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세론’, 호남도 파고드나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5.2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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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손학규 제치고 1위…“내년 대선에 야당 후보 찍겠다” 79.3%

ⓒ시사저널 유장훈

영남 지역에 기반을 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호남 지역은 ‘적지’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야당 성향이 강한 호남에서도 ‘박근혜 대세론’이 통하는 것일까.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호남·제주 지역에 사는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5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박 전 대표가 18.9%의 지지를 받아 1위에 올랐다. 이번 조사는 5월21일과 22일 이틀간에 걸쳐 전화면접 방식으로 실시했고, 95% 신뢰 수준에 오차 범위는 ±4.9% 포인트이다.

박 전 대표는 이 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적합도’에서 2위를 차지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17.9%), 3위에 오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15.2%)과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 양상을 나타냈지만, 다른 곳도 아닌 호남 지역에서 민주당 대표인 손대표를 앞섰다는 점이 주목된다.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도는 20대(25.3%)와 60대 이상(24.9%)의 연령층, 그리고 주부(24.6%)와 학생(24.3%) 층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4위는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11.3%)이 차지했으며, 5위 한명숙 전 총리(8.5%), 6위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4.7%) 순이었다.

박 전 대표의 대선 후보 지지도가 의외로 높게 나타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호남=야성(野性) 지역’이라는 등식은 이번 조사에서도 여실히 입증되었다. ‘내년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야당 후보’(79.9%)가 ‘여당 후보’(8.1%)를 절대적으로 앞섰다. 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의견은 특히 20대(90.2%)와 30대(86.8%), 자영업자(86.4%)와 화이트칼라(86.1%) 층에서 강세를 보였다. 대선에서도 역시 ‘야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자가 79.3%로 집계되었다. ‘여당 후보’는 9.0%에 불과했다. 호남 민심에 변함없이 ‘야당의 피’가 끓고 있는 셈이다.

‘호남 대표 정치인’ 1위는 정동영

이처럼 압도적인 야당 지지 성향을 나타내면서도 대권 주자 지지율에서는 여당의 박 전 대표가 1위로 나타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에 대해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호남에서의 박 전 대표에 대한 현재 지지율이 호남의 정치 지형을 바꿀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다소 거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내년 대선에서 과거 김영삼·이회창·이명박 후보 때보다는 호남에서 더 득표할 가능성은 크다. ‘한나라당 출신’인 손학규 대표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 있는 반면,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된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다 해도 대선에서 박 전 대표가 호남에서 1위를 하기는 힘들 것이다. 유력한 야권 단일 후보가 부상할 경우 박 전 대표에게 갈 호남 표가 야권 후보에게 쏠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반기문 총장이 3위에 올랐다는 것은 반총장을 실제로 지지해서라기보다 현재 야권에 유력한 주자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진단했다.

‘내년 대선에서 여당 후보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서도 박 전 대표가 38.9%로 1위, 반기문 사무총장(15.0%)이 2위로 지목되었다. 여권 ‘잠룡’인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3.8%), 김문수 경기도지사(3.5%), 오세훈 서울시장(3.0%) 등은 고만고만했다.

반면 ‘야당 후보로 누가 가장 적합한가’라는 물음에는 손학규 대표가 24.9%로 1위였다. 그 뒤를 정동영 최고위원이 17.9%, 반기문 사무총장이 14.4%, 한명숙 전 총리가 12.1%, 유시민 대표가 6.7%,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3.3%의 순으로 자리매김했다.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28.0%가 정동영 최고위원을 1위로 지목했다. MBC 기자 출신인 정최고위원은 1995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현 민주당) 김대중(DJ) 총재의 권유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김대중 총재는 직접 기자실로 그를 데리고 가서 “당의 이미지를 크게 쇄신할 인물이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1996년 15대 총선 때 전주시 덕진구에서 출마해 전국 최다 득표를 하면서 화려하게 여의도에 입성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에도 헌정 사상 처음으로 두 번 연속 전국 최다 득표 당선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이후 당내 ‘정풍 운동’ 등을 주도하며 차세대 지도자로 떠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차기 대통령감’으로 치켜세워지기도 했다.

김대중·정세균·손학규가 2~4위

하지만 이후 그의 정치적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2007년 12월 대선에서 5백30만표 차로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다. 2008년 총선에서 서울 동작에 출마해 낙선한 뒤, 2009년 4월 전주 덕진구 재선거 때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복귀했지만, ‘친정’인 민주당 복당 문제로 큰 진통을 겪기도 했다. 이번 본지 조사에서 그는 비록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 1위에 올랐지만, 차기 대통령 적합도나 야당 대선 후보 적합도에서 모두 손대표에게 뒤쳐져 있다. 그래서일까. 정최고위원이 변했다. 예전에 ‘중도적 개혁’ 성향이었다면 현재는 ‘진보’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다. ‘담대한 진보’를 역설하며 노동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에서 그의 이념 좌표가 바뀌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위는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14.7%의 지목률을 얻었다. 서거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호남인의 가슴속에는 ‘영원한 지도자’로 자리 잡고 있음을 방증한다. 3위는 손대표, 정최고위원과 더불어 민주당 ‘빅3’로 불리는 정세균 최고위원(7.0%)이다. 차기 대권 주자들인 ‘정동영·정세균’ 두 사람은 ‘포스트 DJ’ 자리를 놓고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번 조사로 정동영 최고위원이 일단 한 발짝 더 앞서 있음이 드러났다. ‘DJ의 비서실장’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2.8%)는 6위에 올랐다. 

