리운 감정으로 서로를 소중히 여기게 된다.

그런데 지금 막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밥을 먹으러 가도 정작 관심은 서로에게만 꽂혀 있어 음식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기 일쑤이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 한밤 내내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사랑의 백야’를 보내기도 한다. 가슴 절절이 솟아나는 사랑의 포만감이 물결 쳐 흐르는데 밥을 굶은들 어떻고 밤을 꼬박 샌들 어떠랴. 설령 배고픔이 느껴진다면 밥보다는 아마도 배고픈 아기처럼 열심히 상대의 입술을 찾아 사랑의 포만감을 만끽하려고 할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페닐에틸아민이 대량으로 분비되기 때문이다. 페닐에틸아민은 식욕을 억제해주는 효과도 있어, 평소 밥을 솥째 들고 먹는 여성이라도 연인 앞에서는 새 모이 먹는 것과 같은 모습을 연출하게 만들기도 한다. 배고픔을 느끼게 되는 것은 위 속에 음식이 없어지면서 혈액 속의 당분이 부족하게 되고 그것을 뇌가 인지하기 때문이다. ‘위에 음식이 바닥났잖아!’ 이런 식으로 말이다.

뇌는 공복감을 하달해 신체로 하여금 무언가를 먹도록 만든다. 인간이 손과 발을 움직일 때 뇌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복감을 느끼는 것 또한 뇌로부터의 지령에 따른다. 따라서 사랑을 하면 식욕이 떨어진다는 것은 뇌의 지령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밥을 먹지 않고 사랑과 공기만으로도 살 수 있는 이유이다.

중추신경 자극해 천연 각성제 구실도

페닐에틸아민은 연애 초기 단계에서 뇌 속에 다량으로 방출된다. 이 뇌 속 물질의 특징 중 하나가 식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페닐에틸아민 이외의 물질로 인해 흥분 상태 또는 긴장 상태가 지속되어 ‘위가 음식을 필요로 한다’라는 뇌의 사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따라서 젊은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활기가 넘치고 몰라보게 날씬해진다면 새로운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남녀가 처음 만났을 때 뇌가 반응하는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인 0.2초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호감을 느꼈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는 50초가 걸린다. 이때에는 도파민과 옥시토신, 아드레날린, 바소프레신 등과 같은 호르몬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두 사람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만나기 시작한 초반, 뇌에서는 페닐에틸아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농도가 증가한다. 이때는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지는 시간이다.

변연계에서 페닐에틸아민이 분비되면 감정은 급격히 상승 곡선을 그린다. 이 ‘사랑의 아민’은 스피드나 엑스터시 같은 마약의 주성분인 암페타민 계열의 호르몬으로 중추신경을 자극해 천연 각성제 구실을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마치 강한 마약을 복용했을 때처럼 환각 상태에 빠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야말로 합법적인 마약 효과이다. 만일 마약을 취하지 않고도 환각 상태를 누리고 싶다면, 또 공복감을 느끼지 않고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면 열렬히 사랑에 빠져보라.

페닐에틸아민 분비 감소하면 사랑의 온갖 감정도 한순간에 사라져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호르몬 분비가 수그러들면 그동안 숨겨져 있던 노여움이 폭발하고 불같은 질투가 노골화되는 순간이 다가온다. 페닐에틸아민이 더 이상 뇌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시기는 만난 지 3~4년이 지났을 때부터다. 그때부터 뇌는 상대방의 단점을 발견하고 더 이상 이 사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사랑을 할 때 분비되는 물질은 마약과 같아 시간이 지나면 같은 양이 분비된다 하더라도 점점 반응이 둔감해진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보통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육체적 매력이나 소유욕, 탐닉, 통제, 질투, 에로티시즘, 신선함 등 매우 격렬한 정서들이 결합되는 것으로 상식화되어 있다. 그래서 결국 그렇게 뜨겁게 달구어지며 죽고 못 살 것 같은 사랑이 우당탕탕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질투의 화신으로 변해 한순간에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땐 정말 불처럼 뜨거웠는데…’라는 느낌이 오기 시작한다면 오늘의 주역인 페닐에틸아민 마약 물질이 감소해버렸다고 이해하면 된다. 난데없는 변화에 당황스러움과 황당함이 역시 일상의 균형을 모조리 짓이겨놓기도 한다. 사랑의 여파가 오랜 여진을 남기기도 한다. 이런 여러 행동 패턴이 모두 ‘호르몬의 마술’이다. 
 

 바람 맞은 남자와 차인 여자는 왜 허기질까
 
노처녀의 애환을 다룬 영화 <브릿지 존스의 일기>를 보면 남자친구와 헤어진 여자, 미모의 연인에게 바람 맞은 뚱보 남자가 집에 돌아와 음식, 과자를 와작와작 씹어 먹으면서 쌓인 울분을 풀어댄다. 우리나라 여성들 또한 상처받고 실연당했을 때 유독 비빔밥을 마구 비벼 먹는다. 배부르면 소화제를 먹고라도 또 먹는다. 이것은 정서적 허기이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욕구 불만이 쌓여 있을 때 이를 단번에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쾌락적인 수단을 찾게 된다. 이때 가장 직접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먹을거리이다. 이러한 식욕은 세로토닌 호르몬 때문이다.

세로토닌은 식욕 중추에 영향을 주는 물질이다. 보통 기분이 좋을 때 식사를 하고 나면 세로토닌 분비량이 많아져 포만감을 느끼게 해 식욕을 억제시켜준다. 그런데 실연을 당해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세로토닌의 분비량이 적어지면서 식욕 조절이 잘 안 돼 무언가 마구 먹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지면서 대신 먹을 것에 손을 대는 원초적 반응을 보인다는 이 생물학적 연구 결과가 너무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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