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대계’가 ‘국가 파괴 대계’인가
  • 이상돈 /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 승인 2011.05.2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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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본사 이전·과학벨트 지정 둘러싸고 지역 간 갈등 심각…대통령의 말 바꾸기가 혼란 키워

이명박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를 경남 진주로 이전하기로 한 데 대해 전라북도가 반발하고, 과학벨트를 충남 대덕으로 지정한 데 대해 경상북도가 저항하는 등 온 나라가 홍역을 앓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이명박 정부가 일관성 없이 일을 추진한 탓이 크다. 

LH 본사를 진주로 이전하기로 한 결정은 동남권 공항이 무산된 데 대한 경남 지역의 민심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LH 본사를 유치하고자 했던 전라북도가 반발하고 나서자 정부는 다른 기관을 전라북도로 이전하겠다고 한다.

과학벨트의 본산을 충남 대덕으로 결정한 것은 세종시 파동으로 인한 충남권 민심을 달래기 위함일 것이다. 대구·경북과 광주가 극렬하게 반발하고 나서자 정부는 2조원 예산을 추가로 마련해서 두 곳에 지원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난맥상의 직접적인 뿌리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내걸었던 무책임한 공약이다.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수도 이전에 반대했던 이명박 후보는 충청 지역의 표를 얻기 위해 “세종시 건설에 차질이 없을 것이며, 또한 수조 원 규모의 과학벨트를 충남에 건설하겠다”라고 약속했다.

▲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을 앞둔 5월1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산업은행 앞에서 경북(G)과 울산(U), 대구(D) 지역민들이 과학벨트 유치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대선 후보들, ‘아니면 말고’식 공약 남발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후 MB는 ‘국가 백년대계’를 앞세우면서 행정 기관의 세종시 이전을 백지화하고 대신 기업과 대학을 유치하겠다고 했다. 공약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한 것이다. 민심은 이대통령을 따라주지 않았다. 온갖 사탕발림 같은 혜택을 내세웠지만 세종시를 수정하고자 한 대통령의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 충청 지역과 민주당 그리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반대에 봉착해서 백기를 든 것이다. 대통령 후보로서 내세웠던 공약을 ‘단물 빨고 뱉어 버리는 껌’ 정도로 알았던 대통령은 큰 대가를 치렀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이명박 정권에게 또 다른 시금석이었다. 많은 전문가는 동남권 신공항이 과연 필요한지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후보지로 떠오른 가덕도와 밀양이 모두 결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타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유보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은 받아들일 만했다.

세종시·동남권 신공항이 1·2라운드라면, 과학벨트는 3라운드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월에 과학벨트 공약에 대해서 “충청권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고 국가 백년대계니까 과학자들 입장에서 하는 것이 맞다”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충청권 과학벨트 조성이 백지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 돌았고, 다른 지역도 과학벨트를 유치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하지만 정부는 결국 원래 구상대로 충남 대덕·연기 지역을 과학벨트 지역으로 선정했다. 기대가 무산된 경북·대구와 광주가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경북·대구와 광주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예정에 없는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결과적으로는 과학벨트를 세 곳에 지정한 꼴이 되었지만, 정작 과학기술계는 도무지 과학벨트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잘 모른다고 한다. 사업을 유치하고자 하는 지방도 도무지 그 사업의 콘텐츠가 무엇이고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이 우선 유치하기 위해 뛰어든 측면이 많다. 중앙 정부는 우왕좌왕하면서 국민 세금을 자기 쌈짓돈처럼 뿌리고 있고, 지방 정부는 “국민 세금은 차지하는 사람이 주인이다”라는 식으로 뛰어드는 형상이다.

툭하면 ‘국가 백년대계’를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의 가벼운 입이 지역 갈등을 심화시킨 근원이지만, 전임 노무현 대통령도 오늘날의 난맥상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야말로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행정복합도시(세종시), 기업 혁신도시, 첨단 의료 복합도시 등 수십조 원 규모의 개발 공약을 내세웠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이회창 후보는 무엇을 공약으로 내세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노무현 후보의 공약은 파격적이었다. 임기 중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우직하게 지켜나갔는데, 그 과정에서 헌법재판소가 수도 이전을 위헌으로 판정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규모 토지 보상이 이루어졌고 전국 각지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니, 이것이 진보 학자들이 그렇게 비난하는 ‘토건 공화국’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대통령 후보로서 MB가 내건 공약은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을 무색하게 했다. 특히 한반도 대운하 공약과 그 변종인 4대강 사업은 수십조 원의 돈을 들여서 국토 환경을 파괴하는 ‘망국(亡國) 프로젝트’라고 할 만하며, 보금자리 주택 공약은 ‘포퓰리즘의 금자탑’이었다. 더구나 이대통령은 세종시 공약을 간단하게 뒤집어서 불신을 조장했다.

한 대통령은 한 번 한 말을 죽어도 지킬 정도로 우직했고, 또 다른 대통령은 한 입으로 두 말, 세 말 하는 등 ‘불신 덩어리’인 데다 자기가 하고 싶은 ‘4대강’은 목숨 걸고 추진할 정도로 저돌적이니, 이런 절묘한 조합이 오늘날 이 지경을 초래했다. 가뜩이나 이념과 지역감정으로 분열되어 있는 대한민국은 더욱더 분열되었고, 이제는 “‘토건 마피아’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망했다”라는 과거 완료형 탄식이 나오고 있다.

재정 파탄·환경 파괴·국가 분열 등 초래해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는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조·중·동과 경제신문이 토건 망국론을 폈지만 이명박 정권 들어서 이들은 조용했다. 이명박 정권의 토건 유착을 거세게 비판하고 있는 진보 언론은 노무현 시절의 토건 사업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작은 정부를 주창하는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들이 이 망국적 토건 사업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지적 파탄’이라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건 또 다른 ‘국가 백년대계’ 사업인 ‘4대강’은 ‘자연의 역습’을 초래해서 곳곳에서 환경 재해가 일어나는 형편이고, 급기야는 경북 구미시에 5일 동안이나 수돗물이 끊어지는 사태를 초래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명박 대통령의 ‘국가 백년대계’는 재정 파탄, 환경 파괴, 국가 분열 등을 초래한 ‘국가 파괴 백년대계’라 할 만하다.

‘신뢰’라고는 티끌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대통령은 말 바꾸기로 혼란을 가중시키고, 광역자치단체는 국책 사업, 국제 대회 등 온갖 핑계로 국민 세금 뜯어오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기초자치단체는 자기 동네에 한 푼이라고 더 가져오기 위해 또 투쟁을 하고, 토목회사들은 어찌되었든 토건 사업만 있으면 된다고 미소 짓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생얼굴’이다. 이래서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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