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불안 실은 위험한 질주 계속할 것인가
  • 배준호 / 한신대 교수·고속철시민모임 대표 ()
  • 승인 2011.05.1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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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사고 빈발, 정비 부실과 때늦은 대응이 초래한 ‘인재’…근본적인 안전 대책 시급
▲ 배준호 한신대 교수·고속철시민모임 대표

요즘 KTX 승객의 마음이 불안하다. “목적지까지 제 시간에 갈 수 있을까” “사고 때문에 약속을 못 지키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한다. KTX만이 아니다. 수도권 전철과 새마을호, 무궁화호 열차에서도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해마다 수천억 원의 세금이 투입되는 코레일이 승객들에게 안심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4년 4월에 상업 운전을 시작한 KTX-1, 49편성이 도입된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운행 개시 후 8년차라는 점도 있지만 KTX의 원 모형인 TGV가 프랑스에서 개발되어 20년 이상이 지나면서 정보가 많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 스페인, 한국 등 TGV 모형이 운행되는 곳에서 인명 피해를 수반하는 대형 철도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3월2일 국산인 KTX-산천이 상업 운전에 나선 후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국산 KTX는 19편성이 운행 중인데 1년2개월 사이에 40차례가 넘는 트러블을 일으켰다. 신호 장치, 공기 배관, 고압 회로, 모터 블록, 견인 전동기, 승강문, 공조 장치 등에서 문제가 많았다. 가장 큰 사고는 2월11일에 일어난 광명역 인근 일직터널 내 탈선이었다. 이날의 사고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정비 직원과 관제센터 직원 등의 실수와 소통 부재가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이후 직원 두 명이 파면·해임되고 12명이 정직이나 감봉 등의 처분을 받았다. 
 

▲  지난 2월11일 경기 광명시 광명역사 앞 터널에서 부산발 KTX 열차가 탈선해 작업 관계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뉴시스

 결국 모든 국산 KTX 차량 정밀 재점검

주목할 점은 5월7일 새벽 고양의 수도권차량관리단 검수 작업에서 KTX-산천의 모터 감속기 고정대가 균열되어 탈락 직전에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모터 감속기는 KTX의 엔진 격인 모터블록의 동력을 제어하는 구성 장치로 무게가 0.5t에 달한다. 고속 주행을 할 때 이 장치가 선로에 떨어지면 탈선 등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코레일은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현대로템(이하 로템)에 인수 후 처음으로 국산 KTX 차량 전체의 정밀 재점검을 요구했다. 지금까지의 사고가 주로 부품 고장과 시스템 오작동, 기관사, 정비사 실수 등으로 발생한 것에 비해 모터 감속기 고정대 균열은 차량의 설계와 제작 오류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로템은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1999년 7월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의 국내 철도 차량 부문 세 곳이 통합되어 발족한 회사이다. 이후 한국형 고속철 개발 사업을 준비해 오다가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2005년 12월의 국제 입찰에서 알스톰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어 KTX-산천을 코레일에 납품했다.

KTX-1이 투입된 2004년 4월 이전, 우리 철도는 새마을호 속도인 1백50㎞ 시대에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3백㎞ 시대로 뛰어올랐다. 1990년대 후반부터 기술자와 기관사 등이 프랑스에서 교육받아 KTX-1의 정비와 운행에 투입되고, 기술자들이 KTX-산천을 개발해 3백㎞ 시대를 이끌고 있지만 지금 비약에 따른 성장통을 앓고 있다. 고속철 기술을 완전한 우리 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철도의 현주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레일은 모터 감속기 고정대 균열을 확인한 정비사를 특별 승진시켰다. 잘한 일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지 않다.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의 큰 균열이 발견될 때까지 고양과 부산 기지창 정비사들은 무엇을 했느냐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구조물의 균열이라고 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커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정비 부실과 때늦은 대응은 이 밖에도 많다. 5월8일 오후 2시20분쯤, 부산에서 서울로 가던 KTX 130호가 천안아산역 인근에서 긴급 정차했다. 18호 객차 밑에서 연기가 나고 소음과 진동이 심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코레일은 열차 추진의 핵심 장치인 견인 전동기 베어링 등이 노후화해 녹아내렸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부품은 전부터 고장이 많아 전면 교체해야 할 대상이었다. 사고 차량의 주행 거리는 3백10만㎞로, 규정이 정한 2백50만㎞를 넘었는데 견인 전동기가 교체되지 않았다. 점검에서 이상 없는 부품은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 사고는 점검 작업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거나 노후화 아닌 다른 원인에 따른 파손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발표대로 노후화 때문이라면 부품을 제때 교체하지 못한 정비진의 책임은 작지 않다. 고속열차에서는 작은 부품 하나로 대형 사고가 유발되므로 뒤늦은 대응이 아닌 선제적 예방 조치가 중요하다.

