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가린 ‘소심파’, 3D 입은 ‘입체파’에 더 노골적으로 파고드는 ‘대담파’까지
  • 최광희│영화저널리스트 ()
  • 승인 2011.05.15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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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보단 3D> 극장 개봉을 계기로 짚어본 성인영화의 흐름 / 2000년대 들어 침체일로…틈새시장 공략하는 움직임도

 

ⓒ유이케이 제공

지난 5월9일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홍콩 코믹 에로영화 <옥보단 3D>의 언론 시사회에서는 이채로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같은 극장에서 직전에 열린 견자단 주연의 무협영화 <삼국지-명장 관우>의 시사회 때보다 더 많은 기자가 몰린 것이다. 시사회장에 모인 기자들은 서슴없이 “기대작이다”라는 말로 관심을 드러냈다.

이 영화에 언론의 관심이 쏠렸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였다. 우선, <옥보단 3D>가 홍콩 개봉 당시 <아바타>의 오프닝 성적을 뒤집으며 흥행 몰이를 이어갔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과연 에로영화에 3D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접목되었는가 하는 궁금증이다.

그러나 시사회 이후의 언론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성애 장면은 에로영화의 특성이니 그렇다 해도, 에로에 얹은 코미디가 썩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객석에서 산발적인 웃음이 터져나오기는 했지만, 기자들은 포복절도할 웃음을 선사하는 대목이 없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무엇보다 3D 기술이 만들어낸 입체감이 썩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한 기자는 “이 영화는 요즘 유행하는 3D라는 것을 핑계 삼아서 예전의 히트작을 재탕해보자는 얄팍한 속셈이 엿보인다”라고 혹평했다.

그럼에도 <옥보단 3D>의 극장 흥행 추이에 영화계 안팎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 이른바 ‘에로’ 딱지를 붙인 영화가 근래 극장가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춘 상황에서 <옥보단 3D>가 불러일으킬 반향이 향후 성인영화 시장에 어떤 식으로든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애 코드를 담아낸 성인영화 시장은, 1980년대에 크게 창궐했다. 1980년대에는 특히 에로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 한국 영화가 양산되었다. 정인엽 감독의 <애마부인>(1982)을 비롯해 이장호 감독의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이두용 감독의 <뽕>(1985), 엄종선 감독의 <변강쇠>(1986) 등 중견 감독들이 참여해 현대물과 토속적 에로티시즘을 오가는 작품들이 잇따랐다.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까지 이어져 김유민 감독의 <노랑머리>(1999)가 파격적인 성애 묘사로 제한 상영가 등급을 받는 등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1980~90년대는 비디오 렌탈 시장을 노리는, 이른바 B급 에로영화가 양산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오면서 사정이 급변했다. 여균동 감독의 야심찬 에로영화 <미녀>(2000)가 대중적 반응을 얻는 데 실패한 뒤 ‘에로’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는 참패를 거듭했다. 에로영화 시장에서의 유명세를 발판으로 주류 영화계로 넘어와 주목을 받은 봉만대 감독의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2003) 역시 고배를 마셨다. 이런 상황에서 비디오 시장의 침체는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던 성인영화의 마지막 보루마저 삼켜버렸다. 


매체 환경 변화 따라 수위 높은 성인영화도 기지개 펴

영화 관계자들은 “인터넷에서 손쉽게 더 파격적인 포르노 영상을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성인영화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라고 진단한다. 그럼에도 에로티시즘에 대한 관객들의 보편적인 욕구는 잠복되어 있되 여전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에로티시즘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되, 다른 방식으로 담아내는 흥행 전략이 보편화된 것은 그래서다. 한국 영화로는 <쌍화점>(2008)이나 <미인도>(2008), <방자전>(2010)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들 영화는 시대극의 틀을 빌어 비운의 남녀 주인공을 내세움으로써, 다소 수위가 높은 성애 장면에 대한 관객의 심리적 거부감을 상쇄시키는 전략을 구사했고, 흥행 면에서도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변화된 매체 환경에 맞추어 성인영화를 위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참을 수 없는 금단의 정사> <쥬리의 스와핑 다이어리> <G컵 수사관 란> 등 일본의 핑크 무비나 로망 포르노를 잇달아 수입하는 ‘조이앤키노’가 대표적이다. 조이앤키노 관계자는 “IPTV와 온라인, 모바일 쪽에서는 여전히 의미 있는 수입을 보장할 만큼의 성인영화 수요가 있다”라고 귀띔했다.

극장에서는 시대극, 코미디, 3D를 앞세워 성애 장면의 노골성을 슬쩍 가리는 한편, 인터넷과 개인 단말기로는 더욱 농도 짙고 노골적인 성애 영화가 공개되는 상황이다. 에로티시즘의 물길은 지금 두 갈래로 흐르고 있다. 

ⓒ NEW 제공

<무간도>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맥조휘와 장문강이 함께 쓰고 연출한 <삼국지: 명장 관우>는 하비성 전투 이후의 관우(견자단)와 조조(강문)를 그린 영화이다. 관우의 장례식으로 시작한 영화는 20년 전으로 돌아가 조조의 휘하에 있던 관우가 ‘오관참육장’을 통해 유비에게 돌아가는 여정을 담아낸다. 그 과정에 섞여 들어간 로맨스와 음모, 배신은 일견 그럴싸하지만 새로운 만큼 낯선 이질감을 선사한다. 

기존의 관우 이미지와는 큰 차이가 있지만 현존 최고의 액션 배우라 불리는 견자단이 출연하는 만큼 액션 장면은 볼거리로 가득하다. 공성전, 마상 대결, 창검술 등 다양한 액션 장면이 인상적이며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견자단의 몸 연기는 장쾌하기 그지없다. 좁은 골목을 십분 활용한 동령관의 격돌은 그중에서도 일품이다. 두 개의 긴 창이 부딪으며 내는 소리만큼이나 격렬하고 박진감 넘친다. 닫힌 문을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 사수관 장면이나 안량과의 마상 전투 장면 또한 흥미롭다.

두 감독은 전작에서처럼 적도 아군도 될 수 없었던 두 남자의 이야기를 삼국지의 세계를 배경으로 펼친다. 지략가로 알려진 조조에게 덕장의 풍모를 더하고, 충의에 빛나던 무신 관우에게 인간미와 함께 로맨스를 부여해 이야기에 새로운 살을 붙였다. 로맨티스트 관우, 심지어 그 애정의 대상이 유비의 첩이니 원작의 팬이라면 기절초풍할 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을 넘어서는 문제는 영화 속의 명장이 관우가 아니라 조조라는 점이다. 인간적인 매력을 부각시키다 보니 뜻을 품은 무장 관우의 모습은 퇴색되었다. 아무리 화려한 액션을 펼쳐 보인다 해도 이상만 되뇔 뿐 현실 감각은 부족한 관우에 비해, 목적을 위해서라면 희생을 마다않는 냉철함에 적수조차 인정하고 포용하는 관대함까지 모두 갖춘 조조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인물로 보인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모두 조조의 말로 채워져 있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관우를 일컬어 ‘양의 마음을 지닌 늑대’라 칭하더니 ‘나는 양이라 한 적 없다’라는 조조의 자기 표명으로 마무리되는 결말. 강문의 연기마저 압도적이다. 이래서는 제목에 ‘명장 관우’를 붙이기 미안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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