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문화 빈곤 틈 타 ‘주류’ 판치네
  • 이규대 인턴기자 ()
  • 승인 2011.05.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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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홍보 나선 업체들, ‘공짜 술’에 주막까지 제공…총학생회가 기업체에 지원 요청하기도

▲ 5월17일 한양대학교 서울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업체에 단체로 주문한 맥주를 나르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평생에 마실 술의 절반을 대학 시절 다 마신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학생과 술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대학 축제에도 어김없이 술이 뒤따른다. 술은 대학 축제에서 부족할 틈이 없다. 일단 주류 기업들이 내놓는다. 마케팅을 위해서다. 기업은 학내에 자체 부스를 설치하고 이벤트를 진행한다. ‘무료 시음’ ‘술맛 비교하기’ ‘소리 크게 지르기’ 등의 행사를 열며 학생들을 끌어들인다.

이전에는 총학생회 단위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벌였지만 요즘은 개별 학과와 동아리 등을 대상으로 더 밀착해 다가가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방법은 공모전 형식을 띠는 것이다. ‘진로’는 ‘우리만의 주막 만들기’ 행사를 진행했다. 홈페이지에서 신청한 단체 중 1백50곳을 선정해 소주 2백병 및 1회용 소주잔, 앞치마, 현수막, 아이스박스 등을 지원했다. 

국순당, ㈜우리술 등 전통주 생산 업체들도 뒤늦게 대학 축제에 뛰어들었다. 진로와 비슷한 유형의 공모전을 벌였다. 학생들 처지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공짜로 술도 얻고 깔끔한 주막도 얻는다. 주류업체는 브랜드 홍보 효과를 기대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인 셈이다.

일부 학생회, 외부인에게 자릿세 받고 팔아

거꾸로 학생들 쪽에서 먼저 접근하는 경우도 많다. 학생회에서 축제 스폰서를 구할 때 1순위로 고려하는 곳이 바로 ‘주류회사’이다. 스스로 충성스런 고객임을 인증하는 셈이다. 봄 축제 기간, 주류업체의 대학 마케팅 담당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전국 각 대학의 총학생회와 학과·동아리가 ‘지원’을 요청한다. 온·오프라인으로 수많은 제안서가 몰려든다. 해당 업체에서 근무하는 학교 선배나 지인의 힘에 기대려는 학생회도 적지 않다. (주)진로의 관계자는 “대학 쪽에서 주류업계의 생리를 잘 알기 때문에  지원 요청은 많이 들어온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에게 혜택이 가지는 않는다. 하이트맥주의 한 마케팅 담당자는 “축제 기간에 주류 지원을 요청하는 제안서가 많이 접수되지만 마케팅 효과가 탁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점은 학생회가 받아온 술을 푼다. 학과나 동아리 단위에서 차리는 주점에서는 학생회를 통해 술을 공급받는다. 총학생회나 단과대 학생회에서 협찬받은 술 이외에 모자란 술을 충당하기 위해 주변 상권에서 한 곳을 선정해 공동 구매를 한다. 학과·동아리 단위 외에 의미 있는 단체에게도 천막을 내주는 학교가 적지 않다. 서울대 봄 축제에서 학생들이 가장 북적인 천막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가 운영한 곳이었다.

천막의 허가와 장소 배치는 총학생회의 몫이다. 한양대 축제의 전야제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5월17일. 오후 7시가 되고 해가 저물자 교내에서는 주점용 테이블과 의자를 나누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들 물품은 총학생회에서 일괄적으로 대여해 준다. 물품부터 장소 배치와 천막 허가는 모두 원스톱 서비스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축제 수입을 위해 외부인에게 ‘자릿세’를 받고 천막을 허가하는 학생회도 적지 않다. 축제 전문 상인들은 2박3일에 수십만 원가량을 내고 장사를 하는데, 이들이 내는 자릿세는 축제의 수입과 지출을 둘러싸고 총학생회 재정 문제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술 권하는 축제’는 그만큼 술이 돌기 때문에 생긴다. 게다가 흥미를 돋우지 못하는 축제 프로그램에서 “술이나 먹자”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축제 문화의 빈곤 그리고 주류업체·외부 상인 간에 맞물린 이해관계는 올해도 대학가에 요란하게 술병 넘어지는 소리가 나오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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