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좋다는 그곳에 재벌들 모여들더니 신흥 부촌이 ‘활짝’
  • 조득진 기자 (chodj21@sisapress.com)
  • 승인 2011.05.1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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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남서울CC 주변 전원마을에 대저택들 잇달아 들어서
ⓒ시사저널 임준선

 경기 성남시 서판교 남서울CC 주변에 재벌 총수 일가가 모이면서 신흥 부촌이 형성되고 있다. 최근 결혼식을 올린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신접살림을 이곳에 마련했다. 인근에는 이미 아주산업, 대한제분, 삼양인터내셔날, 우림건설의 총수 일가와 삼성전자 사장 등 기업 고위 임원들이 마을을 형성해 살고 있다. ‘풍수가 좋아 재벌 총수들이 모인다’라는 소문이 퍼지자 서판교 일대 부동산에는 전원주택 부지를 찾는 문의 전화도 늘어나고 있다. 서판교 운중동 타운하우스에는 의료계나 법조계 전문직 종사자들도 속속 합류하고 있다.

서판교 대장동 일대 그룹 회장들의 저택은 현재 한창 개발 중인 서판교 중심가와는 주거 환경이 확연히 다르다. 남서울CC 한편에 자리한 이 마을을 들고나는 도로는 사유지라는 이유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으며, 입주하는 데에도 일정한 자격이 필요하다. 그들만의 ‘둥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11일 이곳을 찾았다.

넓은 대지, 높은 담벼락, 스페인 스타일… 

▲ 경기 성남시 서판교 남서울CC 주변의 전원마을에 기업 CEO와 임원들이 신흥 부촌을 형성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안양판교로 1201번지길. 남서울CC 입구에 자리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대저택은 건물 외관이 화려하고 웅장해 골목 입구에서부터 단연 눈에 띈다. 이날은 공사 차량과 인부들이 바쁘게 출입하고 있었다. 일반 가정집이지만 그들은 비표를 착용한 상태였다. “무슨 공사냐”라는 집요한 질문에 그들은 “보안·경비 관련이다”라고만 답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통신 관련 회사 차량 등 서너 대가 주차해 있는 것으로 보아 정부회장 내외의 신접살이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 집이 정용진 부회장의 저택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해 가을께 이틀에 걸쳐 정부회장의 이삿짐이 들어오면서다. 완공 당시까지만 해도 지역 주민들은 막연히 대그룹 오너 일가의 저택으로 짐작했지만, 실제로 이삿짐이 들어오면서 집주인이 확인되었다. 지난 5월10일 플루티스트 겸 대학 강사인 한지희씨와 결혼식을 올린 정부회장은 이곳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약 3천3백㎡(1천평) 대지에 지하 2층, 지상 2층으로 세워진 정부회장의 저택은 높은 담벼락, 그 위로 치솟은 나무들 탓에 평지에서는 내부 구조를 보기 힘들다. 게다가 10m 간격으로 설치된 CCTV와 굳게 닫힌 철제 대문은 위압감을 준다. 지하층이라고는 하지만 평지에서 들어가는 식이라 실제로는 4층짜리 건물인 셈이다. 지상 1층에는 대형 홀과 거실, 주방이 있고 2층에는 방과 욕실 등이 있다. 또한 마당에는 수영장이 있는데 집터가 워낙 높고 인근에 높은 건물이 없어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이다. 판교 부동산업계에서는 이 대저택의 땅값만 무려 1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급 주택을 건축한 경험이 많은 이한구 세하종합건축사무소 소장(부천대 건축학과 겸임교수)은 “정부회장의 저택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선호하는 건축 양식으로, 전체적으로 크림 톤과 살구색이 조화를 이룬 스페인 스타일을 추구했다. 대문 주변의 조경, 2층 난간 문양을 보면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상당히 신경 쓴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1층 아치형 출입문에는 개선문 이미지를 따른 고전 양식이 보인다는 설명이다.

정부회장 저택의 특징은 지붕 위로 솟은 대여섯 개의 커다란 환기구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나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경우처럼 저택 내에 인공 지능 시스템에 의한 자체 공기 정화 시설 같은 첨단 시스템을 설치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지하층을 2개 층이나 만든 것도 이같은 시설물을 갖추기 위한 때문으로 보인다.

