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오디션 무대 ‘무한 확장’의 비밀
  • 김진령 기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jy@sisapress.com)
  • 승인 2011.05.2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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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지금 서바이벌·오디션 쇼에 푹 빠져 있다.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나는 가수다>와 <위대한 탄생> <슈퍼스타코리아 시즌3>까지 프로그램도 즐비하다. 서바이벌 형식의 오디션 무대는 개별 기업체에

가히 신드롬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가수를 뽑고, 탤런트를 뽑고, 아나운서를 뽑고, 디자이너를 뽑고, 밴드를 뽑고….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뽑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은 쇼가 되고 있다. 누군가를 뽑고 누군가는 떨어뜨려야 하는 이 쇼에 옛부터 노래와 춤에 능해, 그래서 지구상에서 가장 예능감 충만한 민족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스스로 쇼의 주인공으로 자원하고, 관람객으로 몰입하는 1인2역 놀이에 빠져들고 있다.

▲ 예선 현장 ⓒ엠넷 제공

케이블TV 채널 엠넷이 주최하는 <슈퍼스타코리아 시즌3>(이하 <슈스케>)에는 아직 마감이 한 달이나 남아 있음에도 벌써 지원자가 1백70만명을 넘어섰다.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이하 <위탄>)의 톱12 무대에는 한 프로그램에 무려 1백70만건의 문자 투표가 쏟아졌다.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는 국내 최대의 포털 사이트 다음과 네이버에 아예 전용 섹션까지 가지고 있다. 거의 월드컵대회 뉴스에 버금가는 대접이다. 시중의 관심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악플러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뉴스에 상관없이 이전투구를 벌이거나, 각종 ‘자체 제작 루머’를 뿌리며 온라인 난타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오히려 월드컵 뉴스나 정치 뉴스보다 윗길이다.

이런 선풍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서바이벌 형식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또 일부 계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TV와 거리가 멀었던 계층까지 포섭하며 대중을 끌어들이고 있다. <나가수>가 만들어낸 음원 시장만 연 5백억원대라는 증권사 보고서까지 나올 정도로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대중은 왜 서바이벌·오디션 프로그램에 이렇게 격렬히 반응하는 것일까. 오디션 프로그램의 기폭제가 된 <슈스케>의 김용범 총괄 PD는 “참가자들이 진심을 보여줄 때 프로그램이 잘된다. 누군가는 떨어져 나가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 시청자는 리얼버라이어티쇼보다 더 극적이라고 느낀다”라고 말했다. 거의 모든 국민이 출연 가수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있는 <나가수> 신드롬도 서바이벌 논란을 껴안고 있다. 

▲ ⓒMBC 제공

<나가수>는 출범 초기부터 ‘예술을 줄 세우기 한다’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앞에 ‘서바이벌’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문제였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기획한 김영희 PD는 “<나가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나가수>가 최종 1인을 뽑는게 아니라 출연하는 가수 일곱 명 가운데 한 명이 교체되는 형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개인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나가수>와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 서열화’ 논란 때문이다. 이런 속내는 처음 이 프로그램의 제목이 <서바이벌-나는 가수다>에서 신정수 PD 체제로 바뀌면서 ‘서바이벌’이라는 문구가 사라지고 <나는 가수다>로 바뀐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신PD는 이 형식이 ‘서바이벌’보다는 노래의 축제로 인식되기를 바란 것이다.

실제로 <나가수>는 오디션 형식을 갖고 있지만 출연 가수의 탈락 과정에 방점이 찍힌 것이 아니라 경연 무대에서 보여주는 가수의 퍼포먼스나 새로운 가수의 계속적인 등장이 관전 포인트이다. 즉, 탈락이 아니라 교체이고, 교체된 가수의 재출연 가능성은 열려 있다. 때문에 대중은 <나가수>에서 누가 1등을 했는지 여부에 못지 않게 ‘나왔으면 하는 가수’ 목록을 작성하며 댓글 열전을 치르는 등 스스로 뉴스를 생산하고 즐기고 있다. 

한국 방송에 ‘서바이벌 프로’가 들어오기까지

이런 포맷은 해외의 오디션 형식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다른 변화이자 한국적 변용이다. 이 ‘한국적인 변용’은 <나가수>뿐만 아니라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위탄>은 멘토제라는 형식을 집어넣었다. 본선에 오른 후보자를 심사위원이 멘토가 되어 교육시키는 장치를 넣은 것이다. 이 멘토제 역시 서바이벌에 집중되어 자칫 자극적인 경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오디션 형식에 좀 더 인간적인 끈끈한 관계를 넣으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왜 이런 한국적인 변용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 변화를 알기 위해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흘러오며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흐름을 살펴보아야 한다.

