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잃은 알카에다, 어디로 가나
  • 장병옥│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소장 ()
  • 승인 2011.05.1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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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 사후 AQAP 결성 등 조직 개편 움직임…급속한 세력 약화 가능성은 작아
▲ 2001년 11월8일 사진에 찍힌 오사마 빈 라덴(왼쪽)과 알카에다의 2인자로 알려진 알 자와히리(오른쪽). ⓒ시사저널

테러 없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갈 길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빈 라덴이 죽은 뒤, 조직 내 빈 라덴의 역할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일간지 알 와탄지는 빈 라덴은 이미 조직 내 2인자인 알 자와히리에게 실권을 빼앗겼으며, 그의 배신으로 인해 희생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집트 외과의사 출신인 알 자와히리는 알카에다의 최고 ‘브레인’이자 사상가로 통한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2008년 9·10월호에서 알 자와히리를 ‘1인자보다 영향력이 더 큰 2인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알 자와히리가 지배하는 알카에다 ‘이집트 분파’는 2004년부터 알카에다를 장악하고 지금은 배후에서 조용히 조직 전체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난 10년간 발생한 테러 중에서 빈 라덴이 직접적으로 지휘를 한 경우는 없었으며, 모두 알카에다라는 이념의 우산 아래 각국에 퍼져 있는 지부들의 자생적인 공격이 있었을 뿐이다. 이것은 알카에다 세력의 직접적인 약화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그들의 이념이나 세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이를 부인하며, 아보타바드에서 찾아낸 하드디스크에서 빈 라덴의 테러 계획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하드디스크에서 찾아낸 자료만으로는 그가 실질적인 지도자임을 증명하기 힘들다. 이미 그는 상징적인 지도자로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과격파 단체들의 위협 커질 듯 

▲ 지난 5월5일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행동대원들이 빈 라덴의 죽음을 추모하며 항전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EPA 연합

알카에다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중요한 것은 빈 라덴의 공백이 아니다. 대니얼 바이먼 미국 조지타운 대학 교수는 “빈 라덴의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하나는 그가 죽은 후에도 살아남을 분권화된 조직을 만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알카에다는 하룻밤 사이에 궤멸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빈 라덴을 중심으로 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내의 알카에다 핵심 그룹은 2백여 명 규모의 소그룹으로 위축된 반면 예멘과 소말리아, 북서 아프리카가 새로운 알카에다의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알카에다 조직의 떠오르는 별 안와르 알 올라키도 예멘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알카에다의 최고 지도자이자 정신적 지주인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이 이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줄 것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알카에다는 전세계에 광범위한 연계 세포 조직을 구축해왔고 새로운 리더들이 성장해 온 만큼 단기간에 세력이 약화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아랍권의 위성 뉴스 채널인 알자지라는 빈 라덴 사후 알카에다의 장래에 대해 “빈 라덴의 죽음은 상징적 의미가 크지만, 알카에다 조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알자지라는 또한, “9·11 테러가 발생한 2001년과 2011년 현재의 알카에다는 전혀 다르다. 새로운 젊은 간부들이 각 연계 조직의 리더로 성장해 오면서 빈 라덴의 위상은 권위적 상징 정도로 축소되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또 아라비아 반도의 알카에다 지역 조직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지도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빈 라덴의 죽음이 갖는 파급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빈 라덴의 사망을 계기로 세력을 확대시키려는 무장 단체가 출현하고 이들 단체의 세력 구도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또 테러 대상이 더 넓어질 수도 있고, 존재감을 알리기 위한 과격파의 위협은 오히려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알카에다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가장 유력한 단체는 카슈미르 이슬람 분리주의 무장 단체인 ‘라스카르 에 토에바(Lashkar-e-Tayyaba: LeT)’이다.

 ‘순수한 병사 군단’이라는 뜻의 이 단체는 지난 2008년 인도 뭄바이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어 주목되었다. 이 단체는 미국 정부의 조사에서 ‘빈 라덴과 각별한 관계’로 파키스탄 과격파를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이 단체는 당초 인도 북부 카슈미르 지역 귀속 문제로 인도 정부와 대립하던 집단이었으나, 나중에는 빈 라덴을 모방해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최근에는 유럽에서 활동 중인 아랍계 인사들을 영입하고 있으며 소규모 과격 단체 등과도 연계해 미국과 대양주, 유럽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또 예멘·파키스탄 등지에서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등 대형 테러 조직으로 성장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소규모 조직의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미아 이슬라미야(Jemmah Ismlamiyah: JI)’도 “빈 라덴 사망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을 공격하겠다”라고 선언했다. JI는 지난 2002년 발리 폭탄 테러를 주도한 단체로 잘 알려져 있으며 알카에다로부터 탄저균 테러 방법 등을 익힌 동남아 최대의 테러 조직이다. 지난해에는 비밀 군사 기지를 구축할 정도로 성장해 국제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중동 민주화 영향으로 입지는 약해져

또한 알카에다도 이번 빈 라덴의 죽음으로 조직 개편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알카에다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계 조직과 예멘계 조직을 합병해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AQAP)’를 결성했으며 폭탄 제조와 위치 정보 등 각종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지난주, 모로코 마라케시의 한 카페에서 폭탄 공격이 일어나 16명이 사망했다. 모로코 정부는 폭탄 공격이 전문가의 소행이며, 알카에다가 지난 공격에 사용했었던 TATP와 PETN 폭탄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모로코는 리비아와 같이 오랫동안 알카에다 북아프리카 지부(AQIM)가 그다지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던 지역 중 하나였다.

모로코 내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들의 숫자는 매우 적다. 모로코에서 있었던, 알카에다와 연관된 폭탄 공격은 빈 라덴의 죽음이 알카에다의 능력을 감소시키고, 개별 지부의 독립성을 강화시킬 것임을 보여준다. 개별 지부의 독립성이 강화됨에 따라 테러 조직에 속한 개인들과 지부들의 움직임을 쫓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 되어갈 것이다. 이는 또한 이들이 전보다 더욱 민중들의 지지에 의존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거센 움직임을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알카에다의 영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올 1월부터 시작된 중동 내 민주화를 열망하는 온건주의 세력의 부상에 따른 이슬람 세계의 정치 환경이 바뀐 데에 있다.

빈 라덴의 죽음은 미군과 정보부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줄 것이다. 동시에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게 되었고, 미국과 그의 동맹들은 리비아 전쟁을 수행하는 데 훨씬 안전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빈 라덴은 반정부 시위가 중동을 휩쓸기 한참 전인 지난해 12월부터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이나 튀니지의 벤 알리 정권이 전복되어야 한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반정부 시위에 대한 거센 진압과 달리 시위대들은 좀 더 평화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주도해왔다.

이로 인해 반정부 시위 움직임은 알카에다에 별다른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었다. 한 예로 카다피 정권은 반정부 시위대가 알카에다와 같은 외부 세력과 연계되어 있다고 비난했었다. 빈 라덴의 죽음으로 인해 이들은 이런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빈 라덴과 알카에다의 역할 감소는 중동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반미 투쟁의 주체는 알카에다가 아닌 탈레반이 맡고 있다. 예멘의 알카에다 지부(AQAP; 아라비아 반도 알카에다)는 살레 대통령에 대한 시위가 일어난 이래로 몇몇 예외적인 공격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침묵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살레 대통령은 알카에다를, 그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카드로 사용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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