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 고맙지만 결단은 아직…”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5.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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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 지역 발판으로 범야권 내 ‘박근혜 대항마’로 떠오르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인터뷰

 

ⓒ시사저널 윤성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5월14일 김해 봉하마을 현지에서 만나 두어 시간을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눌 때에도, 나흘 후인 18일 전화로 다시 인터뷰를 했을 때에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고민에 빠진 듯 잠겨 있었다. 특히 정치 활동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그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그의 행보만큼은 확실히 달라졌다. 예전 같지 않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이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오는 6월7일에는 노 전 대통령과의 30년 인연을 정리한 자서전 <운명>을 출간한다.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문이사장의 보폭이 커지는 것에 대해 범야권에서는 ‘대권 주자’로서의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다. 그를 ‘박근혜 대항마’로 지목하는 이들도 많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5월18일 실시한 부산·울산·경남(PK) 지역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문재인 이사장은 주목할 만한 지목률을 나타냈다. 아직 정치 활동 여부에 대한 입장도 밝히지 않은 ‘비(非)정치인’인 그가 ‘부산·울산·경남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서 2.3%의 지목률로 전체 7위에 오른 것이다. 친여(親與) 성향이 강한 지역적 특수성과 함께, 상위에 랭크된 대다수 인사가 PK 지역구 출신의 현역 정치인이거나 단체장이라는 점에서 문이사장의 등장은 눈에 띄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야권 인사들 가운데는 김두관 경남도지사에 이어 두 번째였고,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를 자처하며 지난 4월 한 달을 김해에 상주하다시피 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1.2%, 공동 10위)도 앞질렀다.

오늘(5월14일) 이 길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걸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감회가 어떤가?

(노 전 대통령이) 많이 생각난다. 노대통령은 이곳 화포천을 걸으면서 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셨다. 여기에서 어린 시절에 보았던 곤충들의 이름을 소상하게 기억해서 말씀하시곤 했다. 생태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셨던 분이다. 그래서 봉하마을에 오셔서 처음으로 한 일이 이곳 화포천을 청소하신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화포천은 사람들이 버린 생활 쓰레기가 가득 쌓인 곳이었다. 이제야 그분의 염원대로 화포천이 복원되어 감회가 남다르다. 사실 봉하마을에 오신 후 노대통령은 자신을 보러 온 사람들이 그저 멀리서 사저만 구경하고 돌아가는 것을 안타까워 하셨다. 화포천을 걸어볼 수 있는 코스를 만들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오늘 화포천을 개장한 것은 대통령의 유지를 따르는 것인 셈이다. 앞으로 이런 작업들은 차근차근 더 진행될 것이다. 지난해에 봉화산 숲길을 개장했고 올해는 화포천 습지길이 열렸다. 좀 더 있으면 옛날 대통령께서 고시 공부하시던 곳을 돌아보는 코스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번 본지 여론조사에서, ‘PK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문이사장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부산 지역에서 문이사장이 정치에 나섰으면 하는 요구가 상당한 듯하다.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기는 한데….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해왔고 또 노무현재단 이사장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면으로) 관심을 가지는 모양이다. 부산 지역에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은 지금까지 부산에서 활동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나. (지역민이) 정치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면 요사이 언론에서 나에 대해 그런 역할을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심뿐만이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 최근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 또한 문이사장이 대선 주자로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가 워낙 못하니까 다음 총선과 대선을 통해 반드시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강해서 그럴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 쪽(진보 개혁 진영) 후보들 중에서 ‘박근혜 대항마’라고 볼 만한 인물이 부족하기도 하고. 우리 쪽 선수들이 풍부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정치에 나서는 것을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나?

(한동안 침묵한 뒤)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고…. 손학규 대표와 같이 좋은 분들이 많다. 내가 결단을 하는 것은 좀 그렇고. 야당의 지도자로 부각되는 것도…. 지금 유시민 대표가 재·보궐 선거에서 타격을 입었지만 곧 정치적으로 반전될 것이다. 어찌되었든 (대선과 관련해) 결과적으로 야권의 연대가 강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구체적으로 야권 연대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기를 바라는가?

▲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5월14일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함께 걷는 대통령의 길-화포천 습지길 여는 날’ 행사에 참가해 본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경선에 의해 후보가 단일화되는 식의 방안은, 사실 지금까지 효과를 많이 보았지만 그 한계도 뚜렷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야권 연대에는 더 나은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정치 연합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후보 단일화는 경쟁적인 방식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해서 단일화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단일화의 과정에서는 시민들이 감동할 수 없다. 이를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이다. 나는 아직 정치를 잘 모르기에 국민의 시각에서 말해본다면, 야권은 ‘우직하게’ 통합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도 드러났지만, ‘친노 진영’의 분열이 야권 통합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우려가 많다.

분열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친노’는 노 전 대통령을 따르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하나의 정파로 묶일 이유가 없다. 그들은 노무현의 정신을 다시 새기면서 각자 자신들의 방법으로 정치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득도 있다. 예를 들면 국민참여당은 민주당이 정치적 흥미를 줄 수 없는 유권자층에게 다가갈 수 있다. 반대로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외연을 넓히는 측면이 있다. 넓어진 외연으로 다시 힘을 모을 수 있다면 오히려 시너지 효과 아니겠는가.

넓어진 외연이 다시 모일 수 없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그 점에서 ‘문재인의 역할론’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내 역할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상황이 닥치게 되면 (진보 개혁 진영) 모두가 마음을 모아야 한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단일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각 정당의 생각이 일치한다. 다만 이번 재·보선에 내가 나선 것은 그것(단일화)을 돕기 위해서였다. 각 정당이 단일화의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시민사회가 나서서 중재하기도 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나 역시도 그런 역할을 하겠다.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년을 맞는 시점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최근 들어 노무현 정부에 대해 재평가하는 목소리가 많은 듯하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서 국민들이 그 진정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렇다 보니 그리움도 여전한 것이고. 노 전 대통령은 단기적인 지지나 인기를 위한 정책을 펴지 않았다. 당장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경기 부양책을 거부하고 길게 평가받으려고 하신 분이었다. 이것이 지금 현 정부의 모습과 상대적으로 대비되면서 제대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참여정부에 대해서는 재평가가 내려질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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