▲ ⓒtvN 제공

오디션 프로그램은 2000년대 초반 유럽과 호주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등장했다. 이 중 전세계 대중을 사로잡은 것은 <아메리칸 아이돌>(2002년)과 <브리튼즈 갓 탤런트>(2007년)이다. <~갓 탤런트>는 그 형식이 전세계 36개국에 수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리아 갓 탤런트>로 들어와 현재 예선이 치러지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데는 서바이벌 형식, 음악이라는 소재, 일반인의 참여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바이벌’이다. 이 ‘서바이벌’이라는 장치는 2000년대 초반 불기 시작한 이른바 리얼리티 TV의 세계적인 열풍을 이끈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당시 등장했던
<서바이버>(무인도 같은 곳에 참가자들이 모여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경쟁하는 프로그램), <빅브라더>(무인도가 아니라 특정 집에서 출연자들이 ‘도촬’되며 역시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프로그램)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처럼 <아메리칸 아이돌>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도 ‘누가 살아남는가’를 겨루는 서바이벌이 그 핵심이다.

그런데 이 서바이벌을 갖는 리얼리티 TV 형식은 국내로 들여오기에는 몇 가지 장벽이 있었다. 첫 번째는 일반인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가에 대한 대중 정서의 차이이다. 개방적인 케이블TV 채널은 이 형식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지만 지상파는 그럴 수 없었다. 따라서 여기에 변용이 생겨난다. 일반인 대신 연예인이 출연하고, 탈락시키는 대신 계속해서 새로운 미션을 수행하는 캐릭터쇼가 되는 것이다. ‘리얼리티쇼’는 이렇게 한국적인 변용을 거치면서 리얼버라이어티쇼로 자리 잡는다. 두 번째 장벽은 제작비 충당이다. 간접 광고가 허용되지 않았던 몇 년 전의 한국 방송 제작 환경 속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서바이버> 같은 생존 게임 형식은 엄청난 제작비가 필요한데 그것을 충당할 수가 없다. 이것이 <슈스케>가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 격이 된 이유이다. 간접 광고가 허용된 케이블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현재 지상파에서 불기 시작한 오디션 열풍은 이제 지상파에도 허용된 간접 광고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장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적인 정서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는 ‘서바이벌’의 느낌은 이 형식의 핵심이지만 그것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지나친 경쟁 과열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 대중에게 이것은 케이블에서는 어느 정도 용인되는 것이지만, 지상파는 다르다. 선정적으로 보이기 십상인 과열 양상의 경쟁 구도를 전면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지상파로서 부담이 컸다.

상대적 약자가 성공 이루는 판타지를 보다

이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나가수>의 이른바 ‘재도전 논란’이다. 서바이벌의 핵심인 ‘탈락’이 나오자, 프로그램은 엉뚱하게도 ‘재도전’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국 <나가수>에는 담당 PD 하차와 1개월여 간의 재정비라는, 공중파에서는 유례가 없던 해프닝이 생겨났다.

지상파에 등장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이른바 ‘한국형’으로 변용되면서 ‘서바이벌’을 지우려고 하는 것은, 그 장치가 갖는 양면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바이벌은 승리와 패배로 끝난다. 고대 로마의 시민은 노예 검투사의 데스 매치가 최고의 쇼였다. 고대 로마의 시민보다 평균적으로 학력이 더 높은 현대의 시민은 피 흘리는 격투기를 HD 영상으로 고대 로마의 시민보다 더 실감나게 즐기고 있다. 서바이벌 논란에는 바로 이 희생자를 앞세운 잔인한 쇼라는 논란이 들어 있다. ‘하물며 예술에!’ 이것이 바로 <나가수>에 대한 비판 여론의 핵심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나가수>는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것이 바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핵심 기제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슈스케>의 김용범 총괄PD는 “<슈스케>의 카니발적인 요소는 너무 과대평가되었다. 누군가 탈락하는 잔인한 요소도 있지만 중간에 떨어지는 후보에게도 스타로 올라설 기회가 주어진다. 어떻게 보면 패자가 없는 한국형 오디션이다”라고 말했다.

‘한국형 오디션’은 <위탄>이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생겨난 끝없는 공정성 논란을 멘토제라는 형식으로 유화시키려 한 시도에서도 드러난다. 과열 경쟁 구도가 불러오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멘토제라는 한국적인 변용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관람자의 지속적인 관심과 공정성이라는 양날의 칼을 제대로 쥐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의 핵심에는 바로 이 서바이벌 포맷이 갖는, 이목을 끄는 원초적인 선정성과 공정성에 대한 열망이 작용하고 있다. 서바이벌은 ‘1등만 살아 남는다’라는 우리 사회의 치열한 경쟁 구도의 축소판이다. 그 속에서 내가 지지한 누군가가 ‘연승 행진’을 벌일 때 대중은 자신의 감정을 그에게 이입시키고 열광한다. <슈퍼스타K2>에서 환풍기 수리공이었던 허각이 최종 우승자가 되면서 일으킨 신드롬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었다.

