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이 ‘가수들의 무대’를 살려냈다
  • 김봉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05.2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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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의 열풍에서 확인하는 대중음악의 현주소 / ‘위기’에 맞서 적극적 공세 펼치라는 교훈도

▲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윤도현, 임재범, BMK, 김연우. ⓒMBC

<나는 가수다>의 열풍이 거세다. ‘나는 문화인이다(?)’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꼭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아도 나가수에 대해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새롭다’는 것이다. 물론 하늘 아래 온전히 새로운 것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장르도 세계관도 제각각인 ‘기성 가수’를 모아놓고 ‘순위’를 매긴다는 발상은 파격적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누구나 언뜻 생각해볼 수는 있지만 감히(!) 누구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던 시도이다.

‘좋은 무대’ ‘인기 가수’의 조건에 대중의 음악 취향 반영된다는 것도 확인

‘김건모 사태’를 겪은 후 휴지기를 거쳐 시즌2를 맞이한 나가수는 적어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를 여전히 인정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변화이겠지만, 시즌2는 시즌1보다 확실히 발전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새로운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나는 성대다’라는 세간의 우스갯소리는 지금의 나가수가 직면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그와 관련해 핵심 인물로 지목 가능한 인물이 바로 시즌2부터 새롭게 합류한 가수 김연우이다.

프로그램에 합류한 후 김연우는 2주 연속 6위를 기록했다. 7위를 안 해 다행일지 모르지만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다. 첫 무대에서 김연우는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불렀다. 토이의 네 번째 앨범 수록곡으로 토이의 대표곡이자 김연우의 대표곡이기도 하다. 고백하건대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그의 무대에 큰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그날의 라이브가 그동안 몇백 번은 족히 들었을 이 곡의 레코딩 버전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당장 토이 앨범을 꺼내 이 곡을 들어보자. <여전히 아름다운지>의 레코딩 버전은 눈부신 김연우 보컬의 최절정이었다) 동시에 다른 가수의 화려한 무대에 이미 익숙해진 탓이기도 했다.

채점 과정의 자세한 내막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가수들의 보컬 선생’으로 불릴 정도로 오래전에 음악적 검증이 끝난 가수 김연우가 2주 연속 6위라는 저조한 순위를 기록한 데에는 그의 보컬이 기교나 바이브레이션과는 거리가 먼, 곧게 뻗는 직선 스타일이라는 점, 그리고 별다른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고 홀로 노래만 부르고 들어갔다는 점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BMK의 사례 역시 비슷하다. BMK는 변진섭의 <그대 내게 다시>를 재즈풍으로 재해석해 고즈넉한 무대를 보여주었고 이 공연으로 7위를 기록했다. 다른 가수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없으나 이날 BMK의 ‘꼴찌’는 많은 사람에게 납득할 수 없는 결과였다. 왜일까. 그녀의 무대가 이른바 ‘한국적 감수성’에 맞지 않아서 청중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고, 결과적으로 대중이라는 불특정 집단의 대체적인 음악 취향을 재확인했다고 해석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물론 모두에게 공평한 룰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저마다의 사정과 상황 역시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가수가 적어도 새로운 문제점 한 가지를 노출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바로 (곧 가창력으로 인식되는) 고음과 기교 및 바이브레이션에 좀 더 친화적인 가수가, 또 들을 거리 외에도 화려하고 풍성한 연출로 볼거리 역시 제공하는 가수가 경쟁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좋은 무대’는 ‘높은 점수를 받는 무대’일 가능성이 크지만 모든 ‘좋은 무대’가 ‘높은 점수를 받는 무대’는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수의 활동과 홍보에 방송이 차지하는 비중 높아

나가수가 확인시키는 또 다른 사실은, 예능 프로그램의 위상이다. 오늘날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은 마치 한국 대중음악의 구원자처럼 보인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한 분석(과 착각의 교정, 오류의 차단)이 필요하겠지만 오늘날 예능이 음악을 전파하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임은 부인할 수 없다. 11년 전에 발표한 노래(임재범의 <너를 위해>)가 예능 전파를 탄 덕분에 음악 순위 프로그램 1위 후보에 오른 광경은 참으로 기이하고도 충격적이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이를 가리켜 1982년 MTV의 출범 후 뮤직비디오가 대중에게 음악을 제공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등장했던 것처럼 ‘방송이 활동과 홍보에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에서 라이브형 뮤지션이 실력을 겨루고 경쟁하는 나가수의 성공은 예능이 이 시대에 음악의 플랫폼임을 확인하게 하는 징후’라고 평한다. 그리고 필자 역시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곧바로 ‘씁쓸한’이라는 표현을 다시 고쳐 쓸까 고민하는 나를 발견한다. 음악의 입장에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꼭 부정적이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 진부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이기도 하고, 컵에 절반 남은 물도 보기에 따라 달라진다. 예능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이 시대에 음악이 음악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킨 채 살아남으려면(혹은 좀 더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능 프로그램 덕분에 이소라의 <넘버원>과 임재범의 <빈잔>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감격하며 만족해야 할까. 앞으로의 나가수를 주목하고 또 참조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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