지역·연령별로 보면, 정동영 최고위원은 전북에서 45.7%, 광주에서 24.1%, 전남에서 13.8%의 지목률을 얻었다. 40대(33.7%)와 60대 이상(33.6%)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목률을 나타냈다. 이에 비해 정세균 최고위원은 전북에서만 15.7%였고, 전남(3.3%)과 광주(0.3%)에서는 극히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손학규 대표가 6.2%의 지목률로 4위에 오른 것은 이채롭다. 경기도 출신인 손대표를 호남의 대표 정치인 반열에 올린 것은 호남이 텃밭인 민주당의 대표를 맡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한나라당 소속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 10위(1.1%)에 올랐다는 점이다. 과거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 호남 지역에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등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공을 들인 것이 어느 정도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호남 대표 정치인에 대해 ‘모름/무응답’층이 42.9%나 된다는 점에서 아직은 누구도 섣불리 ‘호남 맹주’를 자처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호남 지역 주민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상당한 불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평가에서 ‘잘하고 있다’는 20.0%에 그치고 있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라는 응답은 무려 80.0%로 네 배나 높았다. 특히 40대의 민심 이반 현상이 두드러진다. 86.2%가 이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비판했다. 학생층의 부정적 여론이 100%로 나타난 것도 눈에 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호남 지역 사정이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는가,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나빠졌다’가 47.7%였고, ‘그대로이다’는 46.9%였다.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대통령의 집권 4년차임에도 호남 주민들은 지역 사정이 그다지 나아졌다고 보지 않고 있다. ‘나아졌다’는 고작 5.4%에 그쳤다.

‘향후 선거에서 어느 이슈가 호남 지역 민심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는, 뜨거운 논란을 빚고 있는 ‘LH 공사 이전 문제’(22.1%)와 ‘4대강 사업 문제’(20.2%)가 꼽혔다. 특히 LH 본사가 경남 진주시로 정해지자, 그동안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던 전북이 강하게 반발하며 헌법 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별로 보아도 전북에서 49.3%가 ‘LH 문제’를 지목했다. 영산강에서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은 광주 지역(28.3%)에서 비교적 높은 이슈로 꼽혔다. ‘호남 고속 철도 개통 지연 문제’(11.7%)와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지원 부족 문제’(10.5%) 등도 내년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호남 지역의 현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는 ‘실업(일자리) 문제’(27.3%)와 ‘물가 문제’(22.5%) 등 민생과 직결된 문제들이 우선순위로 꼽혔다. 그 다음은 ‘지역 성장 동력 문제’(13.6%), ‘지역 개발 문제’(10.5%) 순으로 집계되었다. ‘지지 정당’은 예상대로 민주당(64.1%)이 1위였다. 민주노동당 9.5%, 한나라당 6.0%, 국민참여당 1.8% 순이었다. 민주당은 전북(75.5%)에서, 민주노동당은 전남(15.2%)에서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호남·제주 지역 여론조사에서 제주 지역 주민들의 민심은 호남과 약간의 온도 차를 나타냈다. 호남만큼 그렇게 비난 여론이 들끓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주 역시 현 정부·여당에 대해 반감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 지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38.8%인 반면, ‘잘못하고 있다’가 60.2%로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역 사정에 대해서도 ‘그대로이다’라는 응답이 54.0%로 가장 높았지만, ‘나빠졌다’(36.6%)가 ‘나아졌다’(9.5%)보다 네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그래서인지 내년 총선에서는 ‘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59.3%로, ‘여당 후보’ 지지 성향(27.5%)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대선 역시 ‘야당 후보를 뽑겠다’(50.6%)라는 응답이 ‘여당 후보’(28.6%)를 압도했다.

‘차기 대선 여당 후보 적합도’에서도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50.5%의 지목률을 보이며 1위에 올랐다. 그 다음은 제주 출신인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으로 14.6%였다. 이밖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10.2%), 오세훈 서울시장(6.0%), 이회창 자유선진당 전 대표(2.0%) 순으로 이어졌다. ‘차기 대선 야당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30.1%로 1위에 올랐다. 그 다음은 반기문 사무총장 15.2%,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10.0%, 한명숙 전 국무총리 8.2%,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8.0%의 순이었다.

‘차기 대통령 적합도’에서도 박근혜 전 대표가 42.8%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반기문 사무총장이 10.2%, 원희룡 의원이 8.7%, 손학규 대표가 7.3%였다. ‘박근혜 대세론’이 제주 지역도 비껴가지 않은 셈이다.

‘제주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최근까지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역임한 원희룡 의원이 16.0%로 1위에 올랐다. 다음으로 우근민 제주지사가 11.3%, 현경대 전 의원 5.1%, 김재윤 민주당 의원 3.7%, 강창일 민주당 의원 3.3%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향후 선거에서 어느 이슈가 제주 지역 민심에 가장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세계 7대 자연 경관 도전 문제’라는 응답이 38.8%, ‘제주 해군 기지 건설 문제’가 37.5%로 팽팽했다. 이밖에 ‘영리 병원 도입 문제’ 13.4%, ‘내국인 카지노 유치 문제’ 10.3% 등으로 집계되었다.

현재 제주 지역의 현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역시 민생 문제로 나타났다. ‘물가 문제’가 32.2%, ‘실업(일자리) 문제’ 17.2%, 지역 성장 동력 문제 12.8%, 지역 개발 문제 12.6%의 순이었다. 

‘지지 정당’은 민주당(38.6%)과 한나라당(38.1%)이 오차 범위 내에서 거의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 다음은 민주노동당(4.8%), 창조한국당(1.5%), 자유선진당·국민참여당(각 1.0%)의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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