분산된 국내 철도 기술력도 한데 모아야

프랑스산 고속철을 운행한 지 8년째, 국산 고속철을 투입한 지 1년2개월째인 KTX 성적표는 5단계 등급으로 평가하면 ‘양’ ‘가’의 중간쯤일까. 프랑스산 차량으로만 운행했더라면 ‘미’ 이상일지 모른다. 국산화 욕심 때문에 평가가 낮아졌을 수 있으므로 이 점에 대해서는 일정한 유보가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정부와 제작업체가 불완전한 차량으로 국민을 상대로 실험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와서는 곤란하다. 일련의 부품과 신호 체계, 열차 자동 운전 시스템의 국산화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설계와 제작 단계에서 간과한 것은 없었는지 밑바탕에서부터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할 시점이다.

철도 관리 체계도 문제이다. 2004년과 2005년에 철도시설공단과 코레일이 분리해 발족하면서 철도 기술 인력이 두 기관으로 분산되었고, 이후 코레일은 경영 수지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보수·유지 인력과 관련 예산의 절감을 시도했다. 코레일은 보수 유지 예산의 70%를 선로 사용료로 시설공단에 지불하므로 이를 줄이면 경영 수지가 개선될 수 있다. 이같은 정책이 코레일 기술 인력의 사기를 떨어뜨려 기술력 저하와 기강 해이로 이어져 최근 발생하는 많은 사고와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는지 모른다. 

선로 사용료 문제 외에 허준영 사장의 기술직 박대와 원칙 없는 간부 인력 관리도 문제이다. 코레일 이사 14명 중 엔지니어 출신이나 기술 마인드를 지닌 사람은 네 명(4월까지는 세 명)에 불과하며 수송 안전 분야 자문위원 아홉 명 중 안전 전문가는 세 명뿐이다. 기술본부장에 기술직 인사가 배치된 것도 최근이며, 지난 2월 선임된 두 명의 비상임 이사는 철도와 무관한 70대 전후의 전직 관료와 서울시의원 출신이다.

사고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국토해양부와 코레일이 조직을 개편하고 예산을 늘려 KTX 정비 점검을 강화하는 데에 나섰지만 효과가 지속될지 의문이다. 관련 기술력을 충분히 갖추어야 장기적으로 안심과 안전이 확보될 터인데 지금의 대책은 아무래도 미봉책이다.

우려되는 대형 사고를 예방하고 승객의 안심과 안전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코레일 사장 등 주요 자리에 3백㎞ 시대에 걸맞은 기술 마인드가 있는 인사를 앉히자. 그래야 철도 기술 인력의 사기가 진작되고 기술력이 배양될 수 있다. 다음으로 KTX 산천이 안정화될 때까지 코레일의 보수·유지 인력과 관련 예산을 확충하고, 코레일과 로템과의 협조 체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로템도 상업 운전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문제점에 대한 코레일측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 책임감 있게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부 재정 지원도 고려하자. 정부는 2005년 말의 국제 입찰에서 로템을 지원한 후 고속철 국산화라는 국가 프로젝트를 로템과 코레일에 내맡기고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끝으로 중기적으로는 코레일과 시설공단을 통합해 분산된 국내 철도 기술력을 집결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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