가난하고 학력도 낮고 외모도 그렇고, 그래서 기회조차 잘 주어지지 않는 인물은 대한민국 1%를 빼고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이에게 오디션 무대는 거의 유일하게 남은 한 가닥 희망으로 그려진다. 시스템의 도움 없이 방치되었던 비주류가 ‘사회적 편견’이 작동되지 않는 무대에서 ‘공정한 심사’를 통해 스타가 되는 오디션은 그래서 수많은 대중에게는 판타지가 된다.

문제는 이 경쟁을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시스템의 문제로 들어갈 때이다. 여기서 대중은 민감해진다. 누구는 붙고 누구는 떨어지는 그 과정을 대리 경험하면서 대중은 현실에 부재한 공정성을 요구했다. <나가수>의 재도전이 그들만의 ‘담합’ 같은 인상을 준 것은 그래서 치명적이었다. 또 <위탄>의 멘토는 심사위원을 함께 맡으면서 공정성 논란을 일으켰고, 일부 팬들의 특정 멘토에 대한 몰아주기 투표 양상은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오히려 저하시키며 제작진에게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서바이벌 쇼가 대중의 몰입을 부르는 장치 중 하나는 시청자가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았다는 점이다. 시청자의 문자 투표 방식은 여러모로 대중이 정치 투표에서 보여주는 민심을 드러내는 형식을 그대로 빼닮았다. <위탄> 같은 선거(?)의 최종 선택에서 백청강과 이태권이, 또 <슈퍼스타K2> 같은 선거에서 허각과 존박이 후보자로 나서고 각자 자신의 매력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유세(?)하며, 그것을 보고 시청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투표함으로써 그 당선자(?)가 가려진다는 점이 그렇다. 이 투표 시스템은 그 당선자를 통해 민심을 읽을 수 있는 서바이벌 장치이다. 모든 투표라는 것이 본래 서바이벌을 전제하는 것이 아닌가.

실제 정치판의 투표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즉각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문자 투표에 대중은 기꺼이 참여했다. <슈스케2>는 회당 30만콜에서 시작해 1백47만콜로 끝났고, <위탄>은 1백70만콜까지 기록했다. 대중은 문자(투표)를 통해 판타지를 현실화시키는 재미에 열광했다.

그들은 <슈스케2>의 우승자로 허각이라는 고졸 출신의 육체노동자를 호출했고, <위탄>의 파이널 결승 진출자 중 한 명으로 조선족 이민자 출신인 노동 계급의 아들을 불러세웠다. <나가수> 역시 실력은 있지만 대중과 방송의 무관심으로 초라해져가는 잊혀진 고수를 최고의 화려한 무대로 불러내 단숨에 부활시킨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최대치의 판타지를 제공하고 있다. 아예 배제되어 있어 경쟁조차 할 수 없었던 그들은 그래서 기꺼이 이 서바이벌을 감수하며 무대에 오른다. 누군가에게는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조차 판타지가 아닌가.

대중은 늘 현실 속에서 공정하지 않은 시스템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현실의 서바이벌을 재현하는 듯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빠져든다. 바꿀 수 없는 현실의 시스템 때문에 바꿀 수 있어 보이는 판타지 서바이벌 시스템에 집착하게 되는 것.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열광은 살벌한 ‘현실의 서바이벌’을 알려주는 바로미터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다”
안우정 MBC 예능국장 인터뷰

대중이 변형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고 믿고 있는 <나는 가수다>에 대해 안우정 MBC 예능국
장은 “<나가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서바이벌이라는 예능 트렌드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나가수>는 기존에 없던 포맷이지 오디션 프로가 아니다. 일종의 게임이다. 가수들의 월
드컵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 가수가 나와서 게임의 형식을 빌어서 노래를 들려준다. 워낙 진지하게 준비하고 노래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오해를 하지만 오디션이 아니다. 오디션은 누군가를 선발하는 것이지만 <나가수>는 진지하고 즐거운 쇼이다. ‘세시봉’도 MBC가 그런 것을 만든 것이지 트렌드를 추종한 것이 아니다. 프로그램 개발은 개별 PD가 하는 것이지만 나는 기존에 있는 것을 하자고 하면 막는다. 독창적이어야 한다. 새로움이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MBC 예능국에서 만든 쇼 중에는 <신입사원>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 중 공중파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위대한 탄생> 정
도이다. 그 정도만 놓고 트렌드라고 부를 수 없다. 물론 그런 흐름이 일부 있고 그런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국내에서 트렌드로 인정하려면 프로그램이 확실히 성공해야 한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아직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공적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지금은 ‘외국에서는 이렇다는데 한번 해볼까’ 정도의 수준이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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