▲ 경기 성남시 운중동에 들어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신혼집. 지하 2층, 지상 2층으로 땅값만 100억원에 달한다. ⓒ시사저널 임준선

오너가 가족에게 소유권 이전하는 경우 많아

정부회장 집에서 남서울CC 클럽하우스를 지나 1km 남짓 올라가면 고급 저택들이 등장한다. 성남시 운중동과 대장동에 걸쳐 있는 전원주택 단지로 골프장을 끼고 있고, 서판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시야가 시원한 주거지이다. 이 마을의 출입은 마을 양쪽 끝 경비실에서 바리게이트를 열어주어야 가능하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입주민이 아니면 일일이 신분을 확인하고 있다. 사유지에 도로를 낸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으며, 단지 아래에 기존 도로가 있어 인근 주민들의 불편함도 없다”라고 말했다. 남서울CC에서 끊어진 도로를 공동 비용을 들여 단지 안으로 연결했다는 설명이다.

모두 100개 정도의 필지로 나뉘어 있는 이 단지에는 전원주택 23채가 세워진 것으로 파악되었다. 대지 면적은 2백50~6백 평이다. 이 전원주택 단지에는 GS그룹 일가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 이건영 대한제분 부회장, 심영섭 우림건설 회장, 윤주화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사장, 이상훈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사장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성남시 대장동에 자리한 LG컨설팅투자개발 정명호 대표는 “40여 년 전 삼평동 안 아무개씨의 땅 4만평을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이 사들였다. 남서울CC를 운영하는 허회장이 골프장 회원을 확보하기 위해 회원들에게 한 필지씩 나누어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허회장은 구씨 일가와 함께 LG그룹을 만든 고 허만정 창업주의 5남으로, 골프장 건설·운영, 물류, 창업 투자 업체를 경영했다. 정대표는 “박정희 대통령 당시인 1976년 5월4일 이른바 ‘5·4 조치’로 성남시가 조례를 통해 남단녹지지대로 정해 개발이 묶여 있다가 몇 년 전 건축 허가가 나면서 땅값이 많이 올랐다”라고 설명했다.

남서울CC에서 올라가 처음으로 보이는 저택은 고 허만정 창업주의 손자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일가의 저택이다. 허회장은 1992년 당시 16세이던 아들에게 소유권을 이전했다. 허회장은 삼양통산 부사장, 한국나이키 대표이사를 지냈다. 골프를 좋아해 대한골프협회 부회장, 아시아태평양골프연맹(APGC) 회장을 맡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과의 사촌지간이다. 조선일보 사주 일가와 사돈이기도 하다. 이한구 소장은 이 저택에 대해 “1층 출입구의 4개 기둥, 돌을 엇갈려 쌓은 벽면 등에서 르네상스 이전부터 유행했던 고전주의 양식이 보인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건물이다”라고 평가했다.

비스듬히 마주보고 있는 저택은 심영섭 우림건설 회장 일가 소유이다. 장정자 서울현대학원 이사장(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의 모친)이 1999년 토지를 사들였다. 몇 번 주인이 바뀐 뒤 심회장 부인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이 저택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문이다. 이소장은 “대문만 봐도 디자인에 상당히 공을 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수직으로 낸 긴 창에서 모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의 저택은 대지 면적이 크지는 않지만 집 구조를 효과적으로 배치해 놓았다. “집 안 가운데에 정원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주거용이라기보다는 주말이나 휴가 때 사용하는 별장 같다”라는 것이 이소장의 분석이다. 아주그룹은 아주산업, 아주캐피탈, 호텔서교, 하얏트리젠시제주를 비롯해 14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 기업이다.

이건영 대한제분 부회장의 저택은 도로에서는 내부를 전혀 알 수 없는 구조이다. 미술관을 연상케 한다. 창문을 모두 산 쪽으로 낸 것을 보면 철저하게 사생활을 지키려는 건축주의 의도가 보인다. 이부회장은 1978년 12세에 1천6백83㎡(5백10평) 대지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했다. 그는 2009년 옆 필지를 보태 2천14㎡(6백10평)로 건축 면적을 넓혔다. 이부회장은 지난 2009년 아버지 이종각 회장으로부터 대한제분 경영권을 승계했다.

길 건너 이웃한 삼성전자 사장들

대기업 임원들로는 삼성전자 사장들의 집이 눈에 띈다. 2층 구조의 평슬라브집이지만 나름대로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선보인 저택은 윤주화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장이 지난 2008년 여름께 사들인 집이다. 윤사장은 삼성전자 감사팀장을 거쳐 지난해 1월 삼성전자 최고 재무책임자에 올랐다. 지난 3월 스톡옵션을 행사해 18억원가량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 이소장은 “외벽을 내피와 외피 이중으로 구성해 바깥 시선을 차단하는 스크린 기능을 하고 있다. 내부에 정원 같은 세밀한 구조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길 하나 건너 회백색 지중해풍 저택은 이상훈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사장 집이다. 이사장은 사업지원팀장 사장을 거쳐 지난해 12월 삼성미래전략실 전략1팀장에 올랐다. 그는 과거 전략기획실 ‘이학수-김인주-최광해’로 이어지던 재무 라인의 공백을 메울 최적임자로 꼽힌다. JY(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인사로 분류된다. 이사장은 이곳에 2009년 입주했다.

입주민 가운데 중소기업 오너 일가로는 홍평우 신라명과 사장, 최만립 이낙반도체 회장, 김의광 장원산업 회장, 전경호 전 청주방적 회장, 장진우 한불에너지관리 회장, 유시현 가오 대표이사, 최영배 대유설비 대표가 눈에 띈다.

홍평우 신라명과 사장은 지난 3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산업용 보일러 생산업체 부스타의 주식을 팔아 2백억원 대박을 터뜨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회사 지분을 인수한 지 27년 만의 일이라 더욱 화제가 되었다. 홍회장의 신라명과는 27년 전통의 중견 제과업체이다. 그의 집은 아내와 공동 명의로 되어 있다. 세계생활체육협의회 회장을 지낸 최만립 이낙반도체 전 회장은 2005년 사위 서 아무개씨에게 소유권을 이전했다. 이 저택은 바깥쪽 담은 낮게 하고 안쪽에 다시 축대를 쌓아올려 중세 시대 성곽을 연상케 한다. 

김의광 장원산업 회장 일가의 저택은 2006년 소유권이 아들에서 아내로 바뀌었다. 김회장은 태평양그룹 창업주인 서성환 회장의 둘째사위로 서경배 태평양그룹 사장의 매형이다. 태평양 돌핀스 대표를 거쳐 2002년부터 태평양 설록차를 만드는 장원산업 회장으로 있다. 현재 종로 목인박물관 관장이기도 하다.

재벌 2·3세, 실용성·사생활 보호 추구

LG컨설팅투자개발 정명호 대표는 “이곳 땅값은 평당 5백만~1천만원대로 형성되어 있다. 대부분 1필지가 5백평 정도이니까 땅값만 25억~50억원 수준이다”라고 설명했다. 두 필지를 합쳐 집을 올린 곳이 많아 땅값만 100억원이 넘는 곳이 많다. 정대표는 “웬만한 부자는 집을 지었다고 해도 살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경비·보안·청소 같은 공동 비용이 많이 든다. 집을 짓지 않고 토지만 보유하고 있어도 기본 관리비를 내야 한다. 평당 1만원 수준이다. 5백평 한 필지를 소유하고 있으면 주택 유무와 상관없이 월 관리비 5백만원을 내야 한다.   

이한구 세하종합건축사무소 소장은 “주택 구조를 확인한 결과 전반적으로 튀는 건축 양식은 없다. 화강석으로 올린 담장, 징크패널을 이용한 지붕과 천창(고층창), 삼각형 형태의 지붕인 박공 등은 고급 타운하우스에 들어가는 일반적인 건축 기법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벌 1세대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소장은 “기존 부자들의 경우 난간만 해도 꽃·봉황·용 문양에 금박까지 덮었는데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모던하고 실용적으로 변했다. 건물의 수직성보다는 수평성에 중심을 두어 담장 또한 상당히 낮아졌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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